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에서 가장 큰 불안감은 유럽계 자금의 이탈이다. 유럽계 자금(영국, 룩셈부르크, 아일랜드, 독일, 주요 4국 기준)에는 헤지펀드를 포함한 단기성 투기자금 비중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급락했던 시장이 50%나 급등했던 2009년 10조 원, 22% 올랐던 2010년 3조 5000억 원 넘게 순매수 했다가 2011년과 코스피가 11% 하락할 때 11조 원 넘게 순매도하며 적극적으로 차익을 실현했다.
지난해에는 다시 시장이 10% 가까이 오르는 사이 3조 5000억 원이 넘는 주식을 사들였다. 올해에는 7월까지 벌써 7조 원 넘게 주식을 팔아 치우고 있다. 팔아 치우는 규모는 2011년 수치와 맞먹는데, 현재 연초 이후 코스피 하락폭은 당시의 절반인 5.5%선이다.
반면 미국계 자금은 코스피가 하락했던 2011년에도 5조 원 넘게 순매수하며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그런데 지난해 순매수 규모가 간신히 1조 원을 넘는 데 그쳤고 올 들어서는 7개월 새 5조 원 넘게 내다 팔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 규모다. 양적완화 축소가 임박한 상황을 그대로 반영한 결과로 보인다.
한 자산운용사 주식운용본부장은 “2009년부터 외국인들이 순매수한 주식은 50조 원어치인데, 이 기간 외국인 보유금액이 늘어난 규모는 지난 3월 120조 원에 달했고, 7월 말 기준으로도 90조 원에 달한다. 2배 넘는 수익을 거뒀다는 뜻”이라며 “양적완화 축소가 초읽기에 들어간 마당인데, 이만한 수익을 낸 외국인들이 그대로 한국에 머물려면 기업이익이 늘어나든지, 미국을 제외한 중국 등 우리나라의 주요 교역국 경기가 좋아져야 하는데 그럴 조짐이 없다. 이렇게 되면 답은 빤하지 않느냐, 외국인 더 빠져나갈 게 분명하다”고 전망했다.
이 같은 외국인 이탈 조짐은 채권시장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연초부터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우려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채권보유액은 꾸준히 늘어나 올 해에만 12조 원 가까이 불어났다. 7월에도 1조 7000억 원을 순투자하며, 채권시장 내 비중이 7.5%까지 치솟았다. 그런데 이 같은 외형 성장과 달리 내용 측면에서는 어두운 그림자가 짙다.
올 들어 순투자한 11조 850억 원 가운데 국채는 4조 6000억 원에 불과한 반면 통화안정증권 순투자 분은 8조 원이 넘는다. 외국인 보유채권 가운데 국채 비중도 지난해 말 62.9%에서 60%로 급감했다. 당연히 통안증권 비중은 34.7%에서 38.6%로 치솟았다. 통안증권은 국채보다 만기가 짧아 시장에서 현금화하기가 쉬운 채권이다. 즉 언제든지 나갈 수 있도록 준비 작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내년에 만기가 도래하는 국채 규모는 300억 달러에 달한다. 올해는 그나마 채권금리 상승(채권가격 하락)이 5~6월 두 달에 그쳤지만, 양적완화 축소가 본격화되는 내년에는 이보다 더 가파른 금리상승 가능성이 높다. 국고채 만기 물량과 올해 통안증권에서 준비를 하던 자금이 한꺼번에 나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책은행 계열 자산운용사의 한 채권매니저는 “통안증권에 투자하는 외국인들은 대부분이 단기간의 차익거래를 노린 자금이 많다. 올해는 그나마 금리상승 폭도 제한적이었고 원화약세 폭이 크지 않아 본국으로 이탈하는 자금이 많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내년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가 본격화돼 달러강세, 원화약세가 나타난다면 금리손실과 환손실을 우려한 외국인 채권투자 자금이 대규모로 이탈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경고했다.
다만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에서의 외국인 자금 이탈 우려에도 불구하고 1997년과 같은 외환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 대부분이다. 외환보유액이 충분한 데다 민간부문의 외자차입이 많지 않고 무역흑자 기조도 이어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는 “1997년 외환위기 때는 무역적자로 외환보유액은 부족했고 민간 기업의 외화부채는 많았다. 채권과 주식시장에서의 급격한 외국인 자금이탈까지 겹치며 사달이 났다”며 “지금은 그런 정도까지 가지는 않을 것을 확신한다. 하지만 가계부채가 1100조 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외부 충격으로 금리가 오르고 주식이 급락하면 국민경제에 상당한 부담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은 늘 염두에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외환위기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중론이다. 외국인 이탈로 인한 충격은 있더라도 3000억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이라는 충분한 ‘버퍼(Buffer, 완충장치)’를 갖고 있다는 이유다. 하지만 우리처럼 튼튼한 안전장치가 없는 신흥국들의 사정은 다르다. 이들은 미국의 양적완화에 따른 선진국 자금의 이탈로 인한 충격이 우리보다는 클 수 있다. 이들 나라로서는 해외투자자산을 팔아 달러를 마련할 수밖에 없다. 결국 국내에 들어온 신흥국 자금이탈로 우리가 입게 될 충격이 좀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는 사그라지지 않는 셈이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