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확대 땐 ‘고대’ 수사무마 땐 ‘영포’
이재현 CJ그룹 회장.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검찰에 따르면 CJ도 이명박 캠프에 자금을 지원한 기업 중 한 곳이다. CJ의 한 임원은 검찰 조사에서 “지난 2007년 이 전 대통령 최측근에게 수억 원을 전했다. 그 돈이 선거 운영비로 쓰인다는 말을 들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CJ가 준 돈이 대선자금으로 쓰였다는 얘기다. 검찰은 CJ 측이 돈을 건넸다고 지목한 인사에 대한 소환 여부를 검토 중이다. 검찰 관계자는 “대선자금은 민감한 문제다. (수사 여부는) 수뇌부에서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CJ가 이 전 대통령 측에 건넸다는 돈의 출처에 대해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갈 것”이라고 귀띔했다.
검찰은 대선 승리 직후인 2008년 2월에도 CJ가 이 전 대통령 최측근에게 수억 원의 돈을 줬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이른바 ‘당선 축하금’ 명목의 돈이 이 전 대통령 측으로 흘러들어갔다는 것이다. 이명박 캠프에 몸담았던 한 친이계 의원 측 역시 “CJ의 한 부사장이 자신의 대학 선배이자 인수위 시절 실세로 급부상한 이 전 대통령 측근에게 ‘선거 하느라 고생했다’며 돈을 줬다는 소문이 파다했다”고 말했다.
CJ 그룹의 비자금 조성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이 지난 5월 29일 서울 장충동에 위치한 이재현 CJ그룹 회장 자택의 압수수색을 마친 뒤 떠나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CJ가 정치권 외에도 국세청을 비롯한 사정기관들과 금융권을 상대로 전방위적 로비를 벌인 흔적들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드러나고 있다. CJ는 학연·지연·혈연 등을 활용해 다양한 통로로 로비에 나섰던 것으로 전해진다. 영화·외식 상품권을 수시로 돌리는 것은 기본이고 골프접대를 통해 판돈을 잃어주는 방식도 로비에 자주 활용됐다. 전군표 전 국세청장처럼 명품 시계를 선물하는 사례도 있었다. 시계는 현금에 비해 추적이 어려울 뿐 아니라 받는 사람 입장에서도 거부감이 덜하기 때문에 기업들이 ‘뇌물용’으로 선호한다고 한다. 사정당국 주변에서는 CJ가 지난 정권에서 친이계 인사들의 자녀들을 그룹에 특별 채용했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
검찰은 CJ가 이러한 로비활동을 통해 지난 정권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검찰이 CJ의 특혜 뒤에 감춰져 있는 비리를 들추겠다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서울중앙지검 고위 관계자는 “이재현 회장 일가의 비리는 수사의 종착지가 아니다. 다음은 CJ의 정·관계 로비가 될 것”이라면서 “국세청 경찰 등은 물론이고 검찰 내부도 수사 리스트에 오를 수 있다”고 전했다. 현재 서초동 검찰청사 주변에서는 검찰의 수사가 ‘국세청→경찰→방통위·공정위→청와대’로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확산되고 있다. 사실상 이명박 정부 전반을 타깃으로 삼을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우선 검찰은 CJ의 세무조사 무마 로비에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검찰은 2006년 세무조사 당시 전군표 당시 청장과 허병익 전 차장에게 금품을 줬던 CJ가 2008년에도 세무조사를 막기 위해 로비를 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특히 2008년 국세청이 이재현 회장의 차명재산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여 세금 1700억 원을 거두고도 검찰에 고발하지 않은 배경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검찰과 경찰이 국세청 측에 이 회장을 조세포탈 혐의로 고발해달라는 공문을 세 차례나 보냈지만 고발이 이뤄지지 않은 이유를 확인해보겠다는 것이다. 2008년 CJ 세무조사 당시 국세청 수뇌부는 한상률(청장)·이현동(조사국장) 전 청장들이다. 이에 대해 국세청 관계자는 “차명재산이 선대로부터 받은 것이라는 이 회장 측 입장을 뒤집을 만한 근거가 부족했던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
지난 7월 18일 CJ그룹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검찰. 이재현 CJ그룹 회장을 구속 기소했다.
국세청과 경찰에 대한 로비와 함께 검찰이 주력하고 있는 수사는 바로 CJ의 사업 확장과 관련해 불거졌던 여러 의혹들이다. 검찰 관계자는 “국세청이나 경찰 건은 ‘몸 풀기’로 봐도 무방하다. CJ가 특혜를 받는 대가로 이명박 정부 실세들에게 어떤 편의를 제공했는지를 확인하는 게 이번 수사의 하이라이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오리온그룹 소유였던 ‘온미디어’ 매입 및 승인 과정, 방송분야 매출의 점유율 제한 규제를 풀기 위한 법률 개정 등에 있어서 CJ가 이명박 정부 실세들을 상대로 로비를 벌였다는 진술을 이미 확보했다. 검찰은 방통위, 공정위 등 관련 기관 공무원들도 불러 조사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검찰과 정치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CJ가 로비를 위해 접촉한 인사는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뉜다고 한다. 우선 이재현 회장 모교이기도 한 ‘고대 라인.’ 이들은 CJ가 사업 영역을 넓히는 과정에 많은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회장과 고급 술자리에 동석해 논란을 빚기도 했던 한 장관급 친이계 인사 A 씨는 CJ의 온미디어 인수와 방통위 승인 과정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A 씨 역시 고대 출신이다. 한 친이계 전직 의원은 “A 씨와 이 회장 친분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나. CJ 수사 소식에 아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CJ가 관리에 심혈을 기울였던 또 다른 인맥은 바로 ‘영포 라인’이다. 이명박 정부 ‘성골’로 통하는 영포 라인은 주요 기관 요직을 장악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상득 전 의원을 정점으로 하는 영포 라인은 유대 관계가 끈끈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검찰은 CJ가 국세청과 경찰로부터 조사를 받을 때 영포 라인을 통해 이를 무마하려고 시도한 증거를 입수했다고 한다. 여기엔 영포 라인 중에서도 최고 실세로 꼽혔던 한 인사가 경찰에 전화를 걸어 사실상 수사 중단을 요청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검찰 관계자는 “CJ는 정권 교체 후 고대 및 영포 라인 공략에 집중했다. 이들 중 일부가 조직적으로 CJ 수사를 막으려고 했던 정황들이 나왔다”고 전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