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쓸짓해놓고… “내가 죽을 뻔” 적반하장
지난 1일, 인천 남동 인근 지구대에 신고 하나가 접수됐다. 신고 내용은 한 남성이 같이 살던 여성에게 살해 위협을 받았다는 것이다. 신고자 박 아무개 씨는 A 씨가 음료수에 방부제를 타 자신에게 건넸다며 ‘상해죄’로 A 씨를 신고했고, A 씨는 박 씨의 집에서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그런데 경찰 조사 결과 A 씨는 뜻밖의 주장을 하고 있었다. A 씨의 말에 따르면 “그동안 박 씨가 나를 감금했고, 성폭행했으며 심지어 혼인신고까지 강제로 했다”는 입장이었다. 경찰은 곧바로 A 씨를 성폭력피해자 원스톱지원센터로 옮겨 보호조치를 취하는 한편, A 씨의 진술에 근거해 박 씨에 대한 조사도 병행하기 시작했다.
여성 A 씨의 진술을 토대로 한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국내 한 지방대학을 졸업한 A 씨는 취업을 고민하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로 결심했다. 시험을 준비하고 있던 어느 날 A 씨는 인터넷 만남 사이트에 접속을 하기 시작했다. 박 씨가 A 씨에게 접근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만남 사이트로 친분을 쌓은 박 씨와 A 씨가 직접 만난 시점은 지난 4월 11일이다. 박 씨는 A 씨에게 “취업을 시켜주겠다”며 인천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함께 갈 것을 청했다. A 씨는 박 씨의 집에 의심 없이 들어갔다. 그런데 그것이 ‘지옥’의 시작일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박 씨의 본색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
A 씨에 따르면 박 씨는 순식간에 돌변해 A 씨에게 흉기를 들이대며 성관계를 강요했다고 한다.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너를 윤락가에 팔아버리겠다”며 윽박지르는 박 씨에게 살해 위협을 느낀 A 씨는 그대로 성폭행을 당하고 만다.
이후 박 씨는 A 씨를 집 안에 감금시키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완전한 사육’을 감행한 것. 박 씨는 A 씨에게 “네 집주소를 알고 있다. 말을 듣지 않으면 너의 가족까지 해치겠다. 너의 언니까지 성폭행할 수 있다”며 협박의 강도를 높여갔다. 성폭행 횟수도 나날이 늘어갔다. 사건이 수면에 드러날 때까지 박 씨가 A 씨를 성폭행한 횟수는 50여 차례라고 전해진다.
A 씨가 박 씨의 집에 감금된 지 일주일째 되던 날. 박 씨는 뭔가를 결심한 듯 A 씨에게 “너는 내 여자다. 혼인신고를 하자”며 무작정 통보하기에 이른다. 이후 혼인신고를 하기 위해 박 씨가 벌인 행각은 충격적이었다. A 씨에게 흉기를 들이대며 구청까지 끌고 간 것. 박 씨의 폭행과 협박에 시달린 A 씨는 박 씨의 요구에 그대로 응해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둘은 그렇게 혼인신고를 하게 된다.
혼인신고 후 참다못한 A 씨의 ‘반격’이 시작된다. 음료수에 방부제를 타서 박 씨에게 먹이려고 한 것. 박 씨로부터 탈출하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박 씨가 이를 귀신같이 알아차림으로써 박 씨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박 씨는 ‘가정 폭력’이라며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다. 박 씨는 상해혐의로 A 씨에게 합의금을 요구했다. 합의금의 금액만 6000만 원. 이를 A 씨가 거절하자 박 씨는 “A 씨가 상해를 입혔다”며 지역 지구대에 A 씨를 신고하기에 이른다.
이때 신고를 받은 경찰이 박 씨의 집에서 A 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했고, 경찰 조사 결과 A 씨의 진술을 토대로 오히려 박 씨의 성폭행 혐의가 드러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경찰 수사는 좀처럼 쉽게 풀리지 않고 있다. 우선 박 씨가 A 씨를 성폭행했다는 진술만 있을 뿐, 증거가 부족한 탓이다. 인천 지역 일간지 <인천일보>에 따르면 경찰 관계자는 “A 씨가 주장하는 성폭행 사건 시기가 한참 오래전인 데다 당시 DNA 등 직접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사실상 혐의를 입증하기 어렵다”고 토로하고 있다.
이밖에도 방부제가 섞인 음료수를 먹인 사건 자체에 대해서는 박 씨가 ‘피해자’이기 때문에 경찰에서도 적극적으로 수사하기에 애를 먹고 있는 상황이다. 경찰 관계자는 “증거도 없이 무작정 수사를 감행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라 말을 해줄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한편 경찰 조사 결과 여성 A 씨가 박 씨를 만난 이후에도 자신의 집에 몇 차례 다녀왔다는 점이 드러나 그 이유에 대해 의구심이 남아 있는 상태다. 감금을 당했다던 A 씨의 주장과 배치되는 정황이기 때문이다. 경찰은 이에 근거해 A 씨가 박 씨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던 또 다른 속사정이 있었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도 조사를 진행 중이다.
A 씨의 ‘성폭행’ 주장과 박 씨의 ‘상해’ 주장이 교차하고 있는 상황에서 박 씨의 과거 행적도 눈길을 끌고 있다. 박 씨의 ‘화려한 전과’ 때문이다. 박 씨는 지난 2009년 영리유인 등으로 1년 6개월간 구치소에서 복역한 것을 비롯해,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과 강도강간, 폭력행위 등으로 10여 차례나 구치소를 드나들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통신기록 및 여러 혐의점 등을 수사하고 있다”며 “이번 주나 다음 주 중에는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힐 것 같다”고 전망했다.
경찰 수사 결과에 따라 어느 한쪽이 성폭행범이 될 수도, 아니면 ‘남친’을 ‘상해’하려 한 폭행범이 될 수도 있는 이 사건의 결말이 궁금할 따름이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