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회복 순풍 믿다 역풍만 탈라
이런 전망은 새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3%를 유지할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세계 경기가 회복되면서 우리나라 주력산업인 IT와 자동차의 수출이 살아나 경제가 성장하고 증시도 다시 반등한다는 선순환 고리에 그 근거를 두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10∼11월까지만 해도 3%가 주류였던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최근에는 1%대로 떨어지면서 이러한 희망 어린 증시전망에 대한 의구심이 커져가고 있다. 보기 싫은 부분까지 고려해야 낭패를 당하지 않는 법. 2009년 새해 증시에 대한 부정적 전망을 따라가 봤다.
한 신설 증권사 관계자는 “대다수 증권사들의 2009년도 증시전망은 10∼11월 3%대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대세일 때 나온 것들이다. 새해에는 세계 경제가 회복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기대가 근간에 깔려 있는 것인데 실제 상황은 세계 각국의 각종 경기부양책에도 불구하고 점점 악화되고 있다”며 “게다가 외국 기관들은 세계 경기가 새해에도 어려울 수 있다고 본 반면 유독 우리나라만 정부기관이나 민간기관 모두 2009년 하반기부터 좋아진다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다. 어느 정도 걸러내야만 제대로 된 증시 흐름을 볼 수 있다”고 꼬집었다.
우리나라 경제연구소들은 10∼11월에 3%대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내놓았다. 반면 당시 외국 기관들이 내놓은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훨씬 부정적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11월 발표한 한국경제 보고서에서 2009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2.7%로 예상했다. 2010년에 들어서야 4%대 성장률을 회복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제통화기금(IMF) 역시 우리나라가 새해에 2%의 경제성장을 기록할 것이라고 예측했고, JP모건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투자은행들도 2009년 1.2% 성장하는 데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UBS는 아예 -3.0%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었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 경제연구소들의 경제전망도 속속 하향 조정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12월 7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4%로 낮췄고 금융연구원은 22일 성장률 전망치를 1.7%로 조정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경제성장률을 수정 발표할 예정이다. LG경제연구원은 새해 경제성장률을 1%대 중반으로 내다보고 최종수치를 조율 중이다. 삼성증권은 ‘2009년 경제전망’에서 성장률이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이후 10년 만에 처음으로 -0.2%로 마이너스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이처럼 전망이 나빠지는 것은 그만큼 전 세계적인 불황의 폭이 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우리나라 경제를 지탱하는 것은 내수보다는 수출이다. 특히 우리나라 수출 양대 시장은 미국과 중국인데 미국은 이미 중병에 걸려 있고 중국도 경제 성장 둔화가 두드러지고 있다”며 “이러한 여파로 지난 11월 수출이 전년 11월에 비해 18%나 감소하는 등 최근 몇 년 사이에 가장 큰 감소율을 보였고 12월 수출도 20% 넘게 줄어드는 등 수출에 제동이 걸렸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이런 글로벌 경제상황에서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이 3%를 유지하기는 힘들다”고 보탰다. 이처럼 경제전망이 주저앉으면서 새해 상반기 이후 증시가 좋아질 것이라는 기존 증권사들의 전망에 대한 부정적인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 금융회사의 프라이빗뱅커(PB)는 “2007년 내놓았던 증권사들의 2008년 증시전망 중 맞았던 것은 하나도 없었다. 다들 2008년도 지난 몇 년간처럼 대세상승이 이어져갈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았지만 2008년 코스피지수 1000포인트선이 무너지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고 밝혔다. 이 PB는 “원인이 된 금융위기가 돌발적으로 터진 것도 아니다. 2007년 중반부터 이미 서브프라임모기지론(비우량담보대출)사태가 불거졌고 미국 정부가 이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서 문제가 커져나갈 수 있다는 점도 예측됐다. 하지만 2008년 전망에서 이를 지적한 증권사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증권사 전망이 여러 경제 상황을 면밀히 분석해 내놓은 것이라기보다 이미 벌어지고 있는 추세를 따라가기 때문에 이런 불일치가 빚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계 각국의 경제 상황이 회복될 기미를 찾아보기 힘든 만큼 새해 증시 역시 약세장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모 증권사 연구원은 “세계 경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국제유가다. 2007년 평균 68달러였던 국제유가가 2008년에는 150달러까지 치솟았다. 비정상적이었지만 그만큼 원유 소비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투기세력이 몰린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국제유가가 30달러대까지 내려앉았다. 자동차 최대 소비국으로 석유 소비량이 높은 미국은 경제의 10%를 차지하는 자동차 산업이 고사 직전에 몰렸고 원유 확보 경쟁을 벌이던 중국도 경제성장이 둔화되면서 선물거래인들로부터 원유가 외면당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제한 뒤 “이 여파로 미국과 중국에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전자제품과 자동차, 철강 등의 수출이 급감하고 있다. 또 고유가를 누리면서 대규모 건설을 해왔던 중동 산유국들이 재정적자를 우려해 공사 발주를 줄이면서 우리나라 건설업계도 국내외에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더 커졌다. 우리나라 주력업종이 철강 자동차 IT 조선 건설이라는 점에서 새해 증시 회복은 예상만큼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최근 상황이 외환위기 때보다 오히려 더 안 좋을 수도 있다. 당시에는 아시아를 제외한 세계경제는 좋은 편이어서 수출이 주력이었던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빠르게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 전체의 상황이 좋지 않다. 우리가 잘해서 빠져나갈 수 있었던 외환위기 때보다 나쁜 상황으로 몰릴 수 있는 셈”이라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취임하면 경기회복이 바로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보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미국 대통령은 재선을 노리기 때문에 경제 사이클을 고려해 취임 2년 이후부터 경제가 살아나도록 정책을 조율한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어 “국내 상황만 살펴봐도 당장 수출이 둔화되면서 자동차 등 여러 공장들이 조업을 중단하거나 줄이고 있다. 이에 따른 소득 감소는 현재 내수 부진으로 이어지고 있다. 내수 부진과 수출 감소로 인해 새해 취업자의 수가 급감할 수 있다. 2008년 취업자 증가 인원이 전년의 절반인데 새해에는 이보다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이러한 여러 가지 상황을 계산에 넣는다면 세계적인 경기침체는 새해에도 지속되고 국내 증시는 그 여파에 2009년 하반기까지 약세를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의순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