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형, 분가 보따리 벌써 챙기게?
▲ 최태원 회장 연합뉴스 | ||
통신장비업체 SK텔레시스는 지난 8월 27일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최신원 SKC 회장과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 정만원 SK텔레콤 사장 등 계열사 최고경영진이 참석한 가운데 휴대폰 ‘W’의 대대적인 론칭 행사를 열었다. SK텔레콤이 SK텔레시스와 직접적인 지분 관계는 없지만 SK텔레시스 매출의 72%가 SK텔레콤과의 거래에서 발생할 정도로 깊은 협력관계를 갖고 있다.
SK텔레콤이 SK텔레시스의 휴대폰 사업을 적극 후원할 것이란 전망이 대체적이지만 일각에선 다른 시각을 내놓기도 한다. 당연해 보이는 협력관계에 대한 해석이 엇갈리는 배경엔 최태원 회장과 박병엽 팬택계열 부회장의 특별한 관계가 깔려 있다. 지난 2005년 SK그룹이 잘나가던 계열사 SK텔레텍을 팬택에 매각했는데 그 배경을 두고 말들이 많았다. SK텔레텍은 ‘스카이’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키워냈지만 SK텔레콤과 신세기통신 합병으로 인해 정부당국으로부터 시장지배적 사업자 판정을 받아 이동통신시장 점유율 50% 제한과 국내 연간 120만 대 판매제한 처분을 받았다. 이동통신시장 최강자인 SK텔레콤의 배경으로 SK텔레텍이 단말기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논리에서였다.
▲ 최신원 회장 | ||
팬택의 속을 더 긁을 법한 대목은 이번 W 론칭 과정이 SK텔레텍 출신들에 의해 진행됐다는 점이다. SK텔레시스의 휴대폰 사업을 이끄는 윤민승 전무를 비롯한 상당수 인력이 SK텔레텍 매각 당시 팬택으로 갔다가 팬택의 경영악화로 인해 SK텔레시스에 재입사한 인사들이다. 재계 일각에선 “팬택의 무리한 SK텔레텍 인수가 경영악화의 원인이 됐다”는 이야기가 나돌기도 했다.
SK의 휴대폰 사업 재진출은 최신원 SKC 회장의 의중에 따른 것이라고 전해진다. SK텔레시스는 SKC가 지분 77.13%를 보유한 회사다. SK텔레시스 수뇌부엔 최신원 회장 측근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재계에선 최태원 회장과 박병엽 부회장과의 관계에도 불구하고 최신원 회장이 휴대폰 사업 진출 카드를 꺼내든 배경에 주목한다.
SKC 지분율을 조금씩 늘려가고 있는 최신원 회장은 친동생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과 SK그룹에서 분가할 것으로 전망돼 왔다. 이런 까닭에 SK텔레시스의 휴대폰 사업 진출을 통한 포트폴리오 확대로 훗날에 대비하려는 포석으로 받아들여진다. 재계 관계자들은 “최신원 회장이 SK가 맏형인 만큼 (휴대폰 사업 진출 의사에 대해) 동생인 최태원 회장이 이래라 저래라 하긴 어려웠을 것”이라 입을 모은다.
SK텔레시스의 새 휴대폰 브랜드 이름에 대한 여러 해석도 SK가 계열분리 전망과 관련한 또 다른 흥밋거리를 낳는다. SK텔레시스 측이 공식적으로 밝힌 ‘W’의 의미는 ‘언제(Whenever) 어디서나(Wherever) 무엇이든(Whatever) 가능케 해준다’는 뜻이다. ‘또 다른 당신’(Double You)이라는 뜻의 더블유라는 발음에서 따온 이름이기도 하다.
▲ SK텔레시스가 8월 27일 기자간담회에서 휴대전화 브랜드 ‘W’를 공식 선언했다. | ||
최신원 회장의 SKC 지분율이 3%에 불과해 지분 42.50%를 보유한 SK㈜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는 재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최신원 회장이 분가 대상으로 워커힐을 요구할 것”이란 관측이 나돌기도 했다.
계열분리와 관련된 말들이 나올 때마다 SK 측은 “추진되는 바 없다”고 일축해왔지만 최신원 회장이 SKC 지분을 사들일 때마다 ‘분가를 향한 일보 전진’으로 해석되곤 했다. 지난 1998년 최종현 2대 회장이 타계하면서 SK가 맏형이자 고 최종건 창업주 아들인 최신원 회장이 아닌 고 최종현 회장 아들 최태원 회장이 총수에 오른 이후로 SK가의 계열분리설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지난 8월 최신원 회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SKC와 SK증권 지분율을 15%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힌 점도 계열분리 행보를 주시하는 재계의 큰 관심을 샀다. SKC야 그렇다 쳐도 최태원 회장의 애착이 강한 것으로 알려진 SK증권 지분율 확대를 언급한 의도에 대해 여러 뒷말이 나돌았다. SK 측은 최태원 회장과 최신원 회장의 형제애가 남다르다는 점을 줄곧 강조해왔다. 그러나 이런 노력이 두산과 금호아시아나의 형제간 갈등을 지켜본 호사가들의 발칙한 상상을 잠재울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