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공룡’ 해외선 펄펄 국내선 설설
▲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외풍 논란’ 에 시달리는 포스코. 이와 관련 정준양 회장(작은사진)을 국감 증인으로 채택해야 한다는 주장이 야당에서 제기되기도 했다. | ||
“철강산업의 도요타로 포스코를 발전시키는 것이 제 개인적인 목표고 희망입니다.”
지난 8월 초 멕시코 알타미라시에 연간 생산량 40만 톤 규모의 자동차강판 공장을 준공하면서 정준양 포스코 회장이 한 말이다.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서도 포스코는 지속적인 흑자 기조를 유지하면서 경쟁력을 높여가고 있다. 지난 1월 일본 도요타 본사에 자동차강판을 공급하기 시작한 포스코는 세계 15대 메이저 자동차 회사에 모두 강판을 공급하는 유일한 철강사로 우뚝 선 상태다.
지난 20일엔 베트남 호치민시 인근 붕타우성 푸미공단에서 연간 자동차·오토바이용 냉연제품 70만 톤과 건축 자재용 강판 50만 톤 생산이 가능한 강판 공장을 준공했다. 이쯤 되면 임기 내에 ‘철강업계 도요타 등극’을 선언한 정 회장의 꿈이 현실화될 것만 같기도 하다.
그런데 포스코와 정준양 회장을 향한 최근 국내 정서가 그다지 곱지만은 않은 듯해 해외 상황과 대조를 이룬다. 특히 최근 끝난 국회 국정감사에서 정 회장 이름이 구설에 오르내려 포스코 측을 당황케 만들기도 했다. 박영준 총리실 국무차장의 포스코 경영진 교체 압력 행사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정 회장을 증인으로 채택하자”는 민주당 의원들과 “부르지 말자”는 한나라당 의원들 간의 신경전이 거세게 벌어진 것이다.
일각에선 ‘올 초 정준양 회장 선임 과정에서 정 회장과 등을 돌리게 된 인사들 중 일부가 야당과 물밑공조를 이뤘다’는 풍문이 들려오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정 회장의 증인 채택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이는 야당에서 “정 회장이 여권의 비호를 받는다”는 비난이 나오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공교롭게도 정 회장은 9월 말부터 약 한 달 일정의 해외출장을 떠난 상태였다. 정 회장 증인 채택 논란이 불거지는 바람에 정치권 일각에선 정 회장의 외유가 ‘도피성 출장’으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베트남 공장 준공 등 빡빡한 해외일정을 소화해내느라 동분서주했을 정 회장이 들었다면 서운할 법도 하겠지만 야권에선 국감 회피 의혹의 끈을 좀처럼 놓지 않으려는 분위기다. 포스코 측은 “원래부터 잡혀있던 일정”이라며 해외일정 관련 의혹을 극구 부인했다.
올 초부터 제기된 포스코 경영진 신규선임 과정에 대한 외압설 외에도 정치권에선 대형 매물 M&A와 관련해 정 회장 이름이 자주 들먹거렸다. 올해 매물 중 최대 규모인 대우건설 인수 잠재 후보로 풍부한 자금력의 포스코가 줄곧 거론돼 왔는데 재계와 금융권 이상으로 정치권과 관가에서 포스코-대우건설 짝짓기를 위한 여론몰이에 부채질을 했다. “국내 시공능력평가 1위 건설사를 해외 자본에 내줄 수 없다”는 논리에서였다.
그러나 포스코는 끝내 대우건설을 외면했다. “시너지가 없다” “이미 포스코건설을 갖고 있다”는 입장이었지만 정부와 정치권, 관가 등에서 흘러나오는 아쉬움은 안 그래도 외풍에 민감한 포스코를 불편하게 만들었을 듯하다.
이런 까닭에서였는지 포스코는 최근 대우인터내셔널 카드를 들고 나왔다. 지난 14일 포스코 기업설명회(IR) 직후 이동희 포스코 사장이 “대우인터내셔널 인수를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 밝히고 나선 것이다. 이에 앞선 9월 28일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수출입동향 확대 점검회의 직후 정준양 회장이 “(대우인터내셔널을) 지켜보고 있다”고 밝히면서 포스코의 대우인터내셔널 인수전 참여 가능성이 높게 점쳐져 왔다.
종합상사인 대우인터내셔널은 해외 여러 곳에 수출 인프라를 구축해놓은 동시에 미얀마 가스전 등 세계 각지에서 광물 자원 개발도 하고 있다. 업무적으로 포스코와 시너지가 예상되는 데다 대우건설에 비해 가격도 저렴하다.
포스코 내부에선 국내 M&A보다 해외 투자의 수익성을 높이 보는 분위기지만 외부 시선이나 여론에 밀려 굳이 국내 M&A에 참여해야 한다면 대우인터내셔널이 포스코에 제격일 것이란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진다. 현금 유동성이 뛰어난 포스코가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대우인터내셔널 인수전은 포스코 독주로 싱겁게 끝날 것이란 시선도 생겨났다.
그런데 최근 변수가 생길 조짐이다. 대우인터내셔널이 보유한 교보생명 지분 24%와의 별도매각 검토설이 나도는 것이다. 대우인터내셔널이 보유한 교보생명 지분에 눈독 들인다는 오해를 사기 싫어 몸을 사렸던 잠재적 인수후보들이 귀를 쫑긋 세울 만한 대목이다.
교보생명 지분 별도 매각설과 관련해 대우인터내셔널 최대주주인 자산관리공사는 “아직 정해진 바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교보생명 지분과 매각작업이 별개로 진행될 경우 대우인터내셔널 가격이 크게 낮아질 수 있는 까닭에 벌써부터 10대 재벌 중 몇 곳이 내부 검토에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포스코가 야심차게 추진해온 포스코건설 상장이 무산된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포스코건설은 지난 20일 공시를 통해 ‘회사의 가치를 적절히 평가받기 어려운 측면 등 여건을 고려하여 상장을 연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당초 포스코건설의 주당 공모희망가액은 10만~12만 원이었다. 그런데 기관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수요예측 결과가 이보다 낮은 가격에 나온 까닭에 상장이 미뤄진 것이다.
포스코는 포스코건설 주식 2728만 1080주(지분율 89.53%)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만약 10만 원에만 상장이 됐더라도 포스코는 포스코건설 경영권 유지에 필요한 지분을 제외한 나머지 주식을 처분해 1조 원에 가까운 실탄을 수급할 수 있었던 셈이다. 이번 상장 연기가 5조 원대 현금성 자산을 지닌 포스코의 대형 M&A를 무산시킬 정도는 아니겠지만 향후 자금 운용 등 전략에 있어 어느 정도 수정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글로벌 경영에 매진하고 있는 정준양 회장이 앞으로 ‘국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주목된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