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던 신동빈 정권 바뀌자 ‘헉헉’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임준선 기자
대전시와 롯데쇼핑은 지난해 1월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같은 해 7월 사업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엑스포과학공원 내 33만㎡ 부지에 5200억여 원을 들여 테마파크·워터파크·문화수익시설 등으로 구성된 복합테마파크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옛 지식경제부, 미래창조과학부에서 연달아 엑스포과학공원에 테마파크를 조성하는 것이 대전엑스포기념재단법 부칙에 부합하지 않다고 통보하는 등 상업용지 변경을 허가하지 않았다. 시가 롯데에게 제안한 약 150억 원에 이르는 연간 임대료도 주변 상업용지와 비교할 때 50억 원가량 낮은 것으로 추산됐기 때문에 ‘특혜’ 의혹도 끊임없이 제기됐다.
이 과정에서 대전시와 롯데 사이의 실시협약이 12월에서 3월로, 3월에서 다시 6월로, 현재는 9월로 연기를 거듭하고 있다. 지난 6월엔 엑스포과학공원내 기초과학연구원이 들어서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과학벨트 수정안’이 발표되면서 지역 정가를 중심으로 ‘대전시가 관련 부처에서 인허가를 받지 못하자 롯데에 면피하기 위해 과학벨트 수정안을 출구 전략으로 삼고 있다’는 비난마저 흘러나오고 있다. 대전시가 엑스포과학공원 내에 테마파크를 입지시킨다는 계획의 무산 책임을 피하기 위해 미래부에 먼저 기초과학연구원을 제안했고, 미래부가 이를 수용했다는 것이다.
대전시청 문화산업과 관계자는 “(롯데 측에) 신탄진 남한제지, 유성 신곡·둔곡지구, 오월드 동물원 근처 등 3군데를 제안했다”며 “아무래도 엑스포공원보다는 임대료가 높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롯데테마파크가 백지화된 것이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선 “그런 말은 한 적이 없다. 경쟁 지자체에서 퍼뜨린 루머”라고 일축하면서도 “(롯데 측의) 반응이 썩 좋지는 않은 것 같다. 원래 (엑스포재창조) 담당자는 다른 곳으로 발령 받아 갔다. 결국 ‘자금력’ 문제인데, 끝까지 함께 가고 싶지만 상황이 안돼서”라고 말끝을 흐렸다.
롯데그룹 홍보실 관계자는 “그룹 차원의 사업이 아니라 롯데쇼핑 내부의 사업이라서 잘 모른다”며 “계열사 각각의 사업 진행 상황까지 그룹에서 다 아는 것은 아니다. 보고 받은 바가 없다”고 말을 아끼는 모습을 보였다. 롯데쇼핑 홍보실에선 “검토 중이다. 신규담당부서에 계속 확인 중”이라며 “대전시에 문의하라”는 등 대답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실상 테마파크사업이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며 지역에서 논란을 불러왔던 것은 지역시민단체 및 소상공인을 중심으로 한 일관된 반대의 목소리가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대기업 중심의 지역경제 활성화 대책이 사실상 지역경제를 초토화시킨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앞서의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또한 “롯데쇼핑이 인천터미널 매입 당시 자금유동성 위기를 겪었다고 들었다”며 “그래서 사유지를 임대하면서까지 무리해서 대전에 롯데테마파크를 지으려하지 않는 것이다. 이명박(MB) 정부 당시 후광을 입었으나 박근혜 정권에선 CJ 이후 롯데 역시 쉽지 않은 것 같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롯데는 지난 4월 인천종합터미널을 8751억 원에 매입했으나 공정거래위원회는 인천 및 부천지역 롯데백화점 2개 점포를 매각하도록 하는 조건부 승인을 내
롯데쇼핑과 대전시가 업무협약을 맺고 추진해온 ‘대전 롯데테마파크’ 조감도.
‘고려대 인맥’을 중심으로 MB 정권에서 승승장구하며 ‘몸집 불리기’에 집중했던 롯데그룹은 지난 몇 년간 전국 각 지역에서 대형마트 및 SSM(기업형슈퍼마켓), 아울렛, 쇼핑몰 등을 연달아 세우며 지역경제를 초토화시키고 골목상권을 침범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일요신문>이 단독 보도한 △롯데슈퍼, 협력업체에 광고비 요구 의혹(2013.7.29) △롯데마트 대규모 용역 계약 해지 논란(2013.8.12) △롯데슈퍼, 직원 비리 ‘전전긍긍’(2013.8.26)에서 알 수 있듯이 현재 국세청 감사원 공정거래위원회 등으로부터 전방위 조사를 받고 있는 와중에도 ‘갑질 논란’에 휩싸여있다.
롯데가 이렇듯 벌려 놓은 여러 가지 사업들이 차질을 빚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방어에 나서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업계에서는 새 정부 출범 후 호텔롯데, 롯데쇼핑 등의 계열사가 세무조사를 받는 등 사실상 검찰 수사를 앞두고 있어 그룹 분위기상 여력이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최근 신동빈 회장과 그 한 살 위 형인 신동주 부회장이 잇달아 주식 매입을 통해 지분 확보에 나서고 있어 재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8월 초 신동주 부회장은 10억 원을 들여 롯데제과 주식 643주를 매입했다. 이번 주식 취득으로 신 부회장의 보유 주식수는 4만 9450주에서 5만 93주로, 지분율은 3.48%에서 3.52%로 늘었다.
신동빈 회장도 그룹 내 또 다른 주력 계열사인 롯데제과, 롯데칠성음료, 롯데케미칼 등의 주식을 잇달아 매입하고 있다. 사실상 두 형제가 각자의 지배력을 키우기 위해 지분매입 경쟁에 나서고 있는 모양새다. 재계에서는 형제의 이런 움직임을 두고 검찰 수사를 앞두고 순환출자구조를 해소하고 경영권을 확고히 다지기 위한 의도, 더 나아가 신격호 회장이 올해 91세의 고령인 점을 들어 계열 분리를 염두에 두는 포석이 아니겠느냐고 점치고 있다.
한편 검찰 내부 소식에 정통한 한 관계자에 의하면 검찰은 이미 제2롯데월드 인허가 관련 수사에 착수한 상태라고 한다. MB 정권의 그늘 아래 각종 특혜와 이권에 관여하며 ‘문어발식’ 확장에만 급급해온 롯데그룹에 새 정부가 제동을 걸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롯데그룹은 MB 정권 시절 서울 제2롯데월드와 부산 롯데타운 신축 허가, 맥주사업 진출, AK글로벌(현 롯데DF글로벌) 면세점 지분 인수 등 대형 이권사업을 줄줄이 따냈다. MB 당선 직후인 2007년 말 46개 사에 불과했던 계열사는 2011년 말 76개 사로 수직상승했다. 정권 출범 첫 해인 2008년 초 43조 6790억 원이었던 보유자산 총액이 임기 마지막 해인 2012년 초엔 83조 350억 원으로 2배 가까이 급증했다.
올해 초 롯데는 새정부의 경제민주화 기조를 의식한 탓인지 롯데시네마 매점사업(이전에는 총수 일가가 지분 100%를 갖는 자회사에 맡겼다)을 직영으로 전환하고 신동빈 회장이 롯데쇼핑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는 등 자세를 낮추는 태도를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지난 7월 롯데마트가 2700명에 달하는 용역직원의 계약을 해지하는 등 세무조사에 반발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구설에 올랐다.
롯데그룹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롯데는 사실상 윗선에서 추진하는 여러 사업이나 계획들을 중간 및 아래 임직원들은 잘 모를 만큼 강력한 오너십이 작동하는 조직”이라며 “신격호 총괄회장이 당장 어디에 머물고, 일정이 어떤지 측근들도 잘 모를 정도로 베일에 싸여 있다”고 귀띔했다. 이어 그는 “롯데가 박근혜 정권에게 밉보였다기보다는 그간의 문어발식 무차별 확장에 제동이 걸린 게 아니겠느냐”고 덧붙였다.
신상미 기자 sh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