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샤라포바 현실은 쿠르니코바
# 100% 아메리칸으로
“나는 뼛속까지 한국인이다.”
미셸 위는 8월 열린 솔하임컵에서 미국 대표팀 멤버로 뛰었다. 8월 18일 18번 홀에서 버디퍼팅을 놓친 후 아쉬워하는 모습. 로이터/뉴시스
“솔하임컵은 내게 특별하다. 나는 내 조국을 대표하고, 내 팀 동료를 대표하고, 단장과 부단장, 그리고 미국인임을 의미하는 모든 것들을 위해 플레이한다.”
6년 뒤인 2013년 8월 솔하임컵을 앞두고 단장 추천으로 12명의 대표팀에 뽑힌 미셸 위의 각오다. 솔하임컵은 남자프로골프의 라이더컵처럼 미국과 유럽연합 간의 여자프로골프 단체전이다(격년제). 미셸 위는 이에 앞서 2013년 2월 26일 한국 국적을 포기했다. 말이 많았지만 2011년부터 바뀐 국적법의 ‘외국 국적 불행사’ 서약서를 작성할 시기를 놓쳤기 때문에 미국 국적만을 유지하게 됐다고 한다. 이중국적을 유지하면서도 미국생활에 큰 지장이 없었을 것이기에 한국 팬들은 서운할 만했다.
어쨌든 확실한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위성미’가 아닌 ‘미셸 위’가 되는 분위기가 짙다. 스탠퍼드대학에 다닐 때 남자친구로 알려진 인물은 ‘한국인이었으면 더 좋을 텐데’라는 우리의 촌스런 바람과는 달리 쿠바계 미국인인 로빈 로페스(25·지금은 NBA 포틀랜드 선수)였다. 또 미LPGA 투어에서 가장 친한 한국(계)선수도 한국에 대한 독설로 몇 차례 구설에 오른 크리스티나 김(한국명 김초롱)이다. 크리스티나 김과는 2011년 솔하임컵에 동반 출전해 한껏 애국심을 과시했고, 미셸 위가 2013년부터 크리스티나 김의 남자친구(던컨 프렌치)를 캐디로 쓸 정도로 가깝다.
# 외모형 이슈메이커로
2006년 5월 SK텔레콤 오픈 경기 모습. 미셸 위는 처음으로 남자대회에서 컷오프를 통과했다. 일요신문DB
올해 모빌베이클래식에 우승하는 등 좋은 활약을 펼치고도 자신보다 성적이 나쁜 미셸 위에게 밀린 존슨은 트위터에 “우승은 대표선발에 중요한 기준이 아닌 듯싶다. 아마도 이번 솔하임컵에서는 미국이 승리하기 힘들 것 같다”고 비꼬았다. 미셸 위를 택한 말론 단장의 설명처럼 미셸 위가 이전 두 번의 솔하임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는 근거(미셸 위는 역시 단장 추천 선수로 나간 2009년 대회에서 3승1무로 미국의 승리를 이끌었고, 포인트로 당당히 선발된 2011년 대회에서는 유럽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4승을 거뒀다)가 제시됐지만 미디어와 팬들은 크게 반발했다. <USA투데이>는 “미셸 위의 대표팀 차출에 문제가 있다. 출전 자격 기준이 변덕스럽다”고 비판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미셸 위는 최근 2년이 넘도록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2008년 말 Q스쿨을 통과하고, 2009년과 2010년 각 1승씩을 거둘 때만 해도 천재소녀의 부활은 당연시되는 듯했다. 하지만 이후 우승이 없고, 올해는 17개 대회에 출전해 7차례나 컷 탈락을 당했다. 2년 동안 톱10에 든 것도 고작 3번이었다. 세계랭킹도 82위로 민망한 수준이었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미셸 위는 “신경쓰지 않는다”며 성조기 문양이 새겨진 긴 양말을 신고나와 눈길을 끄는 등 솔하임컵에 당당히 나섰지만 상황은 더 나빠졌다. 미국은 압도적인 차이로 유럽에 패했고, 유럽의 대회 2연패와 미국 땅 승리는 모두 사상 최초였다. 한때 세계 최강을 자부하며 유럽 대신 아시아와 대륙 간 대결을 펼쳐야 한다는 말이 나왔던 미국은 이제 아시아, 유럽에 이어 3위로 밀려났다는 혹평까지 들었다(골프다이제스트 2013년 8월 20일 기사 ‘First Asia, now Europe: What now for US women’s golf?’).
와일드카드로 출전한 미셸 위도 개인성적 2승2패로 미국팀에서는 제몫을 했지만 캐롤라인 헤드웰(스웨덴), 찰리 헐(영국) 등 유럽의 강호들에게 미치지 못했다. 특히 헤드웰과의 경기에서는 헤드웰이 퍼트를 하는데 그냥 다음 홀로 가버려 매너가 없다는 비판을 받고는 사과를 해야 했다.
앞서 올 시즌 미셸 위는 독특한 퍼팅자세로 화제의 중심에 섰다. 지난해 12월 두바이에서 열린 유럽여자프로골프 투어(LET) 오메가 두바이 레이디스 마스터스에서 처음 허리를 90도로 꺾는 퍼팅자세를 시도한 후 지금까지 이 자세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 퍼팅자세(평범한 자세)는 큰 키 때문에 항상 불편함을 좀 느껴왔다. 그러던 차에 ‘그래 땅으로 좀 더 가까이 가자(OK. I’ll just go down lower to the ground)’라고 판단했다.” 솔하임컵 인터뷰 때 미셸 위는 이렇게 설명했다. 주위의 관심과 비판이 많다는 것에 대해서도 “나는 심지어 내 퍼팅자세를 거울로 보지 않는다. 사진으로도 보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허리가 아프지 않냐고 물어보는데 나는 유연하기 때문에 그게 더 쉽다”고 답했다.
결과는 어떨까? 대성공까지는 아니지만 LPGA 퍼팅 순위가 지난해 119위(라운드 평균 31.16개)에서 올해 56위(30개)으로 뛰어올랐다.
물론 엄청난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던 천재소녀가 이제는 그저 예쁜 아가씨가 돼 골프로 살아남기 위해 남들 시선 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절치부심 노력하는 모습은 긍정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시간이 갈수록 아가씨 미셸 위는 샷보다는 늘씬한 키와 예쁘장한 얼굴, 세련된 패션감각 등이 주된 화제가 되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2008년 미국의 한 미디어가 조사한 ‘스포츠스타 섹시랭킹 50’에서 19세의 미셸 위가 29위를 기록한 바 있다(테니스의 안나 쿠르니코바와 마리아 샤라포바는 각각 1위와 5위).
# 샤라포바보다는 쿠르니코바로
허리를 90도로 접는 미셸 위의 독특한 퍼팅자세도 화제다. 8월 솔하임컵 경기모습. 로이터/뉴시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성대결에서 계속 컷 탈락의 고배를 마셨고, 남자들과의 실력차는 갈수록 벌어졌다. 뿐만 아니라 2007년 손목 부상에 시달리며 여자 대회에서도 번번이 컷을 통과하지 못했다. 예상치 못했던 참담한 결과가 계속되자 미셸 위는 2008년 말 Q스쿨에 도전해 시드를 땄다. 이제 미LPGA라도 제패해 체면을 세우겠다는 전략수정이었다. 그리고 임팩트가 강하지는 않았지만 2009년과 2010년 1승씩을 거두며 천재의 부활을 알렸다.
그런데 슬럼프 극복은 임팩트도 약했지만 효과가 일시적이었다. 2011년부터 지금까지 미LPGA투어에서 툭하면 컷탈락을 당하는 평범한 선수로 전락한 것이다. 특히 2013년은 의미가 있다. 2012년 여름 그토록 원하던 스탠퍼드대학 졸업장까지 받았기 때문에 지금은 학업과 골프라는 두 마리 토끼도 변명이 되지 않는다. 또 이제 나이도 24세로 투어에서 결코 어리지 않다. 시대가 달랐던 아니카 소렌스탐이나 무대가 다른 타이거 우즈와 나이 비교를 해가며 미셸 위의 가능성을 여전히 높게 보는 것은 이제 한계에 닿은 듯싶다.
실제로 아니카 소렌스탐은 나중에 사과하기는 했지만 지난 4월 <골프매거진>을 통해 ‘미셸 위는 재능이 없다’고 독설을 날렸다. “LPGA가 그녀를 절실히 필요로 할 때가 있었고 그녀는 가능성이 무한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많은 선수 중 한 명일 ㅁ뿐이다. 우리가 그녀로부터 올 것으로 기대했던 재능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소렌스탐의 평가는 냉철했다.
이에 대해 미셸 위 본인은 골프연습에 집중하기 위해 플로리다 주로 이사를 하고, 퍼팅자세를 바꾸고, 또 “갈수록 편안함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감이 생기고 있다. 골프를 하는 게 즐겁다”고 애써 도전의식을 보이고 있지만 주위의 평가는 예전 같지 않다.
기술적으로 미셸 위는 드라이버 샷의 정확성, 퍼팅이 문제인데 향후 이것을 바로잡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는 게 중론이다. ‘퍼팅의 신’ 박인비의 말처럼 퍼팅은 타고나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노력으로 최고가 되는 것은 어렵고, 드라이버 샷은 투어에 비슷한 장타자들이 늘어났기에 지금의 정확성으로는 비교 우위가 없다는 분석이다. 미셸 위가 실력과 미모를 갖춘 샤라포바가 아니라, ‘외모우위형’인 쿠르니코바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