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도 명의도 세금도 ‘묻지마’ 대포차는 달리는 폭탄
충남지방경찰청이 압수한 대포폰과 대포통장들.
반면 대포폰이라 불리는 ‘막폰’은 사용기간이 1~2개월 정도로 짧다. 명의자 대부분이 사망자, 외국인, 행방불명자, 노숙자, 초기 신용불량자 등이라 몇 개월만 요금이 밀려도 이동통신사에서 전화번호를 막아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불폰과 달리 사용자가 요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찾는 이들이 많다. 막폰을 사용하고 있다는 유흥업소의 한 관계자는 “전단지에 적혀있는 전화번호들은 전부 대포폰이라 보면 된다. 우리 같은 사람은 대놓고 대포폰을 구입하는 경로가 있다”며 “목돈을 내고 선불폰을 충전해 쓰다 단속에 걸리면 잔액은 다 날리게 된다. 하지만 대포폰은 구입비만 비싸지 이후엔 통신비가 전혀 들지 않아 맘껏 쓰고 버린다”고 말했다.
이처럼 범죄의 발단이 될 수도 있는 대포폰이지만 구입은 너무도 손쉬웠다. 기자가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을 통해 대포폰을 판매한다는 브로커와 연락하니 30분 내로 물건을 전해줄 수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선불폰은 15만~20만 원, 막폰은 45만~50만 원이면 살 수 있다. 퀵서비스로 바로 보내주겠다”며 “우리 업체는 절대 잠수타지 않는다. 한 달 동안 사후 서비스도 보장한다. 우리 쪽에서 문제가 생겨 폰이 막혔을 경우 데이터 복구는 물론이고 다른 명의로 또 개통해 줄 테니 믿고 사라”며 호객행위를 계속했다.
선불폰을 전문으로 하는 또 다른 브로커는 흥미로운 이야기도 들려줬다. 그는 “단속이 심해 막폰은 취급하지 않지만 선불폰만큼은 확실하다. KT는 18만 원, SK텔레콤은 15만 원이다. KT가 좀 더 비싼 이유는 MMS 발송이 가능하고 3개월 동안 사후 서비스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KT를 꽉 잡고 있기 때문에 서비스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들이 말하는 ‘꽉 잡고 있다’는 표현은 KT 대리점과 연결해 데이터 복구 및 전화번호 전환이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물론 KT 측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극구 부인했지만 대포폰 업자들과 이동통신사 대리점 간의 ‘검은 거래’에 대한 가능성을 추측해 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대포차는 유통규모로는 대포폰을 따라갈 수 없으나 일반인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품목이다. 세금을 내기 싫어서, 과태료를 피하기 위해서, 보험을 들지 않기 위해서 등 대포차를 이용하는 이유도 다양하다. 문제는 대포차가 도로 위를 달리는 ‘폭탄’이라는 점이다. 차량 소유주와 운전자가 달라 의무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을 뿐더러 사고나 범죄에 악용돼도 경찰의 추적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종류도 다양한데 주로 상사차량, 법인차량, 개인차량이 거래된다. 과거 중고차매매 딜러로 활동했던 박 아무개 씨는 “자동차상사(중고차매매사)가 중고차를 전시용으로 매입하는 상사차는 가격이 저렴해 대포로 많이 풀린다. 이 상사차량들은 대부분 택시로 이용되다 부활한 차로서 500만 원 전후로 구입할 수 있다”며 “전시용은 매매단지를 기준으로 일정거리 내에서 시운전만 가능하니 판매는 엄연히 불법이다. 보통 유령상사를 설립해 수백 대의 차량을 매입하고 대포차로 판 뒤 폐업을 하는 식으로 장사한다. 짧으면 6개월, 길어야 1~2년 안에 다 폐업한다. 그런데 상사가 폐업하면 해당 상사에 속한 차량은 모두 무등록차량으로 분류돼 수배대상이 됨으로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포 통장을 사려는 사람들이 인터넷에 올린 글들.
개인차량은 대체로 채무관계로 인해 대포차로 흘러 들어온다. 돈을 갚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채권자에게 차량을 넘기거나 소유주도 모르는 사이 대포차로 팔려나가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황당한 일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앞서의 이 씨는 “한 번은 지인이 대포차를 구입했다가 일주일 뒤 도난당했다. 알고 보니 차를 팔았던 업자들이 훔쳐갔더라. 담보로 보관하고 있던 차를 대포차로 판 뒤 다시 훔쳐가는 식으로 돈을 벌고 있었던 것이다. 대포로 구입했으니 신고도 못하고 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대포통장은 대포 3종 가운데 가장 ‘범죄형’에 가깝다. 일반인도 사용하는 대포폰, 대포차와 달리 대포통장은 범죄에 이용되는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최근 경찰의 강도 높은 단속에 활발히 움직이던 브로커의 움직임도 눈에 띄게 줄었으나 기자는 어렵사리 대포통장 판매자와 접촉할 수 있었다.
그는 “한 계좌당 40만 원씩 5계좌까지 가능하다. 법인통장으로 만들어준다. 못 믿겠으면 직접 만나 거래도 가능하다”며 사용처를 먼저 물었다. 대답을 망설이자 판매자는 “혹시 보이스피싱이나 사기 칠 용도로 쓰려면 전용 통장을 이용해야 한다. 게임아이템 거래용처럼 소소한 일에는 40만 원짜리도 충분하나 사기용으론 위험하다. 가격은 80만 원이고 혹 단속 당해도 경찰 추적이 불가능한 명의로 만든 것이라 안심해도 된다. 하지만 이것도 한두 번 쓰고 버린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요즘은 단속 때문에 대포통장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니 있을 때 구입하라”며 재촉하기도 했다.
이처럼 대포통장의 몸값이 치솟자 통장 매입을 위한 각종 사기도 활개치고 있다. 지난달 23일 경찰로부터 대포통장 사건에 연루됐으니 조사를 받으러 오라는 황당한 전화를 받은 김 아무개 씨는 “취업도 어려운 상황에 범죄자 취급까지 받게 됐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김 씨는 “졸업반이라 여러 군데 이력서를 넣었는데 그중 한 금융회사에서 합격통보가 왔다. 일단 급여통장을 만들어 사본을 제출하고 출입카드에 사용할 체크카드를 만들라고 하더라. 단 체크카드 비밀번호는 회사에서 알려준 출입카드 비밀번호와 같아야 한다기에 아무런 의심 없이 만들어줬다”고 말했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그는 “일주일 뒤 출근하라는 말만 믿고 있었는데 갑자기 기존에 사용하던 신용카드 결제가 안 되더라. 은행에 문의하니 금융사고로 인해 모든 거래가 중지됐다는 말을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에서도 연락이 왔다. 알고 보니 그 금융회사는 유령회사로 대포통장 명의를 모으는 곳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통장으로도 총 600만 원의 돈이 출입금 된 기록이 남아있어 꼼짝없이 경찰의 조사를 받아야 했다”고 말했다.
대포 3종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범죄에도 노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평소 개인의 명의관리에 더욱 신경을 쓰는 것 외에 별다른 대비책은 없는 것 같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