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이 미국 이민 갔다고?
지난 2011년에 발생한 ‘일가족 신분세탁’ 사건은 신분을 도용한 신분세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암 투병을 하고 있던 A 씨는 어느 날 병원에서 “건강보험이 종료됐다”는 황당한 얘기를 듣게 된다. 더군다나 병원 직원은 “혹시 다른 나라 사람 아니냐”며 A 씨에게 반문하기도 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외교부에 문의해 보니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A 씨 가족 명의로 여권을 신청해 이미 미국으로 이민을 간 후였다. 외교부 관계자는 “이렇게 일가족 명의로 신분을 세탁한 경우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며 “당시 곧바로 사실 관계를 파악하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라고 전했다.
A 씨 가족의 신분이 유출된 배경은 ‘명의 도용 전문 브로커’를 통해서였다고 한다. 브로커를 통해 A 씨 가족의 개인정보를 구입한 일당은 미국 내 영사관에서 여권을 발급받아 잠적한 것이다. 수사가 진행되자 미국 뉴욕 등지로 숨어있던 이들은 2개월 만에 결국 경찰에 붙잡히고 말았다.
중국 등지에서는 다른 사람의 명의로 만든 ‘위명 여권’이 비일비재하다. 전언에 따르면 우리 돈 100만 원가량을 주면 신분세탁 브로커를 통해 위명 여권을 쉽게 만들 수 있다는 것. 이러한 위명 여권은 위장 결혼을 해 한국 국적을 얻으려는 중국인 교포나 불법체류자 등에게 널리 사용되고 있다고 전해진다. 정부에서는 위명 여권을 이용해 신분을 세탁하고 한국으로 입국한 중국 동포를 1만여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법무부 이민특수조사대 관계자는 “위명 여권으로 들어 온 경우 이를 자진 신고하지 않으면 국외로 추방, 10년 이상 입국 금지 조치가 따른다”며 “위명 여권이 아니더라도 국내에 행사로 들어와서 그대로 도망치는 외국인들도 있다”라고 전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