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승-신인왕 두 토끼 다 포기 못해!
이재학은 류현진처럼 한국에서 최고의 체인지업을 구사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전영기 기자
“어느날 대구구장에 야구 보러 갔다가 복도에 걸려 있는 선수들 사진을 유심히 살펴봤어요. 그때 권오준 선배님이 야구공의 그립을 잡고 있는 사진이 눈에 띄었는데, 그게 체인지업 그립이었거든요. 그 사진을 머리에 담아두고 집으로 돌아와선 저도 똑같이 따라해 봤죠. 물론 처음부터 잘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했는데 NC 와서 좋은 무기로 업그레이드된 것 같아요.”
이재학의 체인지업에는 항상 ‘명품’이란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막강한 타선으로 소문난 삼성 선수들도 이재학의 체인지업을 알고도 못 친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NC 김경문 감독은 이재학의 체인지업에 대해 “똑같은 투구 폼으로 직구와 체인지업을 던지기 때문에 상대 타자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이재학에게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인 류현진의 체인지업과 비교를 해달라고 주문하자,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그건 비교가 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대답한다. 류현진은 주무기인 체인지업은 물론 직구, 슬라이더, 커브까지 다양한 구종으로 제구가 되는 반면 자신은 류현진의 발톱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력이라며 자세를 낮춘다.
“류현진 선배의 직구는 정말 최고예요. 체인지업은 말할 것도 없죠. 메이저리그 하이라이트를 보면서 매번 ‘와, 진짜 대단하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입니다. 그런 선수와 저를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어요. 하지만 배우고 싶고, 류현진 선배처럼 한국에서 최고의 체인지업을 구사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 승수쌓기의 걸림돌은?
NC 다이노스의 창단 첫 완투, 첫 완봉도 모두 이재학이 일궈냈다. 사진제공=NC 다이노스
“두 선수는 직구, 체인지업에 완벽히 대처를 해요. 서로 타이밍 싸움을 벌이는데 번번이 제가 말려드는 걸 느끼거든요. 아무래도 경험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기 때문에 베테랑 선수들과의 맞대결이 어렵게 이어지는데, 특히 이진영, 채태인 선배님들은 제 타이밍을 뺏는 데 선수입니다. 하지만 저 또한 그런 선수들을 더 잡고 싶고, 더 못치게 하고 싶고, 더 이기고 싶은 욕심이 생겨요. 어려운 상대라고 해서 그냥 물러설 제가 아닌 거죠(웃음).”
# 잊고 싶은 경기
지난 8월7일 마산 LG전은 이재학의 야구인생에서 깨끗이 지우고 싶은 경기일 것이다. 이재학은 그날 4⅔이닝 동안 홈런 3개를 포함해 10피안타 9실점(8자책)한 뒤 강판됐다. 데뷔 후 한 경기 최다 실점이었다.
“어휴,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등에서 식은땀이 흐를 정도예요. 3실점, 4실점할 때만 해도 ‘이 위기를 잘 넘기고 가보자’라고 생각했지만, 실점이 계속 이어지니까 정신이 아득해지고, 포수의 사인도 제대로 보이지가 않더라고요. 한 마디로 넉다운됐습니다. 그렇게 세게 얻어 맞고 나니까 오히려 홀가분했어요. 앞으로 맞을 거, 한 방에 다 맞았다고 생각하려고 노력했죠. 그동안 ‘LG킬러’ 운운하는 칭찬에 저도 모르게 자만했던 부분도 있었을 겁니다. 좋은 경험이었다고 자위했어요.”
이재학은 두산 유희관과의 신인왕 경쟁에 대해서는 “유희관 선배와의 라이벌 구도가 자신을 나태하지 않게 만드는 좋은 자극제가 된다”면서 “처음에는 그런 시각이 부담스러웠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더 잘해서 신인왕에 오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라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얼굴에 듬성듬성 여드름이 난 데다 홍조기도 있어 별명이 ‘딸기’인 이재학은 이 별명 또한 ‘사랑한다’는 말로 기자를 ‘빵’ 터트리게 만든다. 비록 두산에서의 생활은 ‘아픔’으로 기억되지만, NC로 이적 후 그 아픔조차 경험으로 만들어낸다는 어른스러움이 1990년생 이재학의 ‘오늘’이었다.
마산=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