‘마당발 서장의 윗선’ 경찰 작심하고 턴다
윤전 서장 비리가 경찰에 포착된 것은 지난해 4월경이다. 한 대학교 입시 비리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서울 성동구 마장동에 위치한 육류 가공업체 T 사 대표 김 아무개 씨가 윤 전 서장에게 정기적으로 금품과 향응을 제공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윤 전 서장이 당시 대검 중수부 유력 검사의 친형임이 드러났다.
경찰 수사에 이상기류가 흐르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당시 수사권을 놓고 검찰과 대립하던 경찰로서는 ‘대어’를 잡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자연스레 수사의 초점을 윤 전 서장 주변으로 확대했다.
수사팀은 뇌물을 제공한 김 씨 다이어리에서 윤 전 서장이 김 씨 돈으로 인천의 한 골프장에서 검사들과 라운딩을 했다는 내용을 확보했다. 여기엔 검찰에서 내로라하는 핵심 간부들 이름이 포함돼 있었다. 또한 경찰은 윤 전 서장이 김 씨가 골프장에 지불한 금액을 환불받은 뒤 이를 같이 온 지인들에게 나눠 준 흔적도 발견했다. 윤 전 서장은 2~3개의 가명을 이용해 골프장을 이용했고, 김 씨 이외에도 골프장 이용비를 대납해준 사업자들은 3~4명 더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해당 골프장 출입자 명단을 확인하기 위해 검찰에 압수수색 영장을 일곱 차례나 신청했지만 이 중 여섯 번이 반려됐다. 김 씨 사무실 등에 대한 영장 청구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수사에 제동이 걸리자 경찰은 톨게이트 하이패스 이용 내역 등을 통해 다이어리에 이름이 거론된 검사들이 인천 골프장에 드나든 사실을 확인했다.
당시 수사팀 관계자는 “골프장 출입 명부나 CCTV만 압수하면 간단히 체크할 수 있는 것들이었는데도 영장이 계속 기각돼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성과는 있었다. 윤 전 서장은 검사뿐 아니라 국세청과 언론사 임원 등과 함께 골프장을 이용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귀띔했다.
수사가 지지부진하자 경찰 내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왔다. 경찰청 관계자는 “의심이 가는 장소에 대해 영장을 발부받아 압수수색을 하는 것은 수사의 기본인데 검찰이 납득하기 힘든 이유로 영장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서 “윤 전 서장이 골프 접대를 받을 때 대검 중수부 검사들이 동행했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검찰 고위 인사는 “경찰이 부실수사를 해놓고 검찰 핑계를 댄다. 영장 발부에 필요한 기본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찰이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면 무조건 발부하란 소리냐”고 반박했다.
이처럼 검찰과 경찰이 영장청구 등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사이 뜻밖의 변수가 발생했다. 윤 전 서장이 지난해 8월 30일 홍콩으로 출국한 뒤 행적이 모호해졌기 때문이다. 이를 놓고 윤 전 서장에 대한 출국금지를 신청하지 않은 경찰의 부실수사를 꼬집는 여론이 비등해졌다. 이에 대해 당시 수사팀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현직 국세청 간부로 신분이 확실한 윤 전 서장이 성실히 수사에 응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동생이 검찰 간부인데 설마 외국으로 도피할 것이라곤 전혀 생각도 못했다”고 설명했다.
경찰 일각에서는 윤 전 서장의 갑작스런 출국에 대해 누군가의 ‘코치’를 받은 것 아니냐는 관측도 대두됐다. 윤 전 서장은 수사가 시작된 이후 지인 명의의 대포폰을 개설했는데, 여기엔 검찰 및 언론 종사자들과 수시로 통화한 내역이 담겨 있었다. 경찰은 윤 전 서장이 수사를 대비하기 위해 이들과 통화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특히 경찰은 윤 전 서장의 해외 도피가 수사에 정통한 검찰 관계자의 머릿속에서 나왔을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이에 대해 검찰 고위 인사는 “경찰이 수사를 부실하게 해 놓고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윤 전 서장이 빨리 들어와 진실을 밝혀주길 바란다”며 불쾌함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유야 어찌됐든 윤 전 서장이 출국한 이후 수사는 ‘올스톱’됐다. 경찰은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에 공조수사를 요청하는 등 신병 확보에 나섰지만 여의치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윤 전 서장의 해외 체류가 길어지자 온갖 억측이 나돌았다. 그 중 하나는 사정당국 몇몇 고위 관계자들이 경찰 수사를 우려해 윤 전 서장을 돕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도피 행각을 이어가던 윤 전 서장은 결국 지난 4월 19일 태국에서 체포됐다. 홍콩으로 출국한 지 8개월여 만이다. 경찰은 4월 25일 윤 전 서장을 송환해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동안 윤 전 서장에 대한 경찰 수사는 검찰을 겨눌 것이란 관측이 주를 이뤘었다.
특히 윤 전 서장의 친동생과 함께 A 부장검사가 집중 타깃이 될 것이란 소문이 많았다. A 부장검사가 현재 경찰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비리 수사를 책임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윤 전 서장 송환에 유독 관심이 쏠렸던 것도 사실이다. 사정당국 일각에서 경찰이 윤 전 서장 체포 시기를 조율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풀이된다. 윤 전 서장 동생이 최근 단행된 검찰 인사에서 요직에 발탁되고, A 부장검사가 경찰 관련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과 윤 전 서장의 체포가 맞물리면서 ‘미묘한’ 해석을 낳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경찰은 ‘마당발’이었던 윤 전 서장을 상대로 검찰뿐 아니라 국세청 등 다른 사정기관과 언론사 유력 인사들에게도 골프접대 등 로비를 펼쳤는지 등에 대해 철저히 수사한다는 방침이다. 경찰은 윤 전 서장이 서울의 고급 음식점과 술집 등에서 이들과 자주 어울렸던 정황을 이미 포착한 상태다. 여기에 들어간 비용은 윤 전 서장과 알고 지내던 사업가들이 제공했다.
수사를 맡고 있는 서울광역수사대 관계자는 “업자들이 윤 전 서장에게 자금 지원을 왜 했겠느냐. 윤 전 서장 또는 그 윗선을 보고 청탁을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 윗선이 검찰일 수도 있고 또 경찰이나 국세청일 수 있다. 실제로 업자들이 특혜를 받았는지 살펴볼 것”이라고 귀띔했다. 수사 결과에 따라 윤 전 서장의 뇌물 사건은 단순한 검·경 갈등 차원이 아닌 대형 게이트로 확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처럼 경찰이 윤 전 서장 사건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은 이번 수사가 성공적으로 끝날 경우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현재 경찰은 고위층 성접대 동영상 사건, 국정원 여직원 댓글 부실수사 등으로 인해 체면을 구겨진 상태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여권 고위층이 경찰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따라서 경찰은 윤 전 서장 수사를 통해 지금까지의 부진을 만회할 수 있는 실적뿐 아니라 수사권 등을 놓고 끊임없이 마찰을 빚고 있는 검찰 조직에 타격을 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분위기다.
코너에 몰려 있는 경찰로서는 윤 전 서장 사건이 ‘히든카드’인 셈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