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실제 내 모습 보면 ‘깜놀’할걸~
이는 ‘말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다’라는 독일의 속담에 빗대어 폰섹스 업계에서 흔히 하는 말이다. 이처럼 폰섹스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서비스가 말과 목소리로만 이뤄진다는 데 있다. 때문에 포르노 영화나 사진 등 다른 유형의 서비스와 달리 무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 바로 이 폰섹스다.
20년 동안 오로지 목소리와 신음소리만으로 숱한 남성을 흥분시키고 만족시켜온 독일의 폰섹스 베테랑인 ‘니콜(가명·46)’ 역시 그런 여성 가운데 한 명이다. 최근 독일 시사주간 <포쿠스>는 니콜과의 인터뷰를 통해 독일 폰섹스 업계의 변화와 현주소에 대해서 다루었다.
‘아마 지금 그녀는 섹시한 속옷을 입고 침대에 누워서 자신의 몸을 더듬고 있겠지.’
수화기 너머 들리는 니콜의 목소리를 들은 남성들은 십중팔구 이런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덩달아 흥분에 빠지곤 한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머리에 헤드셋을 쓰고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있는 니콜은 담배를 피우면서 덤덤한 표정으로 통화를 하고 있다.
폰섹스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이런 ‘판타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니콜이란 이름이 본명이 아니듯이 폰섹스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니콜이란 이름과 앳된 목소리를 들은 남성들은 자동적으로 늘씬하고 섹시한 여성의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사실 니콜은 그런 이미지와는 닮은 구석이 없다. 인생의 쓴맛을 다본 듯한 얼굴과 그녀가 과거 수영선수였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떡 벌어진 어깨는 사실 나긋나긋한 목소리와는 영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목소리만큼은 다르다. 골초인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목소리는 소녀처럼 낭랑하기 그지없다. 이 목소리 하나만으로 그녀는 수화기 너머 남성들을 유혹하고, 흥분시키고, 또 갈망하게 만든다.
현재 폰섹스 업계의 베테랑으로 불리는 그녀가 처음 폰섹스를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반이었다. 당시 제과점 전문판매원 자격증 과정을 중단하고 직장을 구하고 있던 그녀는 신문에서 본 ‘에로틱한 목소리를 찾습니다’라는 구인 광고를 보고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 길로 면접 장소로 달려갔지만 당시만 해도 아무 것도 몰랐던 순진한 20대였던 그녀는 포르노 사진으로 가득한 건물 안의 게시판을 보고는 충격을 받았다. 니콜은 “그때는 그 사진들을 똑바로 쳐다볼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폰섹스에 발을 들여놓았던 그녀는 출근 첫날에 대한 기억을 다음과 같이 더듬었다. “한 동료가 내 앞에 전화기를 갖다 놓더니 나만 홀로 남겨 놓고 방을 나갔다. 다음에 전화벨이 울리면 네가 알아서 하라는 의미였다. 당시만 해도 나는 정말 뭐가 뭔지 하나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 부끄러움도 잠시. 니콜은 폰섹스에서 사용하는 어휘를 하나씩 배워 나갔으며, 점차 자신의 직업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묘한 쾌감과 함께 즐거움도 느끼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남자들에게 갖고 있던 일종의 열등감이 사라졌다. 그녀는 “과거 남자들은 내게 높은 엘리트층에 속한 존재들과 같았다. 이에 폰섹스는 내게 치료 요법과도 같았다”고 말했다.
수화기 너머의 남성들이 자신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그녀는 자신만의 남녀간 계급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내가 늘 주도권을 잡았고, 앞서서 이끌어 나갔다. 남자의 욕망은 내 손에 달려 있었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폰섹스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익명성도 한몫했다. 유선전화만 있던 아날로그 시절 폰섹스의 익명성은 대개 일방적인 경우가 많았다. 즉, 고객들은 상대 여성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반면(설령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가명이나 가짜 사진뿐이다), 여성들은 고객들의 이름, 주소 등에 대해 훤히 알고 있었다.
독일 폰섹스 베테랑인 니콜(가명). 그녀는 외모와는 다른 소녀처럼 낭랑한 목소리로 수화기 너머의 남성들을 유혹하고 흥분시킨다. 사진출처=포쿠스
수화기 너머로 만난 고객들의 유형도 다양했다. 지금까지 그녀는 수많은 숫총각들에게 여자들의 몸에 대해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는가 하면, 어떤 남자에게는 발가락에 대한 자신의 페티시즘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설명을 해주기도 했다. 또 어떤 남자에게는 특유의 소녀 같은 목소리로 롤리타 역할을 해주면서 대리만족을 시켜주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니콜의 주된 장기는 ‘역할극’에 있었다. 고객의 요구에 따라 다양한 여성이 되어 주는 것이다. 그녀의 단골이었던 한 성공한 사업가는 니콜의 역할극에 푹 빠져 있었다. 그는 통화를 하기 전에 먼저 이메일을 보내 자신이 희망하는 주연 여성과 조연 여성의 사진을 보내곤 했으며, 첫 번째 통화에서는 니콜과 함께 시나리오를 철저하게 작성하곤 했다. 그리고 두 번째 통화 때부터는 철저하게 맡은 역할에 충실해서 대화에 빠져 들었다. 그는 이렇게 일주일에 2~3회 정도 주기적으로 전화를 걸어왔으며, 그때마다 니콜은 전화 한 통당 150유로(약 22만 5000원)씩을 받았다.
보기에는 쉬워 보이지만 사실 폰섹스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령 전직 매춘부 여성들의 경우에도 멋모르고 덤볐다가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직접 손님과 얼굴을 맞대는 것과 말로만 상대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말로써 알몸을 대신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폰섹스 업계에 오래 종사하면서 겪게 되는 부작용도 있다. 니콜의 경우에는 남자에 대한 뒤틀린 시선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니콜은 “‘남자들은 다 돼지’라는 노랫말이 영 틀린 것만은 아닌 것 같다”라고 말하면서 “고객이 원하면 때로는 부인의 절친 역할도 해주고, 노예 역할도 해주고, 또 어떤 때는 남자 역할도 해준다”면서 황당하고 불쾌한 요청을 들어주느라 애를 먹는 적도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요청들 가운데서도 그녀가 결코 들어주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미성년자 역할이 그것이다. 그녀는 “당신을 위해서 기꺼이 18세 소녀가 되어줄 순 있다. 하지만 절대 그 밑으로는 안 된다”고 확실하게 선을 그어 놓곤 한다.
다른 한편으로 포르노 서비스 시장의 변화도 니콜과 같은 폰섹스 종사자들에게는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이미 ‘폰섹스의 황금시대는 저물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변화에는 인터넷의 발달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다양한 성인 콘텐츠들이 범람하면서 폰섹스뿐만 아니라 포르노영화 업계도 휘청거리고 있다.
폰섹스가 경쟁력이 없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비싼 가격 때문이다. 현재 독일의 경우 폰섹스 통화료는 분당 1유로 99센트(약 3000원) 정도다. 이 가운데 13~25센트(약 190~370원)가 폰섹스 여성에게 떨어진다. 사정이 이러니 고객들에게 시간은 금이다. 전화를 걸자마자 “빨리 시작해라”고 다그치는 사람이 많은 것 역시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이런 시대의 변화에 맞춰서 니콜 역시 변화를 꾀하고 있다. 한때는 캠코더를 설치해서 비주얼적인 면을 보완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이 영상 서비스를 접었던 니콜은 “나는 역시 말로 하는 게 맞는다”면서 다시 폰섹스 서비스에 집중하기로 했다.
초고속 인터넷과 맞서 싸우고 있는 니콜은 “온라인에서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는 음란물들은 분명 과거 듣는 것에만 만족해야 했던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충족시켜주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현재 폰섹스 전문 사이트인 ‘텔레폰피닷컴(telefonfee.com)’을 운영하고 있는 그녀는 이곳에서 네트워크도 없고, 에이전트도 없고, 줄도 없는 폰섹스 서비스 종사자 여성들과 직접 보는 알몸보다는 판타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잠재 고객들을 연결시켜주고 있다. 이 사이트에서 고객들은 자신에게 알맞은 폰섹스 상대를 찾을 수 있고, 또 폰섹스 종사자 여성들은 정보를 교환하거나 대화를 나누거나 혹은 실컷 소리 내 울기도 하면서 서로 의지하고 있다.
앞으로도 이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니콜은 다음과 같이 남자들에게 감사하다는 뜻을 비쳤다. “나는 남자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그들이 없었다면 내가 지금쯤 어디서 뭘하고 있었겠는가?”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