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주먹에 급성 뇌경색… 인생 망가져
과거 고등학교 야구부 내야수들이 선배에게 듣던 말이다. 경기 중 처리하기 어려운 공이 날아와도 일단 온몸을 던져 막아 세우라는 의미다. 그 공을 흘려 실점이라도 했다간 경기가 끝나고 선배들의 방망이 구타가 기다리고 있었다. 학교 운동부 내의 폭행 및 가혹행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전통이란 미명 아래 자행되고 용인된 폭력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사회적 문제를 불러 일으켰다. 그때마다 스포츠계와 교육당국이 나서 폭력행위 근절을 다짐하지만 그런 악행을 뿌리 뽑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 17일 경기도 안산의 한 고층아파트에서 고등학교 1학년 황 아무개 군(16)이 떨어져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성남의 모 고등학교 야구부원인 황 군은 한 달 전 무릎수술 여파로 재활치료를 받느라 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해 힘들어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자신의 수첩에 “코치와 선배들 눈치 보이고 무서워 학교에 못 가겠다”는 글을 남겨 학교 운동부 내 폭력 및 가혹행위가 있었던 것이 아니냐 하는 논란이 일고 있다.
광운대 아이스하키팀 1학년인 이 아무개 씨(20)는 입학 전인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4월까지 선배 4명과 감독으로부터 아이스링크장 탈의실과 경기장 등에서 수시로 폭행을 당했다며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이 씨는 선배들로부터 “운동을 제대로 안 한다”, “얼굴이 미안한 표정이 아니다”, “말투가 마음에 안 든다” 등의 이유로 맞아 고막이 터지고 얼굴 감각이 저하되는 전치 4주 진단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지난 3월 9일 전북의 한 대학 사격부의 국가대표 상비군 한 아무개 씨(20)는 주말 외출을 나갔다 술을 먹고 귀가 시간을 넘겨 들어왔다는 이유로 선배에게 폭행을 당했다. 선배의 주먹에 턱이 부서진 한 씨는 급성 뇌경색 진단을 받았고 언어장애와 오른쪽 마비가 왔다. 폭행을 한 선배는 “규율을 어긴 잘못을 따끔하게 훈계하고 싶었는데 이런 결과를 가져올 줄 몰랐다”며 후회했다.
최근 몇 개월 사이에 중학교부터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운동부 내에서의 폭력 및 가혹행위로 인한 사건이 줄을 잇고 있다. 어린 선수들의 인권 보호를 위해 스포츠계와 교육당국이 가혹행위 근절을 위한 여러 가지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아직도 일선 운동부에서는 이런 악행들이 암암리에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기자가 만나본 다양한 종목(야구·배구·축구 등)의 학교 운동부 학생들은 과거에 비해선 폭행과 가혹행위가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그런 행위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조심스레 털어놨다.
고등학교 축구부 2학년인 A 군(18)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혹행위가 진짜 심했다. 전국대회에 나가서 지거나 하면 선배들이 후배들 엎드려뻗쳐 시켜놓고 돌아가며 방망이로 엉덩이를 때렸다”면서 “그걸 이기지 못하고 다른 학교 축구부로 전학 간 친구는 거기서도 유사한 폭행을 당했다”라고 전했다. 대학교 야구부 3학년 B 씨(22) 역시 “선배들이 위계질서를 세우기 위해 주기적으로 후배들을 모아놓고 바닥에 머리 박기를 시킨다. 심할 땐 ‘맞으면 잘한다’는 명분 하에 야구방망이 등으로 때린 적이 있다”고 토로했다. 특히 폭력을 행사하는 수준은 아니더라도 선수단을 집합시켜 기합을 주는 경우는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고 했다.
예전에는 감독이나 코치가 직접 선수들을 폭행하거나 기합을 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그러한 모습은 거의 사라졌다고 한다. 대신 감독이 고참들에게 무언의 지시를 내리고, 가혹행위가 벌어지는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축구선수 A 군은 “성적이 좋지 않거나 분위기가 어수선할 때 감독이나 코치가 고학년 선수들에게 눈치를 준다. 그러면 어김없이 그날 밤에는 집합 명령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역사가 오래된 명문 고교 운동부일수록 좋은 성적을 내 학생들을 프로나 상급학교에 진학시키는 게 중요해, 선후배 간의 폭행과 가혹행위가 전통이란 미명 아래 자행되고 용인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야구부 B 씨는 “학교 입장에서는 명문의 이름을 유지하기 위해선 선수들을 꾸준히 좋은 팀에 보내야 한다. 야구가 단체운동이라 후배가 순간의 실수로 질 수도 있는 건데 그걸 이유로 폭행 등의 가혹행위가 벌어진다”고 말했다.
남학생들뿐 아니라 여자 선수들도 학교 운동부 내 폭행·가혹행위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천안의 한 고등학교 사이클부 여학생 3명은 전국체전을 대비한 전지훈련 중 여자 코치에게 정신이 나태하다는 이유로 구타를 당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됐다. 피해 학생들은 “여 코치가 각목으로 50대씩 때렸다”며 “엉덩이와 허벅지에 피멍이 드는 바람에 자전거 안장에도 앉을 수 없어 제대로 훈련조차 받을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한편 대학 야구부 4학년 C 씨(23)는 “학교 운동부는 군대와 같다고 보면 된다. 국방부도 매일 군대 내 폭력을 근절하겠다고 하지만 아직도 자행되고 있듯이, 학교 운동부도 그동안 벌어져온 가혹행위가 쉽게 없어지겠느냐”고 반문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자살한 황 군은 A 고 출신
구타 없는 명문고에서 왜?
아마야구계는 황 아무개 군의 자살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성남의 A 고가 사건의 중심이라는 데 놀라고 있다. 1997년 창단된 A 고 야구부는 그간 고교야구계에선 좋은 평가를 받았다. 프로야구 최고 우완 선발투수인 윤석민(KIA), 오재원(두산), 이현준(롯데) 등을 배출하며 경기 서남부지역의 ‘신흥 명문고’로 불렸다. 특히나 이 학교는 창단 때부터 올해까지 김 아무개 감독이 사령탑을 맡으며 건실한 야구팀으로 꼽혔다.
한 고교야구 감독은 “다른 학교는 몰라도 A 고는 원체 김 감독이 구타나 선수간 따돌림에 예민하게 반응해 지금껏 그와 관련한 문제가 전혀 없었다”며 “되레 김 감독은 지도자들 사이에서 ‘너무 유한 감독’으로 통했다”고 귀띔했다.
김 감독은 “제자의 죽음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며 말을 아꼈다. 김 감독에 따르면 황 군은 평소 말수가 없고, 조용한 선수였다.
“황 군의 포지션은 투수였다. 아직 저학년이라, 실전 투입보다는 피칭훈련을 시키는 수준이었다. 감독이나 코치가 이야기하면 잘 따르고, 훈련에도 충실한 아이였다. 다만, 중학교 시절 팔꿈치 뼛조각이 떨어졌는지 고교 입학 당시 신체검사에서 그 부분이 발견돼 수술을 받고, 재활 중이었다.”
김 감독은 황 군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지 연방 한숨을 내쉬며 “나도 왜 제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 이유를 알고 싶다”고 말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
구타 없는 명문고에서 왜?
아마야구계는 황 아무개 군의 자살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성남의 A 고가 사건의 중심이라는 데 놀라고 있다. 1997년 창단된 A 고 야구부는 그간 고교야구계에선 좋은 평가를 받았다. 프로야구 최고 우완 선발투수인 윤석민(KIA), 오재원(두산), 이현준(롯데) 등을 배출하며 경기 서남부지역의 ‘신흥 명문고’로 불렸다. 특히나 이 학교는 창단 때부터 올해까지 김 아무개 감독이 사령탑을 맡으며 건실한 야구팀으로 꼽혔다.
한 고교야구 감독은 “다른 학교는 몰라도 A 고는 원체 김 감독이 구타나 선수간 따돌림에 예민하게 반응해 지금껏 그와 관련한 문제가 전혀 없었다”며 “되레 김 감독은 지도자들 사이에서 ‘너무 유한 감독’으로 통했다”고 귀띔했다.
김 감독은 “제자의 죽음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며 말을 아꼈다. 김 감독에 따르면 황 군은 평소 말수가 없고, 조용한 선수였다.
“황 군의 포지션은 투수였다. 아직 저학년이라, 실전 투입보다는 피칭훈련을 시키는 수준이었다. 감독이나 코치가 이야기하면 잘 따르고, 훈련에도 충실한 아이였다. 다만, 중학교 시절 팔꿈치 뼛조각이 떨어졌는지 고교 입학 당시 신체검사에서 그 부분이 발견돼 수술을 받고, 재활 중이었다.”
김 감독은 황 군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지 연방 한숨을 내쉬며 “나도 왜 제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 이유를 알고 싶다”고 말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