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업체 때리는데 여의도가 왜 흔들?
▲ 검찰의 STX엔진 압수수색과 관련 정치권 일각에선 이전과는 전혀 다른 노림수가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 ||
서울중앙·인천·수원지검 등 검찰이 갑작스럽게 ‘방위산업체에 대한 전 방위 사정 작업’을 벌이자 일각에서는 지난해 7월 이명박 대통령의 ‘리베이트 관행’ 관련 발언 때문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검찰에서 그동안 캐비닛 속에 넣어놨던 방위산업체 관련 비리 의혹들을 꺼내들고 먼지 털기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번 STX엔진 검찰 압수수색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번 수사에 이전과는 전혀 다른 노림수가 있다는 해석도 제기돼 눈길을 끌고 있다.
2009년 7월 초 검찰은 일광공영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였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2부는 일광공영 대표 이 아무개 씨(60)가 러시아 무기 거래, 일명 ‘불곰사업’에서 받은 거액의 수수료를 횡령해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잡고 내사에 착수했다. 뒤이어 두산인프라코어 SABB 한국무그 등 방위산업체들이 잇따라 검찰의 철퇴를 맞았다. 모두 거액의 비자금 조성, 횡령 등의 혐의로 일부 관계자들이 검찰에 구속되면서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일광공영 이후 그야말로 방위산업체들은 된서리를 맞고 있는 것.
그런데 당시 검찰의 내사를 받았던 업체들의 공통점은 모두 “이미 검찰의 내사가 시작된 지 오래”라는 얘기가 나왔던 사건들 연루 업체였다는 것. 검찰에서 이들 업체들의 비리의혹과 관련된 정보들을 이미 오래전부터 보관하고 있다가 ‘어떤 이유’로 봇물 터지듯 해당 자료들에 대한 수사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방산업계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7월 정부예산안 보고 자리에서 꺼냈던 말이 사정 한파를 불러온 것이 아니냐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정부 예산안 보고 자리에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무기 획득 과정에서 오가는 리베이트만 없애도 방위력 개선비를 20%가량 줄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첩보 수준으로 올라간 정보들이 그대로 캐비닛에 쳐 박혀 있는 경우가 상당수”라며 “특정 이슈가 있거나, 아니면 이제 할 만하다 싶을 때 다시금 관련 자료들을 꺼내 수사 가능 여부를 따지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일광공영 수사의 경우 심지어 노무현 전 대통령 집권 당시부터 내사설이 파다하게 퍼져 있었던 사건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번 STX엔진의 검찰 내사 역시 이미 오래전부터 들려오던 얘기다. 지난해 6월경부터 관련 소문이 검찰 안팎에 상당 부분 퍼져 있었다는 것. 검찰의 한 관계자는 “2008년 말부터 이번 STX 내사와 관련된 첩보가 상당수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그만큼 검찰에서 관련 정보들을 상당히 오랜 기간 묵혀뒀다는 얘기다.
검찰 관계자들에 따르면 검찰이 STX엔진 관련 내사에 본격적으로 돌입한 것은 지난 연말께의 일이다. 검찰은 이 시기부터 STX엔진의 통신 관련 부품 납품 과정에 의혹을 두고 내사에 들어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다져 온 내사가 지난 21일 수원지검 성남지청(지청장 한무근)에서 압수수색을 벌이며 가시화됐던 것. 또 수원지검 안양지청에서도 역시 STX엔진과 관련된 또 다른 비자금 조성 혐의를 포착해 수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1일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은 STX엔진 용인사업소는 통신 관련 사업을 담당하는 곳이다. 하청업체로부터 생산된, 이지스함과 구축함 등 한국 해군의 군함이 사용하는 레이더와 통신장비를 해군에 납품하는 지점이다. 검찰은 STX엔진이 이지스함급 함대에 통신장비를 납품하는 과정에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을 품고 있다고 한다. 하청업체들을 이용해 납품 단가를 부풀리고 그 차액을 돌려받는 방식으로 수십억에서 많게는 수백억 원에 이르는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이 있다는 것이다.
또 STX엔진에 대한 압수수색 당일 검찰은 하청업체 D, N 사에 대한 압수수색도 함께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의 검찰 관계자는 “현재 2개의 하청업체 외에 6개 사가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앞으로 해당 업체들도 압수수색을 벌이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STX엔진 측에서는 아직까지 자사가 이번 검찰 내사와 전혀 관련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STX엔진 관계자는 “우리는 원청으로, 하청업체들의 비리 문제 때문에 관련 자료를 압수수색해 간 것일 뿐 단순 참고인 수준”이라며 “문제가 없기 때문에 앞으로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이번 검찰의 STX엔진 내사와 관련해 정치권에서는 또 다른 분석을 내놓고 있어 관심을 끈다. 일각에서 이번 수사가 친노그룹 인사를 겨냥하고 있다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 관련 비자금 중 일부가 정치권, 특정 인물에게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검찰이 수사를 벌이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특히 오는 6월 지방선거 출마를 놓고 고심 중에 있다고 알려진 야권 인사의 이름이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다.
앞서 일광공영의 검찰 수사 때도 역시 DJ 정권의 실세 정치인을 노리고 벌어진 수사라는 설이 실명까지 거론되며 파다하게 돈 바 있다. 두산인프라코어 한국무그 내사 때도 마찬가지. 당시에도 친노그룹 정치인 중 일부 인사의 실명이 거론되며 “이들을 겨냥한 수사”라는 관측이 상당수였다.
그러나 검찰은 이런 주장들에 대해 “최근 방위산업체 관련 수사 과정에서 의혹이 발견됐기 때문에 수사를 하는 것일 뿐”이라며 “어떤 해석도 불필요한, 단순 비위 사건의 수사다”고 밝혔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