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선 펄펄 날고 안에선 설설 기네
▲ 지난 12월 7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
세계 각국을 상대하는 업무는 예상외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 데 반해, 국내에서 하는 사업은 족족 좌초 위기를 겪는 것을 두고 최근 기획재정부 일각에서 나오고 있는 불만들이다. 재정부는 10년 가까이 헛바퀴를 돌던 아시아판 국제통화기금인 ‘치앙마이이니셔티브’(CMI)의 성공적인 출범과 함께 높은 지분율을 얻는 성과를 냈다. 또 세계은행(WB) 국제개발협회(IDA) 차관을 조기에 털어내고 해외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변신했다. 여기에 재정부 소속 공무원들이 국제 금융기구로 잇달아 진출하면서 위상을 높였다. 반면 야심차게 진행했던 의료서비스 선진화사업은 브레이크가 걸리는 등 국내 주요 사업은 헛바퀴를 돌고 있다.
올 3월 말부터 가동에 들어가는, 한·중·일 3국과 아세안(ASEAN) 10개국이 참여하는 CMI 출범은 경제계에는 상당한 낭보다. 1990년대 말 아시아 외환위기를 겪은 뒤 아시아 각국은 2000년 태국 치앙마이에 모여 CMI를 구축키로 합의했지만 분담비율을 놓고 공전을 거듭해왔다. 분담비율이 높다는 것은 발언권이 그만큼 세지는 것이어서 비율을 둘러싼 신경전이 날카로웠던 탓이다.
특히 아세안 국가들이 20%를 부담키로 정해졌지만 한국과 중국, 일본 3개국이 부담할 나머지 80%의 국가별 분담률이 문제였다. 중국과 일본이 상대국보다 높은 비율을 요구한 때문이었다. 교착상황은 한국의 중재로 일본과 중국이 각각 32%로 같은 비율을 가져가고 한국이 16%를 부담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한국은 지역 내 경제력 비중이 8% 안팎인데 비해 높은 지분을 얻어내 캐스팅보트의 위치를 확보한 것이다.
이러한 국제사회에 대한 목소리 높이기는 올 상반기 마무리되는 국제금융기구 지분율 개선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한국이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합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5%지만 IMF 내 지분율은 1.35% 정도다. 세계은행 내 지분율도 1.01%에 그치는 등 국제금융기구 전체로 따져볼 때 지분율이 1.48%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IMF 지분율의 최소 5%, 세계은행 투표권의 3% 등을 신흥 개발도상국에 넘기는 국제금융기구 지배구조 개선에 우리나라가 가장 앞장서고 있다는 평가다. 정부의 지분율 목표는 세계 국내총생산 비율(1.95%) 정도까지 늘리는 것으로 알려진다.
한국은 또 해외 원조 차관을 조기상환하고 개발원조위원회에 가입, 2차 세계대전 이후 유일하게 ‘원조 받는 나라’에서 ‘원조 하는 나라’로 탈바꿈하며 국제사회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재정부는 세계은행 국제개발협회(IDA)의 차관 잔액 3350만 달러를 애초 상환일보다 13년 앞당겨 지난 연말 전액 상환했다. 세계은행은 한국의 원조 조기상환을 국제 엠바고(보도유예)로 사전에 공지하는 등 비중 있게 다뤘다. 여기에 지난해 11월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 원조국가에 이름을 올렸으며 지난해 3500억 원이었던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사업액을 올해 4700억 원으로 늘렸다.
재정부 내 세제실 직원들이 국제기구에 잇따라 진출한 것도 국제사회에서 재정부 인력이 인정받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조세기획관인 김낙회 국장은 OECD 산하 재정위원회(CFA) 이사회 이사로 선임돼 올해 6월부터 활동할 예정이다. 국제조세제도과의 이재목 서기관은 1월부터 OECD사무국에서 조세업무를 담당하는 조세정책·행정센터의 과장급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이에 앞서 안세준 법인세제과장은 지난해 8월 임기 4년의 UN 조세전문가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돼 국가 간 조세와 조세 징수 협력방안 등을 연구하고 있다.
이처럼 국제사회에서 실력을 발휘하고 있는 재정부가 국내에서는 ‘설움’을 당하고 있다. 6년이 넘도록 끌어온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은 지난 11월 말 보건복지부와 함께 연구결과를 내놓으며 진행에 속도가 붙는 듯했으나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로 수면 아래로 다시 가라앉았다. 재정부는 그동안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을 통해 국내 의료서비스 선진화를 이뤄 외국인 의료관광객을 끌어 모으고, 국내 부유층의 해외 의료비 지출을 줄이겠다며 진행에 박차를 가해왔다. 하지만 보건복지가족부와 시민단체의 반대가 여전히 거센 데다 이 대통령마저 “장기적으로 추진을 검토할 과제인 것은 맞지만 충분히 의견 수렴이 되고 여론 설득이 된 후에 정책이 추진되는 게 맞다”고 말하면서 제동이 걸렸다.
경제위기 극복과 서민층 지원을 한다며 내놓은 예산안도 한동안 4대강에 발목이 잡혀 애를 먹어야 했다. 재경부는 부자감세라는 비난에 서민지원을 위한 복지예산을 크게 늘렸다며 방어했지만 예산 통과 지연으로 속앓이를 해왔다. 국회에서 예산안이 계류돼 준예산이 집행될 경우 희망근로와 청년일자리사업, 보금자리주택 확대 공급,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도, 둘째 아이 이상 무상보육 대상 확대, 맞벌이 가구 보육료 지원기준 강화 등 신규사업이나 정책 대상 확대를 전혀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재경부는 지난 연말 예산안의 국회통과로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재정부가 그동안 해외투자 유치를 이유로 수차례 강행의사를 밝혔던 법인세 인하는 한나라당과 야당의 반대에, 재정건전성 확보 차원에서 추진하던 임시투자세액공제 폐지는 지식경제부와 경제계의 반대로 결국 무산됐다. 법인세 중 최고세율 인하(22→20%)는 재정건전성을 우려한 정치권의 반대로 2년간 유예됐다. 임시투자세액공제도 폐지는 지방투자분으로 제한되기는 했지만 1년 후로 미뤄졌다.
이준석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