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늦은 KT, 선두 따라잡기 무리수?
그래픽=송유진 기자 eujin07@ilyo.co.kr
누가 어디에 얼마를 써냈는지 비밀에 부쳐지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 KT의 노림수가 빤하기 때문이다. 밴드블록1과 밴드블록2로 나눠 치러지는 이번 경매에서 KT가 원하는 ‘1.8㎓ 대역 15㎒폭’은 밴드블록2에 포함돼 있다. 따라서 KT가 밴드블록2에 입찰하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KT 역시 이를 부인하지 않고 있다.
지난 2011년 1.8㎓ 대역 20㎒폭에 대한 경매 방식이 거센 비난을 받은 탓에 이번 경매 방식은 미래창조과학부가 고심 끝에 내놓은 결과다. 2011년 동시오름·자율경쟁 방식으로 진행된 주파수 경매는 무려 82라운드를 거친 끝에 9950억 원을 써낸 SK텔레콤이 가져갔다. 경매 시초가인 4450억 원의 두 배가 넘었으며 시장평가액 6000억~7000억 원을 뛰어넘는 액수였다.
과도한 입찰가의 피해가 고스란히 가입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실제로 3G(세대)에서 한 달 5만 4000원 무제한 요금제를 쓰던 가입자들은 LTE에서는 한 달 10만 원의 통신비도 감수해야 했다. 게다가 3G 사용자들은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통신사들의 LTE 변경 권유에 시달려야 했다.
주파수 전쟁에 패한 후 이석채 KT 회장은 “과연 이 주파수 하나를 확보하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붓는 게 옳은 일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며 “‘꿈의 LTE 구현’이라는 우리의 욕심은 접더라도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 다른 부분에 투자를 해야겠다는 결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KT 입장은 2년 만에 백팔십도 바뀌었다. 주파수 할당 소식이 알려지던 올 초부터 1.8㎓ 대역 15㎒폭 주파수를 할당받지 못하면 마치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다는 뜻을 강하게 내비치며 미래부와 방송통신위원회를 압박했다. 경쟁사인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가 함께 KT에 1.8㎓ 대역 15㎒폭 주파수를 할당하는 것은 ‘특혜’라고 주장하며 반대 입장을 표명하자 KT는 이들을 겨냥해서도 “재벌이 시장을 독식하려는 꼼수”라고 날을 세웠다. 심지어 KT 노동조합까지 나서 자사 입장과 주장에 힘을 보태는, 보기 드문 상황도 벌어졌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2년 전 주파수 전쟁에서 패한 후 KT가 다양한 시도를 한 것으로 알지만 아무래도 LTE 부진이 큰 타격을 준 듯하다”고 진단했다.
1.8㎓ 대역 15㎒폭 주파수는 KT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1.8㎓ 대역의 인접대역이다. 업계에서 ‘인접대역’이라고 표현하는 까닭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대역을 KT가 가져간다면 KT는 적은 시설투자 비용으로 2배 빠른 LTE 서비스를 구축할 수 있다. LTE에서 고전하고 있는 KT가 인접대역을 확보할 경우 품질을 앞세워 단숨에 업계 1위로 치고 올라갈 수도 있다. 게다가 절약한 시설투자 비용을 마케팅에 투자한다면 그 효과는 어마어마해질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이 경쟁사들이 KT의 인접대역 확보를 특혜라고 몰아붙이는 이유다. 인접대역을 확보하겠다는 KT의 의지는 확고하다. LTE 부문에서 더는 밀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KT가 인접대역을 확보한다 해도 기대만큼 크게 유리한 입장은 아닐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경쟁사들의 견제 탓에 너무 비싼 값을 치른다면 차라리 다른 대역을 저렴한 가격에 확보하는 것보다 못할 수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KT가 인접대역을 확보해 우수한 품질의 LTE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되더라도 가입자들을 얼마나 유인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의 경우 LTE보다 더 빠른 LTE-A 서비스를 시작한 상태다. 심지어 LG유플러스는 전국 100% LTE 서비스를 앞세우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KT가 뒤늦게 LTE 경쟁에 뛰어든다 해도 그 힘과 효과가 얼마나 발휘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통신업계 다른 관계자는 “통신시장에서는 선점효과가 매우 크다. 시장을 선점한 업체의 영향력과 우위가 지속되는 경향이 있다”며 “단 1%의 점유율을 올리기 위해 천문학적인 액수를 쏟아 부어야 할 정도”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통신시장 속성상 뒤늦게 출발한 KT에 인접대역 확보가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가 초반과 달리 한결 느긋해진 까닭도 여기에 있다. KT 관계자는 “늦게 출발한 단점을 품질로 승부하겠다. 결국 문제는 가격인데, 너무 높은 가격에 확보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하며 “마지노선은 전략이라 밝힐 수 없지만 2011년 당시보다 가치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KT의 입장과 달리 KT가 가격 때문에 인접대역을 쉽게 포기할 것으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SK텔레콤은 2011년 너무 비싼 가격에 주파수를 확보했다고 했지만 이후 실적을 보면 비싼 값을 줄 만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난 2분기 SK텔레콤은 매출 4조 1642억 원에 영업이익 5534억 원, 순이익 4677억 원을 기록했다. 물론 마케팅 비용 감소에다 SK하이닉스 지분 평가이익이 이익에 포함됐지만, 영업이익만 보면 지난 1분기 대비 34.8%, 전년 동기 대비 33.2% 증가한 것으로 주파수 확보 이후 실적이 꾸준히 좋아졌다. KT 역시 인접대역만 확보한다면 상황이 훨씬 나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주파수 경매는 50라운드까지 진행되며 그때까지 결론이 나지 않을 경우 단 한 번의 밀봉입찰로 결정난다. 업계에서는 밀봉입찰까지 가야 결론이 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