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 인선이 1호 폭탄으로… ‘설거지’가 문제다
11일 해명 기자회견을 마치고 회견장을 떠나는 윤창중 전 대변인. 기자들의 질문에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수행 중 ‘성추행 의혹’으로 전격 경질되면서 잠잠했던 박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인사 논란이 재점화하는 형국이다. 새 정부 출범 전후, 언론과 여론이 지적한 함량 미달의 부적절한 인물을 청와대, 정부 각 요직에 전격 발탁한 박 대통령과 청와대, 집권 여당으로선 앞으로 전개될 ‘추문 정국’에서 어떻게 퇴로를 열지 고민해야 할 판이다.
“윤창중 씨 말고도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 등 임명 강행한 인물을 두고 ‘시한폭탄을 안고 가는 것과 같다’는 지적이 꾸준했는데 결국 ‘1호 폭탄’이 결정적인 시기에 터졌다. 윤 씨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박근혜 사람들’에 대해 삐딱하게 보는 시선이 고개를 들 가능성이 크다.”
한 정치권 인사의 관측이다. 하지만 추문 정국 출구전략 마련이라는 절대적 과제를 안은 청와대로선 당장 수가 없어 보인다. 박 대통령의 방미 성과를 국민에게 대대적으로 홍보하겠다는 잔치판이 윤 전 대변인의 ‘추문 설거지’로 난장판이 됐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전격 경질에 이어 윤 전 대변인에 대한 면밀한 수사 촉구와 신속한 사태 파악 등 교과서적인 대응으로 국민적 궁금증을 최대한 이른 시일 내 해소해야만 추문 정국이 확대 재생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문제는 외신 보도다. 일부 국내 우호 언론에 대해선 어느 정도 톤다운(논조 약화)이 가능하지만 외신에는 정부의 회유와 압박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외 토픽이 외신에서 생산되고 국내 언론이 이를 받아쓰고 이를 또 외신이 보도함으로써 핫이슈의 반복 보도가 불가피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특히 박 대통령의 첫 방미 외교 중 발생한 초유의 사태이자, 사건 장본인이 ‘대통령의 입’이라는 측면에서 방미 성과는 폄훼될 공산이 크다.
새 당대표가 선출된 민주당으로선 제1 야당의 공격성을 유감없이 발휘할 기회로 다가오고 있다. 여당인 새누리당에서까지 우려했던 인물이 큰 사고를 치면서 불통, 난맥상, 인사 시스템 등에 대해 칼을 빼들고 있다. 타깃은 당연히 윤 전 대변인 개인이 아니라 바로 박 대통령인 것이다.
민주당 배재정 대변인은 “민주당과 국민이 임명을 반대했음에도 대통령이 강행했던 오기, 불통 인사의 대표적 인물이 불러온 국격 추락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고 겨눴다. 민주당 박기춘 원내대표 겸 사무총장은 “한국 패션 외교에 흙탕물을 끼얹은 격으로 국가적으로 수치스러운 일이다. 대통령이 정상외교를 하는 와중에 대변인은 성추행이라니…. 참으로 창조적 행태”라고 꼬집었다.
민주당은 박 대통령의 사과, 철저한 진상조사, 책임라인 추가 경질이라는, 기본적인 요구 외에도, 윤 전 대변인이 사건 발생 직후 귀국하는 과정에서 청와대가 이를 묵인·방조한 사실이 없는지, 사건 인지와 보고 과정에서 은폐하려 한 의혹은 없는지까지 따진다는 방침이다.
특히 정치권은 지난 4·24 재·보궐 선거에서 참패한 민주당이 당 대표 선출 이후 원내대표 경선과 당직 개편 및 인사를 앞둔 마당에 ‘선명한 야당론’이 힘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윤 전 대변인의 추문 정국을 오는 10월 재·보선까지 끌고 가면서 인사 잡음을 일으킨 국무위원과 청와대 인사들의 행적을 모조리 살펴 ‘추문 동력’에 계속 연료를 공급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새누리당으로선 청와대 편을 들 수도, 야권처럼 각을 세우지도 못하는 형국이어서 일단 ‘관망하자’는 부류가 있다. 서병수 당 사무총장은 “조사를 철저히 해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고, 이한구 원내대표는 “지금 현재로서는 사건의 정확한 경위를 모르기 때문에 뭐라고 말하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에 대한 건전한 견제를 바라는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는 “이 참에 할 말은 하자”는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내고 있다.
특히 박 대통령에 대해 할 말은 해왔다는 친박계 유승민 국회 국방위원장이 올 초 인수위원회 대변인으로서 윤 전 대변인에 대해 “너무 극우다. 당장 자진사퇴하는 게 맞다”며 돌을 던진 바 있다. 당시 유 위원장은 “(박 대통령은) 유능한 사람을, 흙 속의 진주를 발굴해서 써야 한다. 친한 사람, 가까운 사람 위주로 하지 말아야 한다. 혼자서 인사를 하면 절대 안 된다. 인사는 검증도 해야 하지만 검증 이전에 훌륭한 재목을 찾는 게 중요한데, 그걸 혼자서 어떻게 하느냐”고 다그쳤다.
윤 전 대변인은 야권 지지 인사들을 “정치적 창녀”라고 비난하고, 문재인 전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를 ‘반 대한민국 세력’으로 치부하는 등 지나치게 극우적이라는 문제제기는 여야 없이 제기돼 왔다. 결국 윤 전 대변인 문제에서만큼은 유 위원장의 앞선 지적이 맞아 떨어진 셈이다.
새누리당 내에서 힘을 잃어가는 친이명박계나 중립온건파 사이에서도 박 대통령의 인사에 대한 쓴소리를 내놓기 시작했다. 김성태 의원이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고 그런 몰지각한 행위를 했다면 청와대도 국민에게 할 말 없을 것”이라며 “윤 대변인은 그동안 제한적으로 이뤄진 인사의 대표적 인물이었기 때문에 더는 이런 일이 재발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 것이 신호탄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다소 앞서 간 관측이지만 이참에 청와대에 제대로 된 직언을 하지 못한 무색무취한 당 지도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무성 의원이 국회로 돌아와 ‘역할론’ 요구가 이곳저곳에서 분출되는 마당에 당을 ‘강성 체질’로 바꿀 필요가 있지 않으냐 하는 것이다.
지난 2006년 최연희 전 의원의 ‘여기자 성추행 사건’, 2010년 강용석 전 의원의 ‘아나운서 성희롱 발언’, 최근 심재철 최고위원의 ‘본회의장 누드 검색 해프닝’ 등 윤창중 전 대변인이 과거 칼럼에서 표현했듯 ‘색누리당’이라는 비아냥에 시달렸던 집권 여당으로선 이번 추문 정국으로 청와대의 잘못을 덮어쓰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선우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