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보다 확실한 계약서는 없다
지난 4일 확장 엔트리 발표 때 임창용이 빠지자 일부에서 “컵스가 돈이 아까워 임창용의 빅리그 승격을 주저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4일 메이저리그 40인 확대 엔트리가 발표된 직후, 한 야구해설가는 몇 번이고 임창용을 언급하며 한숨을 토해냈다. 그도 그럴 게 이날 발표된 컵스 40인 확대 엔트리엔 임창용의 이름이 없었다. 대신 다른 4명의 마이너리그 선수가 포함됐다. 특히나 4명 가운데 투수 3명은 25세의 유망주였다.
이 점에 주목한 모 해설가는 “컵스가 노장 임창용 대신 젊은 마이너리그 투수 3명을 메이저리그로 승격시킨 건 ‘팀을 젊게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며 “실력에서도 임창용보단 젊은 투수들이 더 뛰어나다고 판단한 게 아닌가 싶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데일 스웨임 컵스 감독은 “우리 팀은 젊은 좌완 불펜투수가 필요하다”며 “이들이 어떤 투구를 펼칠지 유심히 지켜볼 예정”이라고 밝혔다.
40인 확대 엔트리 제도는 베테랑을 위한 제도가 아니다. 시즌 말미 젊은 유망주들에게 메이저리그 경험을 심어주려고 만든 제도다. 실제로 빅리그 구단 대부분은 확장 엔트리 때 유망주들을 메이저리그로 부른다. 그러나 웬만한 유망주가 아니고선 빅리그로 승격시키길 주저한다. 돈이 들기 때문이다.
# 확장 엔트리란 무엇인가
메이저리그 구단당 등록선수는 25명, 보유선수는 40명(등록선수 포함)이다. 빅리그에서 뛰려면 25명 안에 들어야 한다. 구단들은 8월 31일까지 25인 엔트리로 시즌을 치른다. 예외가 있다면 주전 선수가 부진과 부상으로 메이저리그에서 빠질 때다. 구단은 등록선수 25명을 제외한 보유 선수 15명 가운데 한 명을 메이저리그로 승격시켜 기존 선수의 빈자리를 메운다.
9월 1일부터 시작하는 확장 엔트리는 기존 25명의 등록선수를 40명으로 넓히는 걸 뜻한다. 이렇게 하면 더 많은 선수가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뛸 수 있다. 구단 입장에선 엔트리 제한에 묶여 실력을 검증하지 못한 유망주들을 확장 엔트리 기간에 충분히 시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구단의 연봉 부담이 심해진다는 단점도 있다.
마이너리거가 메이저리그로 승격하는 즉시 기존 마이너리그 계약이 메이저리그 계약으로 업그레이드하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 최소 연봉이 48만 달러(약 5억 3400만 원)임을 고려할 때, 40인 엔트리 확장 시 구단이 15명의 마이너리그를 빅리그로 부른다면 적지 않은 인건비를 감당해야 한다. 여기다 15명의 선수에게 들어가는 운영비도 만만치 않다.
그런 연유로 많은 구단이 40인 엔트리 확장 때 7, 8명 남짓한 선수들만 승격시킨다.
# 컵스와의 계약시 빅리그 승격 보장 받지 않은 이유
임창용은 지난해 컵스와 계약할 때 여러가지 옵션을 걸어 놨다. 그 가운데 가장 비중이 높은 옵션이 바로 빅리그 승격 보너스였다. 컵스 주변에선 ‘임창용이 마이너리그에서 메이저리그로 올라가면 구단으로부터 80만 달러 이상을 추가 지급받는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4일 확장 엔트리 발표 때 임창용이 빠지자 일부에서 “컵스가 돈이 아까워 임창용의 빅리그 승격을 주저했다”는 소문이 돈 것도 이 때문이었다.
‘37세’ 임창용이 마침내 메이저리거의 꿈을 이뤘다.
A 씨는 “따라서 올 시즌 컵스가 임창용을 마이너리그에 계속 놔둬도 임창용으로선 어찌 해볼 도리가 없다”며 “내년 시즌에도 컵스가 임창용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면 임창용은 계약 만료 때까지 마이너리그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A 씨는 확대 엔트리에서 임창용이 빠진 것도 “임창용 측이 메이저리그 구단과의 계약에 급급한 나머지 세부조항 조율엔 신경 쓰지 못한 여파가 지금에야 나타나는 것 같다”고 평했다. 과연 A 씨의 말은 사실일까.
임창용의 에이전트인 박유현 아이안스 대표는 “계약서에 ‘메이저리그 승격 보장이 없다’는 지적은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컵스와 계약 협상 시 ‘임창용이 빅리그 무대를 밟으면 이러이러한 옵션을 적용받는다’는 조항은 우리 쪽에 유리하게 걸어 놨다. 하지만, ‘구단이 임창용을 반드시 빅리그로 올린다’는 약속 같은 건 받지 않았다. 선수단 운영은 구단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그런 강제 조항이 없어도 빅리그에 오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야구계엔 “박 대표가 일본 프로야구에 능통한 반면 메이저리그 사정엔 어두워 여러 안전장치를 마련해두지 않은 것 같다”며 “임창용이 빅리그에 승격했으니 망정이지 시즌 종료 때까지 승격하지 못했다면 자칫 마이너리그 미아가 될 수도 있었다”고 반응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박 대표는 “어떤 계약을 하든 선수 실력이 떨어지면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할 수 없는 게 아니냐”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9월 4일 확장 엔트리에서 임창용 이름이 빠졌던 건 이날까지 구단이 ‘임창용의 몸 상태를 고려해 9월 중순에 빅리그 무대를 밟는 게 어떠냐’고 권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수 자신이 ‘컨디션을 끌어올려도 메이저리그에서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며 하루 늦게 빅리그로 승격됐다. 계약서가 어찌 됐던 간에 우린 처음부터 실력으로 승부하자는 원칙을 세웠고, 그 원칙에 따라 미국 무대에 도전했다. 그리고 지금 실력을 인정받아 빅리그에 오르게 됐다. 실력보다 확실한 계약서가 어디에 있나?”
# 제2의 대박을 노리는 임창용
메이저리그 승격으로 임창용은 100만 달러 이상의 추가 수입이 기대된다. 하지만, 임창용이 바라는 건 단순히 그 수준이 아니다.
임창용은 “2008년 일본 프로야구에 도전할 때도 내 연봉은 외국인 선수 최저 연봉인 30만 달러였다. 그러나 2012년엔 3억 6000만 엔(약 39억 원)으로 뛰어올랐다”며 “올 시즌에도 메이저리그 최저 연봉을 받지만, 컵스와의 계약 마지막해인 내년 시즌이 끝나면 어떤 결과가 기다릴지 모른다”고 힘줘 말했다.
박 대표 역시 같은 이야기를 했다. “컵스와 2년 계약을 했을 때 우리가 집중한 건 2년 이후였다. 먼저 컵스에서 실력을 인정받고서 그 이후부턴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하자는 계획을 세웠다. 일본에서도 그랬지만, 우린 ‘선 도전, 후 결과’다. 현재 임창용 몸 상태로 봐선 4, 5년은 충분히 더 던질 수 있다. 임창용이 연출할 기적을 모든 이가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