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전서 KO승…‘이세돌 해법’ 찾았나
김지석 9단
김8단은 이번 승리로 7000만 원의 상금을 거머쥐었고, 9단으로 승단했다. 63명의 9단에서 서열 맨 마지막이 박정환, 김지석은 바로 그 앞자리를 차지했다. 김지석의 앞에는 강동윤이 있다.
이세돌 9단이 타이틀 매치에서 영패를 당한 적은 없는데, 최근 연달아 스트라이크 아웃이다. 한 달 전쯤, 3월 17~27일에 열린 제14회 맥심배 결승3번기 제1, 2국에서 이세돌 9단은 박정환 9단에게 연패했다. 바둑팬들은 “얼마 전 인터뷰에서 후배 중에서는 김지석이 가장 돋보인다고 말했던 이세돌이 자신의 예언(?)대로 차세대 1, 2위에게 휘둘리기 시작하는 것 아니냐”면서 묘한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물론 “한두 번의 승부로 속단할 일은 아닌 데다가, 이세돌 9단은 요즘 한국 리그에, 중국 리그, 구리와의 10번기 등으로 신경이 좀 분산되어 있어서 일시적으로 그런 거다. 한두 번 졌다 해도 아직은 이세돌이며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럴 것”이라는, ‘이세돌 우세론’이 여전히 대세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김지석은 이번 경기를 통해 자신의 강미를 마음껏 발휘했다.
선배 프로기사 중에 김지석 바둑을 ‘피 튀긴다’고 평한 사람이 있다. 그건 좀 심하다…^^ 그러나 전달력은 그만이다. 그런 살벌한 표현 대신 ‘하얀 망토의 검객’이라고 점잖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무예의 초절정고수여서 처절하고 현란하게 싸우기는 하지만, 옷에는 피 한 방울 묻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건 멋지지만 역시 과장이다…^^.
이번 세 판은 그야말로 끝없는 포성과 자욱한 초연으로 구경하는 사람들이 눈귀를 뜨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바둑판은 지진이 난 듯 흔들렸고 돌들은 뭉텅이, 뭉텅이로 나뒹굴며 시산혈해를 이루었다. 포석이 끝나기도 전에 천지대패가 벌어지기 일쑤였고, 바꿔치기가 되었다 하면 바둑판의 4분의1, 3분의1이 휙휙 날아갔다. 이세돌 9단이야 원래 상상초월 변화무쌍의 대가라 그렇다 하겠지만, 나이 스물넷인데도, 일찍 장가를 갔는데도, 여전히 엄친아의 모습에서 몇 걸음 못 나간 김지석은 어디에 그런 야성이 있는 것인지.
제1국은 흑을 들고 267수 만에 1집반승, 2국은 백으로 196수 만에 불계승, 3국은 장장 303수에 이르는 대난타전 끝에 흑으로 불계승. 세 판에서 피차 잡고 잡힌 돌, 잡혔다가 살아나고, 살았다가 도로 잡힌 돌들을 합하면 200개가 넘는다. 세 판 모두 아수라장이었다.
세 번의 대전을 통해 김지석은 자신감을 얻었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그게 크다. 이번 시리즈를 지켜본 프로기사들은 조심스럽게 “예전에 최철한과 박영훈이 ‘이창호 해법’을 찾았듯 김지석과 박정환이 어쩌면 ‘이세돌 해법’을 찾았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피차 모르는, 미지의 숲으로 뒤엉켜 들어가 난전을 벌이는 것에는 이세돌 9단을 따를 자가 없었고, 이세돌 9단은 그걸로 한 시기를 평정했지만, 이제 그 무공의 비결이 밝혀지고 있는 것 같다”는 얘기다.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박정환과 김지석, 김지석과 박정환의 다음 행마가 기다려진다.
이광구 객원기자
GS칼텍스배 결승 2국(흑 이세돌 9단 - 백 김지석 9단) 기막힌 타개 <2도> 백1로 끼운 것이 좋은 수. 백이 어떻게 타개하려나? 고생 깨나 하겠는데, 이러다 잘못되는 것 아냐, 긴장하고 있던 관전석을 향해 검토실은 “이걸로 사는 것 같다”고 의외로 간단히, 싱겁게 결론을 말해 버린다. 백1은 멀리 흑2~10 백11을 보고 있었던 것이며, 백11은 탈출의 맥점이었다는 것. 계속해서…. <3도> 흑1을 기다려 백4로 또 끼우고 흑5에는 백6, 8 돌려치는 기술로 과연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깨끗이 활로를 열었다. 흑9는 우상귀 백에 대해서는 선수. 백이 손을 빼면 보다시피 흑11 젖힘으로 귀는 잡힌다. 그러나 우변을 돌파한 백은 이제는 귀를 버려도 여유가 있거니와 백10, 12로 중앙을 제압해서는 더 이를 나위가 없다. 타개는 본래 이세돌 9단의 능기건만, 지금은 김지석이 이세돌 9단의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흑9로 A에 끊어 패를 하는 것은 흑이 팻감 부족. 백은 더 쉽게 삭감하는 것도 있었다고 한다. <4도> 백1로 여기를 하나 젖히고, 3쪽을 누르면 흑4가 불가피한데, 다음 백5로 어깨짚어가면 흑이 이 백을 어떻게 하겠냐는 것. <2도> 백1 때 <5도> 흑1쪽에서 받으면? 백2에서 4가 선수여서 6으로 뛰어나가는 수가 성립한다. 백A도 선수다. 백2 때 흑이 <6도> 1쪽을 보강하면? 이번에는 백2로 한 칸 뛰는 맥점이 있다. 흑3으로 연결하면 백4, 6을 선수하고 8로 파호한다. 흑이 거꾸로 잡힌다. <2도> 백1, 3 때 흑4로 <7도>처럼 흑1로 잡으면? 백2~6을 선수하고 8, 10으로 끊어 버린다. A와 B가 맞보기. <2도> 백11 때 <8도> 흑1로 끊어가는 것은? 백2-4 다음 6으로 끼우는 맥점이 기다리고 있다. 백12까지 연결에는 지장이 없다. 흑7로 8에서 몰면 백7에 잇고 10과 A를 맞본다. <3도> 백8 때 <9도> 흑1로 여기를 이으면? 백2로 잇는다. 흑3-5면? 백6으로 끌어내 8을 선수하고 10으로 한 집을 만든다. 다음 흑11이면 백12에서 14, 16으로 중앙에서 또 한 집을 만든다. 백은 간단히 살아나왔다. 그러나 간단히 살아나오기까지, 수읽기는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김지석, 믿을 만한 엄친아다. 아~ 장가를 가서 한 가정의 가정이 되었으니 엄친아라고 하는 건 실례다. 취소! 이광구 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