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이건희’ 찜?
▲ (왼쪽)조양호 한진 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 ||
이건희 전 회장의 IOC 위원 자격 정지 가능성은 현재까지 반반인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IOC 위원이던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처럼 기업비리에 연루돼 13개월 동안 ‘자격정지’됐다가 복권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현재 IOC의 내부 분위기를 계속 지켜보면서 적절한 대응책을 찾고 있다”며 “아직까지는 그 누구도 결론을 예측할 수 없으며 IOC 위원 선출에 대한 세부 계획도 정해진 것이 없다”라고 말했다.
만약 ‘이건희 IOC 위원’의 자격이 정지된다면 한국은 문대성 선수위원 한 명만 남아 스포츠 외교에 구멍이 날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나라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및 2020년 부산하계올림픽 유치 등 굵직한 국제적 스포츠사업 계획이 산적해 있다.
따라서 정부 차원에서도 새 IOC 위원으로 밀 만한 인물을 물색 중인 것으로도 알려진다.
물론 ‘인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박용성 대한체육회장, 강영중 세계배드민턴연맹(BWF) 회장(대교그룹 회장) 등이 IOC 위원 출마 의사를 밝혀왔고 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WTF) 총재도 후보군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미 IOC 위원을 지낸 바 있는 박용성 회장은 지난 2006년 기업 비리에 연루돼 13개월 동안 IOC 위원 자격이 정지됐다. 그러다 2007년 4월 복권됐다가 그해 9월 국제유도연맹(IJF) 회장직을 사퇴하면서 IOC 위원도 그만뒀다.
하지만 그는 지난 2월 열린 선거에서 신임 대한체육회장으로 선출돼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는 선거 당시 “우리나라 체육의 국제적인 위상을 높이도록 하겠다”고 밝혀 대한체육회장을 발판으로 IOC 위원에 재도전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지난 5월 BWF 회장 선거에서 연임에 성공한 강영중 회장은 선거 전인 지난해 “연임에 성공한다면 IOC 위원 출마도 고려할 수 있다”고 언급해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된다.
▲ 2004년 아테네올림픽 남자 유도 -60kg급 시상식에서 당시 IOC위원이었던 이건희 전 회장과 박용성 회장이 시상을 한 뒤 국가연주를 듣고 있다. | ||
IOC 위원은 크게 네 가지 방법으로 선출된다. 올림픽 운동에 헌신한 개인 중 IOC 총회에서 선출하는 위원 70명과 국제경기단체 회장 중 15명, 각국 올림픽위원회(NOC) 위원장 중 15명, 문대성 위원처럼 역대 올림픽 메달리스트 중에서 뽑는 선수위원 15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 회장과 김 회장 모두 국제경기단체 회장을 역임한 경력이 없는 것이 흠이지만 면면을 살펴보면 가능성은 있다.
조양호 회장은 최근 대한탁구협회 회장과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공동유치위원장을 맡아 활발한 스포츠 외교 행보를 펼치고 있다. 조 회장은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지난 7월 3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28차 아시아올림픽평의회 총회에 참석했다. 조 회장은 이때 10여 명의 IOC 위원들을 일일이 만나며 지난 두 차례의 유치 실패 원인에 대한 의견을 청취하면서 부족한 부분에 대한 자문도 받았다. 게다가 전 세계 스포츠계에 커다란 영향력을 갖고 있는 쿠웨이트 왕족 셰이크 아마드 알 파하드 알사바 아시아올림픽평의회 의장과 만나 한국과의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힘썼다.
원래 조 회장은 세계 유명 기업 및 지도층과 다양한 분야에서 인맥을 구축하고 있을 만큼 국제적 감각이 뛰어나며 수준급의 영어 구사 능력을 가진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조 회장이 만약 IOC 위원에 도전한다면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다. 최근엔 회사 내 TF팀을 꾸려 IOC 위원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그러나 한진 관계자는 “TF팀을 꾸린 사실이 없다”면서 “회장님은 현재 대한탁구협회 회장과 평창동계올림픽 공동유치위원장을 맡고 있어 다른 일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고 밝혔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IOC 위원 후보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김 회장은 국제아마복싱연맹 부회장과 대한아마추어복싱협회 회장, 올림픽기념사업추진위원회 위원 및 대한체육회 부회장을 지냈다. 지난 29일에는 신설 아마추어복싱연맹 산하 국제복싱발전재단 초대 이사장에 올랐다. 이러한 스포츠계 경력과 정평이 난 국제적 인맥이 김 회장의 강점이다.
지난 6월 16일 김 회장이 미국 워싱턴 의사당 인근 식당에서 에니 팔레오마바에가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아시아태평양소위 위원장을 독대해 오찬을 나누며 한미 FTA를 비롯한 양국 현안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 등 활발한 민간 외교 활동을 벌인 것만 봐도 인맥의 깊이를 확인할 수 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대선 초기부터 지원하며 국제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팔레오마바에가 아태소위원장은 김 회장과는 각별한 사이다. 김 회장은 유엔한국협회 회장 활동 등 민간외교를 하면서 얼 포머로이 하원 의원,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등 미국 정계와도 두터운 인연을 맺고 있다.
지난 8월 17일 김 회장이 63빌딩에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함께 오찬을 한 것으로 알려지자 ‘IOC 위원 도전을 위한 사전포석’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이에 대해 한화 관계자는 “김승연 회장이 현재 유엔한국협회 회장을 맡고 있어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한국을 방문하자 함께 식사를 한 것일 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특히 김 회장은 과거 보복 폭행 사건 등으로 실추된 이미지 쇄신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한국의 영향력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면 김 회장 본인뿐만 아니라 기업 이미지 향상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한화그룹 관계자는 “회장님이 평소 스포츠에 관심이 많고 대외 활동도 열심히 해서 그런 이야기가 나온 것 같다”며 “현재까지는 IOC 위원 출마를 준비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윤구 기자 tru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