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낚시꾼들 다 어디로 갔수~
▲ 지난 1월 12일 금호그룹에서 열린 동국제강의 대우건설 인수 문제점 기자회견.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
한화그룹은 최근 3년간 하이닉스반도체 푸르덴셜투자증권 등 굵직한 M&A(인수·합병) 매물이 나올 때마다 유력한 인수후보자로 거론돼 왔다. 소문은 무성한데 정작 인수 계획을 인정했던 것은 대우조선해양과 푸르덴셜투자증권 두 건에 불과하다. M&A 관련 온갖 루머들로 몸살을 앓고 있는 한화그룹이지만 어느 때보다 큰 타격을 입었을 때는 대우건설 인수설이 불거졌을 당시다. 지난해 9월 초 대우건설 인수설이 모락모락 피어나면서 한화그룹의 주가는 급락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한화 측은 서둘러 “인수의사가 없다”는 쪽으로 진화에 나섰지만 이미 주가는 만신창이가 된 상황. 인수설이 불거진 9월 9일 한화는 전일대비 3750원(8.49%) 급락해 4만 400원에 장을 마감했고 한화석화(-6.90%), 한화증권(-4.18%), 한화손해보험(-3.52%) 등 전 그룹 주가가 동반 하락세를 보였다.
최근 이와 비슷한 사례를 보인 것이 바로 얼마 전 대우건설의 새로운 인수주체로 떠오르며 시장을 뜨겁게 달궜던 STX그룹이다. 지난 2월 17일 STX그룹이 대우건설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가 퍼진 직후 STX 관련주들은 급락하기 시작했다. 17일 대우건설은 전일보다 3.98% 오른 1만 1750원에 장을 마감하면서 상승세를 보인 반면 STX 주가가 5.14% 하락한 것을 비롯해 STX팬오션(-5.86%), STX엔파코(-4.37%), STX조선해양(-2.53%), STX엔진(-5.49%) 등 전 계열사 주가가 동반 하락했다.
결국 STX그룹도 지난 22일 공시를 통해 “인수를 검토한 바는 있으나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급히 진화작업에 나섰다. 대우건설 인수를 검토 중이라고 알려진 지 불과 5일 만의 일이다. 이에 주가는 정상화됐지만 시장에서는 STX그룹의 갑작스러운 포기의 진짜 속내가 무엇인지 궁금증을 야기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는 STX의 인수자금 조달능력 문제가 가장 큰 원인이 됐다는 해석이다. 강덕수 회장의 뜻이 확고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STX그룹의 대우건설 인수설은 상당한 신빙성을 얻었다. STX 측에서는 인수를 할 자금이 부족할 경우 계열회사들을 통해 1조 원을 조달하고 추후 기업공개(IPO)를 통해 부족한 자금을 조달한다는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STX그룹은 또 산업은행 사모투자펀드(PEF)에 1조 원을 투입하고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해 지분 15%를 확보한 뒤 경영권까지 확보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럴 경우 일부 계열사들의 부채가 1조 원을 넘는 탓에 전체 계열사의 부실로 이어져 제2의 금호아시아나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우려감이 상당했다. 자연스럽게 주주들, 특히 소액주주들이 대거 주식에서 발을 뺄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STX그룹 측으로서는 엄청난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처럼 STX그룹마저 두 손을 들면서 대우건설 인수전은 다시금 장기 표류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산업은행 측에서 강력한 인수 희망 대상자로 지목한 GS그룹 포스코 등도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대우건설 인수에 가장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는 곳은 동국제강 정도. 하지만 동국제강의 경우 과연 인수능력이 있는지 의구심을 사고 있는 상태다.
동국제강은 현재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진 브라질 고로제철소 건설 사업안 백지화 가능성까지 검토할 정도로 대우건설 인수에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은 지난 1월 17일 “산업은행이 제시한 주당 1만 8000원은 너무 비싸다”면서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하면 적극적으로 인수전에 뛰어들겠다는 의중을 내비쳤다.
그럼에도 동국제강의 자금력과 규모를 볼 때 아직까지 시장의 긍정적인 반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소액주주들마저 동국제강의 자금조달 능력을 믿지 않는 분위기다. 대우건설노동조합 역시 동국제강의 이 같은 의사표현에 벌써부터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
대우건설이 이처럼 악재를 몰고 다니다 보니 인수설을 고의로 퍼트리는 세력이 있는 것 아니냐는 ‘오명’까지 뒤집어 쓴 상태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우건설 얘기만 나왔다하면 주식이 급락하니 이를 악용하는 세력 얘기가 나올 법도 하지 않느냐”고 전했다.
실제로 STX그룹의 경우 일각에서는 강덕수 회장의 대우건설 인수 의지가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었다는 말도 흘러나온다. STX그룹 측은 인수 소문과 함께 공식적으로 “검토 중일 뿐 진행 중인 사안은 전혀 없다”는 의견을 내비쳤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는 계속해서 인수전에 확실히 뛰어든 것처럼 소문이 확산되기도 했다. STX그룹 관계자도 “원론적 차원의 검토였음에도 언론이 너무 앞서 나간 경향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최근 대우건설의 재무적투자자(FI)인 미국계 사모펀드 팬지아데카(모기업 오크트리)가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팬지아데카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의 자택을 가압류할 정도로 대우건설 FI들 중 산업은행이 제시한 매각 방안에 대해 가장 크게 반대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일요신문> 928호 최초 보도).
국세청은 이번 세무조사가 대우건설 문제와는 전혀 별개의 건이라고 밝혔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일련의 의혹처럼) 특정 사실을 파악하는 예치조사였으면 뭔가 나오는 것이 있었을 것인데 그런 것은 전혀 없었지 않느냐”며 “4~5년에 한 번씩 이뤄지는 정기조사에 가깝다고 보면 될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러나 재계 일각에서는 팬지아데카 세무조사와 대우건설 매각의 관련성에 대한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다. 대우건설 매각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들에 대해 사정당국이 대신 나서서 압박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것이다. M&A 시장이란 ‘망망대해’를 떠다니고 있는 대우건설과 관련해 앞으로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재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