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같은 그들’ 믿어도 되나요?
▲ 여의도 증권가 야경.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
외국인은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나라 증시에서 34조 5858억 원의 주식을 순매도했다. 외국인은 지난해 5월 한 달 매수우위를 보인 것을 빼고는 매달 계속해서 매도우위를 기록했다. 외국인의 걷잡을 수 없는 매도세에 코스피지수는 3년여 만에 1000포인트선이 무너지며 세 자릿수로 떨어지는 치욕을 겪었다.
이런 치욕을 안겼던 외국인이 지난해 12월 갑자기 언제 그랬느냐는 듯 2765억 원의 순매수를 기록하며 매수우위로 돌아섰다. ‘잠시 이러다 말겠지’라는 의구심이 커졌지만 외국인의 순매수 행진은 새해 들어서도 연일 이어졌다. 이런 순매수 액수가 시나브로 1조 4000억 원을 넘어섰다. 국내 투자자들이 차익 실현을 위해 주식을 내다팔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외국인이 올 들어 주로 사모은 종목들은 대부분 우리나라 대표수출주인 IT와 자동차, 그리고 과도하게 주가 하락을 겪었던 금융과 조선주들이다. 이 중 가장 많이 사들인 종목은 우리금융으로 올해에만 499만 주(9일 현재)를 매수했다. 그 다음은 한국전력으로 288만 주를 사 모았으며 LG디스플레이가 253만 주를 기록, 200만 주를 넘겼다. 이 외에 KB금융(164만 주)과 LG전자(140만 주), STX팬오션(139만 주), 현대차(137만 주), 삼성물산(103만 주) 등도 외국인이 100만주 넘게 사모은 종목에 이름을 올렸다. 대부분 우량주지만 지난해 발생한 금융위기와 실물경제침체 부동산침체 등으로 인해 위기를 겪었고 올해 실적도 그다지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종목들이다.
이처럼 외국인들이 거침없이 국내 주식을 사 모으는 것이 과연 ‘진정한 외국인의 귀환’을 의미하는 것일까. 하지만 증권가의 대체적인 해석은 ‘노’(No)에 무게가 가 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정부가 공매도를 강력하게 규제하는 정책을 이어가고 있고, 또 외국인 공매도시 주식을 빌려준 기관들에게 기존 대주 주식을 정리하라고 강력하게 권고한 것이 이런 흐름을 이끌고 있다고 봐야 한다”며 “이런 정책의 효과로 인해 외국인들이 공매도한 주식을 정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지적했다. 그는 “외국인이 사놓았던 선물을 매도하고 주식을 매수하는 현상도 겹친 것으로 보이는 만큼 1월 중순 이후 외국인 매수가 잦아들 가능성이 크다”며 “지난 한 해 동안 외국인이 35조 원 가까이 팔아치웠는데 겨우 1조 4000억 원 샀다고 해서 ‘돌아왔다’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 역시 “전 세계 증시가 올해 들어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미국 버락 오바마 정부 출범에 대한 기대감과 각국의 잇단 경기부양책을 반영한 베어마켓랠리(약세장에서 일시적인 반등)라고 봐야 한다. 외국인들은 이런 베어마켓랠리에 반응해 전 세계 증시에서 단타 투자를 많이 하고 있다. 한마디로 단기 급등장에서 이익 실현을 위해 잠시 들어온 것이다. 특히 한국은 선진시장만큼 수익률이 낮지도, 신흥시장처럼 위험하지도 않은 곳이어서 외국인이 몰리는 것으로 봐야 한다. 여기에 공매도한 주식에 대한 쇼트커버링(주식을 되사서 갚는 것)도 일정 작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솔직히 이제 곧 국내 기업들의 2007년 4분기 실적이 발표되면 ‘악!’ 소리가 날 것이 뻔하다. 최근 각 기업들이 구조조정과 공장가동 중단 등을 하고 있어 올해 1분기 실적은 더욱 나쁘게 나올 것이 명약관화하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인의 매수세가 장기간 이어진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외국인은 미국 증시가 약세를 보인 8일 1319억 원, 9일 990억 원의 주식을 팔아치우면서 6거래일간 이어온 순매수 행진을 마감했다.
하지만 아직 긍정적인 해석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외국인이 지난해 우리나라 증시를 과도하게 축소했기 때문에 정상적인 비중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또 정부의 경기부양책, 위험지수 하락, 원-달러 환율 안정 등도 국내 증시를 찾게 하는 요인이어서 장기간은 아니더라도 외국인의 순매수가 당분간은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글로벌 금융시장의 여건이 개선되고 있고 국내 증시도 패닉 상태를 벗어나면서 외국인이 매수에 나서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금융시장이 우려했던 것보다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는 것도 외국인 매수세를 불러오고 있다. 여기에 국내 주식 중 대표주들은 과도하게 저평가된 것들이 많은 점 역시 강점이다. 외국인들이 사 모으는 종목들이 이런 종목에 집중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증권사 연구원은 “현재 증시에는 정부의 경기부양책이라는 호재와 실물경기침체라는 악재가 모두 반영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인의 매수 움직임은 미국 등 세계 각국이 벌여온 제로금리에 따른 유동성 증가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유동성 흐름이 좋아지면서 이런 자금이 선진국을 넘어 우리나라와 같은 선진시장과 신흥시장 경계선에 선 국가에도 흘러들어오고 있는 것”이라며 “유동성이 안정된 만큼 외국 자본이 국내 증시에서 급속하게 빠져나간다거나 국내 증시 급락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외국인이 강한 매수세를 보이는 종목이 상승세를 타고 있는 만큼 이 종목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여러 해석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매수세에 혹해서 무작정 따라가서는 안 된다는 조언에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선엽 굿모닝신한증권 연구원은 “외국인 매수와 지수 반등에도 불구하고 장세 대응은 녹록지 않다. 반등 폭이 큰 종목을 추격매수하면 단기적으로 낭패를 볼 수 있다”며 “무리한 추격매수보다는 덜 오른 업종의 길목을 지켜 차례를 기다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외국인이 관심을 두는 종목과 정책수혜주, 특히 녹색성장과 관련된 종목 중심의 단기대응이 좋다”고 밝혔다.
이의순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