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대선 개입…이건 탄핵감이야”
문희상 민주당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27일 민주당의 과제와 안철수 신당 창당에 대한 전망 등 향후 정국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김한길 당대표에게 당 지도부 바통을 넘겼다. 시원섭섭하겠다.
“시원섭섭하다. 아니, 섭섭한 건 하나도 없다. 애초에 하고자 해서 맡은 직위가 아니었다. (대선 패배 직후였던 당시는) 당이 쓰러지고 넘어가는 상황이었다. 당시 나는 ‘똥바가지 썼다’고 표현했다. 누구도 안하려고 했으니까. 하지만 누구든 지명을 받으면 해야 한다는 합의가 있었고, 그렇게 운명적으로 비대위원장 자리가 내게 온 거다. 어찌됐건 누군가는 총대는 메야 했다. 그래도 돌이켜 보면, 열정만큼은 대단했다. 새벽부터 밤까지 회의만 200회가 넘더라. 죽기 살기로 했다. 오죽했으면 내가 비대위 백서까지 만들었다.”
― 가장 큰 보람은 뭐였나.
“처음부터 꼭 세 가지는 하자고 말했다. 첫째는 대선 평가 혹독하게 하자는 것, 둘째는 정치 불신을 걷어내기 위해 혁신하자는 것, 마지막이 전당대회를 가능한 빨리 멋지게 치르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온 것이 대선평가위원회, 정치혁신위원회, 전당대회준비위원회 삼두마차였다. 논란이 많았지만 그래도 대선평가보고서가 채택됐고, 난장판이었던 지난 전당대회와 달리 이번 전당대회는 패자도 승복하는 축제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다. 큰 보람이었다. 무엇보다 우리 비대위가 썩은 레일을 갈아치우고 새로운 레일을 깔았다고 자부한다.”
― 새로운 레일을 깔았다고?
“그렇다. 새로운 지도부는 우리가 깔아 놓은 새로운 레일을 발판삼아 달리기만 하면 된다. 예컨대 우리 비대위는 당원의 숫자를 전수 조사했다. 정당의 기본은 당원 아닌가. 민주당원이 200만 명이니, 권리당원이 20만 명이니 하는 얘기가 있었지만, 실제 조사해보니 이 모든 것이 허수였다. 비대위는 실질적 조사를 통해 실 당원수를 파악했고, 이를 토대로 전자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당원증 제도도 도입했다. 새 지도부는 이러한 시스템을 발판 삼아 앞으로 당원 확보 작업에 매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보람도 있었겠지만, 아쉬움도 많을 것이다. 외부에서 비대위에 대해 마냥 호의적인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이다. 나 스스로도, 국민들 눈에도 기대치에 못 미친 부분이 많다. 아쉬운 점이 많다. 특히 정치 혁신 부분은 한계가 있었다. 우리는 청사진만 만들었을 뿐이었다. 우리는 비상대책위원회였지, 비상대권위원회가 아니었다. 비대위는 합법적 당규의 틀 안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우리에게 혁명적 권한까지 줬으면 달랐을 거다. 30% 세비 삭감, 의원 겸직 금지 등 비대위에서 그려 놓은 정치혁신법의 청사진은 앞으로 6월 국회에서 여야가 본격적으로 논의할 일이다.”
― 보고서가 채택 됐다지만, 대선평가위와 관련해 당내 잡음이 심했다.
“문제를 제기해야 건강한 집단이다. 이것도 없으면 민주주의 집단도 아니다. 그저 무소불위 권력집단에 불과하다. 주류가 있으면 당연히 비주류가 있다. 어느 곳이든 민주적 조직 안에는 다 있다. 그래도 민주적 절차를 밟지 않았나. 외부에서는 무조건 친노-반노의 싸움으로 보려고 했지만, 그런 시각은 옳지 않다.”
― 대선평가보고서와 함께 대선자금검증보고서도 뒷말이 많지 않았나.
“대선자금검증의 의문제기는 정상이었지만, 실제 조사결과는 애초 의문점과는 달랐다. 특히 의문을 제기했던 당직자 한 사람이 문제였다. 해당 당직자가 ‘친노의 개입’으로 인한 특혜 업체의 계약이라는 식의 의문을 제기했지만, 실제는 그것과 달랐다. 이 당직자는 당에서 징계를 내렸다. 물론 법률적 절차를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좀 더 싼 단가와 업체를 선별해 계약했을 소지는 있었다. 이러한 낭비적 요소는 앞으로 유의해야한다고 본다. 비공개한 대선자금검증보고서를 보도했다는 <조선일보>는 알고 보니 보고서 뒤에 첨부한 진술서를 토대로 보도한 거였다. 아주 실수한 거다. 이에 대해서는 <조선일보>에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다.”
지난달 4일 민주당 전국대의원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된 김한길 후보가 문희상 전 비대위원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아주 간단하다. 앞으로 선거에서 무조건 이기라는 것이다. 당장 10월 재보선과 내년 4월 지방선거가 있다. 이기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하다. 쥐를 잡아야 고양이다. 정당은 집권해야 한다. 애초 생각한 이상, 정책, 비전. 집권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 만약 김한길 지도부가 오는 재보선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 큰 위기에 쳐할 수 있다는 말인가.
“위기가 아니라, 선거에서 지면 딱 사표 내야지. 지난 총선 때 민주당이 패배하고 한명숙 전 대표, 문성근 전 대표대행 줄줄이 그만뒀다. 이해찬 전 대표는 아예 대선을 치르기 전에 사표 냈다. 마찬가지다. 김한길 지도부가 이번 재보선에서 졌다고 치자. 반대 진영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안철수건 새누리당이건 무조건 이겨야 한다.”
― 민주당이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국민의 신뢰를 되찾아야 하지. 신뢰를 얻는 방법은 결국 혁신밖에 없다. 혁신은 두 가지다. 우선 계파주의를 없애야 한다. 주류가 있으면, 비주류가 존재하는 법이기 때문에 계파를 없앨 수는 없다. 하지만 계파 독점과 전횡과 같은 계파주의는 반드시 없애야 한다. 계파끼리 싸워서 선장되면 뭐하나. 난파선 선장되면 아무 소용없다. 또 한 가지는 앞서 강조한 정치혁신법 관철이다. 기득권을 내려놔야 한다. 지금도 많은 의원들이 대학 명예교수직에 이름을 올려 놓으면서 부수입을 챙기고 있다. 이런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으면 힘들다.”
― 10월 재보선의 최대 난적은 안철수 의원 아닌가.
“안철수 의원, 문제 많다. 지금까지 새누리당, 민주당 욕만 했다. 국민들도 처음에는 ‘맞아’하고 무릎을 쳤다. 이런 정치 불신이 안철수 현상의 진면목이었다. 물론 국민들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안철수 의원의 능력은 탁월하다. 솔직히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가 48%나 얻은 것도 안철수 의원의 힘이 컸다. 이건 나도 인정한다. 하지만 정치판에는 구세주도 메시아도 없다. 안철수가 메시아가 아니다. 지금까지 안 의원은 구름 위에서 말만 던졌다. 이제서야 땅에 내려왔다.”
―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말인가.
“우리도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정당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잘못해도 정당을 혼내야 한다. 민주정치에서는 정당만이 책임을 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를테면, 수학여행에서 사고가 났다고 치자. 그럼 수학여행 아예 없애야 하나. 사고 대책을 세워야 하지 수학여행 못 가게 하면 안 된다. 정당도 잘못하면 혼내고 고쳐야 하지, 없애는 것은 안 된다.”
― 안철수 의원도 최근 정책네트워크 내일을 선보이면서 신당창당 의지를 내비쳤다.
“아주 좋다. 안철수 의원은 바로 그런 것이 필요하다. 최장집 명예교수를 영입하면서 창당까지 간다면 난 박수를 보낼 것이다. 그래야 민주당과도 경쟁이 가능하다. 지금처럼 국회에서 아무것도 한 것 없이 우르르 몰려만 다니는 것은 정말 아니다. 국민들도 이런 것 다 감안해서 평가할 것이다. 안철수 의원도 잘못하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이다.”
― 박근혜 정부에 대해서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윤창중 성추문 사태는 요즘 들어 뭔가 조용해지고 있는 분위기다.
“그 문제는 절대 우물우물 처리하면 안 된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 당장 아프더라도 깨끗하게 정리해야 한다. 모질게 진실을 밝히고 당사자는 모질게 처분해야 한다. ‘내가 사람을 잘못 봤다’가 아니라 ‘내가 잘못했다’고 국민께 사과해야 한다. 윤창중 전 대변인은 야당뿐 아니라 여당도 청와대도 언론도 다 반대했던 인사다. 그 사람 평상시 글을 봐라. 내가 제일 혐오하는 극단적인 사람이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는 상상 이상으로 추앙했지만, 반대편 사람에게는 글로 할 수 있는 최대치로 짓이겼다. 인격적으로 그런 사람이다. 언젠가 사고 칠 줄 알았다. 양반은 자고로 설근, 족근, 남근 세 뿌리를 조심해야 하는데….”
― 국정원의 선거개입 의혹도 점차 확산되고 있는데.
“우리가 지난 대선 때 그것 때문에 얼마나 곤욕을 치렀나. 그때 박근혜 대통령이 우리에게 ‘일개 여성의 인권을 갖고 그릇된 행동을 하고 있다’며 다그쳤다. 우리는 그때 꼼짝 못하고 당했다. 정말 그때는 우리가 뭔가 잘못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 국정원의 선거개입이 다 사실로 드러나고 있지 않나.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나. 좀 더 사실이 명확하게 밝혀지면, 박근혜 대통령도 사과 안 할 수 없을 거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지방선거철에 그저 현장에 갔다는 이유로 탄핵당한 사실이 있다. 지금 이건 명백한 선거법 위반이다. 그 때처럼 숫자만 채워지면 탄핵 못할 것도 없다. 박 대통령은 그러기 전에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야당도 가만히 두지 않을 거다.”
― 박근혜 대통령에게 꼭 주문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비대위 시절, 회담을 하면서 이미 박근혜 대통령에게 얘기했다. 무엇보다 소통을 해야 한다. 제일 먼저, 청와대와 소통해야 한다. 가장 가까운 청와대와만 소통했어도 윤창중 성추문 사태 같은 것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다음이 여당과의 소통이다. 여당에 훌륭한 사람 많다. 그리고 마지막이 우리 야당과의 소통이다. 제발 가까운 곳부터라도 소통해야 한다. 소통은 두 가지다. 그저 듣는다는 의미인 경청(hearing)도 있지만, 경청을 통한 수용(accepting)이 더 중요하다.”
― 비대위에서는 내려왔지만, 앞으로 할 일이 많다.
“일단 한 달은 쉬겠다. 나도 좀 쉬어야지(웃음). 그 다음 계획이 있다. 현장 일선에 있는 지역 협의회 당원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조심스레 한 동네 한 동네 다니면서 당원들과 연수회를 통해 소통하며 당을 추스를 계획이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문희상 붓글씨 선물 화제
“쓴소리도 담아 선물”
국회 내 동아리인 서도회 회장을 벌써 8년째 역임하고 있는 문희상 의원의 서예 실력은 자타가 공인한 사안이다. 문 의원은 지난달 1일, 안철수 의원과의 접견 자리에서 서도회 가입을 권유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문 의원은 최근 비대위에서 내려오면서 마지막 선물로 지도부 인사들 한 명 한 명에게 손수 ‘사자성어’를 써서 돌렸다. 이 사자성어에는 문 의원이 해당 인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담았다고 한다. 문 의원은 “이제 난 마무리하는 시점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었다”며 “마지막 선물로 내 마음의 뜻을 담았다. 일부 인사에게는 쓴 소리도 담아 썼다”고 밝혔다.
이날도 문 의원은 인터뷰를 마치고 기자에게도 붓글씨를 써서 건넸다. ‘일심관지(一心貫之)’라는 경구였다. ‘마음을 하나로 꿰어 담아내라’는 뜻이 담겨있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쓴소리도 담아 선물”
문희상 전 비대위원장이 인터뷰 자리에서 붓글씨로 직접 ‘일심관지’라는 사자성어를 썼다. 이종현 기자
무엇보다 문 의원은 최근 비대위에서 내려오면서 마지막 선물로 지도부 인사들 한 명 한 명에게 손수 ‘사자성어’를 써서 돌렸다. 이 사자성어에는 문 의원이 해당 인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담았다고 한다. 문 의원은 “이제 난 마무리하는 시점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었다”며 “마지막 선물로 내 마음의 뜻을 담았다. 일부 인사에게는 쓴 소리도 담아 썼다”고 밝혔다.
이날도 문 의원은 인터뷰를 마치고 기자에게도 붓글씨를 써서 건넸다. ‘일심관지(一心貫之)’라는 경구였다. ‘마음을 하나로 꿰어 담아내라’는 뜻이 담겨있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안철수+손학규? 둘 다 망한다”
최근 여야를 불문하고 최대 관심사는 8월께 한국으로 돌아오는 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이 안철수 진영으로 합류할지 여부다. 현재 손 고문은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연수중이며 귀국 직전 대학생 지지자들과 배낭여행을 떠날 계획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손 고문의 동아시아미래재단 고문이자 후원회장 출신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안철수 진영으로 합류했기 때문에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문희상 의원은 이에 대해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다”면서도 “만약 그것이 현실이 된다면,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건 전형적인 패거리 정치이며 야권의 분열을 의미한다”며 “그건 안철수 의원이 줄곧 주장해온 ‘새정치’가 아닌 ‘헌정치’의 전형이다. 민주당도 안철수도 망하는 길”이라고 못 박았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문희상 의원은 이에 대해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다”면서도 “만약 그것이 현실이 된다면,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건 전형적인 패거리 정치이며 야권의 분열을 의미한다”며 “그건 안철수 의원이 줄곧 주장해온 ‘새정치’가 아닌 ‘헌정치’의 전형이다. 민주당도 안철수도 망하는 길”이라고 못 박았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