짭짤하던 정부 채권…이젠 애물
[일요신문] 채권가격이 급락하면서 증권사, 특히 대형 증권사들의 시름이 깊다.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을, 값이 떨어질 줄 뻔히 알면서도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비싸게 물건을 떼와 싸게 팔아야 하니 눈뜨고 손해를 보는 셈이다. 사정은 이렇다.
채권시장에는 국고채전문딜러(PD, Primary Dealer) 제도가 있다. PD는 발행시장에서 국고채를 인수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 대신, 유통시장에서 시장조성 의무를 수행한다. 대형증권사 12곳과 은행 8곳, 모두 20개 기관이 이 자격을 갖고 있다. ‘버냉키 쇼크’ 이후 첫 국고채 입찰이 시행된 6월 24일, 20년만기 국고채 입찰 참가율은 2009년 12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값 떨어질 물건을 사겠다고 나선 이가 적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PD들이 정부 채권발행에 응하지 않을 수도 없다. 입찰에 참가하지 않으면 페널티(벌칙)가 있는 데다, 정부의 보이지 않는(?) 압력도 감수해야 한다.
물론 지난해만 해도 PD들은 앉아서 돈을 벌었으니, 지금 상황을 원망만 할 수만 없다는 비판도 있다. 한 자산운용사의 채권매니저는 “채권가격이 오를 때는 물건을 싸게 떼다가, 투자자들에게 비싸게 팔았으니 가만히 앉아서 돈을 번 셈이다. 특히 PD 증권사들은 개인들에게 채권을 팔면서 엄청난 수수료 수익까지 올렸다”면서 “지금 손해 좀 본다고 그리 불평할 일도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한편 업계의 푸념이 늘면서 정부도 당근을 내놓았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0일 PD운영규정을 고쳐 낙찰금리 결정시 10년물 이상 장기채권에 한해 동일 낙찰금리 인정구간(차등낙찰구간)을 2bp(100bp=1%포인트)에서 3bp로 넓혔다. 또 시장조성을 위해 PD들이 제시해야 하는 장기채권 가격범위(호가 스프레드)도 확대했다. 쉽게 말해 PD들이 입찰에서 좀 더 다양한 가격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해 손실 가능성을 줄이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나마도 올 연말까지 한시적이다. 올해 이후에도 상당기간 채권시장 약세를 예상하는 PD들의 한숨은 여전하다.
최열희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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