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세대를 타깃으로 하는 ‘톡톡 튀는’ 자격증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종전의 자격증은 개인의 실력이나 기술을 증명하는 도구로 쓰였다. 그러나 튀기 좋아하는 신세대들은 자격증의 용도마저 바꿔버렸다.
양다리 걸치는 것을 막기 위한 ‘애인 등록증’에서부터 ‘킹카증’ ‘퀸카증’ ‘엽기증’에 이르기까지 요즘 신세대들이 선호하는 자격증은 가지각색이다. 최근에는 신세대 예비부부들 사이에 ‘남성증명서’가 건강한 성생활을 위한 일종의 ‘보증서’로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기도 하다.
지난 11월26일 서울 강남구청 사거리 인근의 J비뇨기과. 요즘 이곳엔 결혼을 약속한 젊은 남녀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병원에서 발급해주는 ‘남성 증명서’ 때문이다. 남성 증명서란 말 그대로 ‘남자 구실’을 할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증명서. ‘본원의 진단 결과 신체 건강한 남성임을 증명한다’는 문구가 들어가 있다.
“육종마 테스트 같아 씁쓸”
두 번째로 받는 검사는 생식 능력 테스트. 티스푼 한 개 정도인 정액 3∼5cc당 정자수가 대략 1억 마리를 넘겨야 합격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에이즈나 성병 유무를 정밀하게 확인해 이상이 없을 경우 증명서가 지급된다.
J비뇨기과 박천진 원장은 “병원 사정상 정확한 수치는 밝힐 수 없지만 의외로 ‘증’을 받아가는 이들이 많은 편”이라며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들의 예약이 늘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불만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종합건강진단서가 혼수품 항목에 오르내리는 것은 백 번 양보한다 하더라도 남성 증명서는 너무했다는 게 대다수 남성들의 생각이다.
12월 말 결혼 예정이라는 김아무개씨(28)는 “여자친구가 떠밀어 어쩔 수 없이 ‘증’을 따냈다”며 “마치 우량 육종마 여부를 테스트 받는 것 같아 씁쓸했다”고 토로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신세대 커플들의 경우엔 ‘애인 등록증’을 발급 받는 게 유행이다. ‘애인증’이란 일종의 ‘커플 증명서’. 증명서 앞면에 커플 사진을, 뒷면에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날짜를 기입해 서로간의 사랑을 확인한다. 증명서 발급과정은 간단하다.
현금 1만원과 함께 커플이 함께 찍은 사진, 처음 만난 날짜, 이름 등을 관련 업체에 이메일로 보내면 1주일 안에 ‘증’이 전달된다.
지난해 말부터 ‘애인증’을 발급하고 있는 ‘사람을 지키는 사람들’ 전성자 대표는 “기혼자들이 깜짝 이벤트 차원에서 신청하는 사례도 있지만 주고객은 신세대 커플들이다”며 “지금까지 홈페이지를 통해 ‘증’으로 인연을 맺은 커플이 1만 쌍이 넘는다”고 밝혔다.
애인증의 ‘장점’은 양다리가 원천적으로 차단된다는 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애인증 발급과 동시에 두 사람의 정보는 업체 홈페이지에 등록이 된다.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든 확인이 가능하다.
새 애인을 얻으면 이 사이트를 통해 ‘애정 전력’을 체크하는젊은이들도 있다. 더구나 한 번 등록증을 받으면 다른 사람과의 애인 등록이 원천적으로 차단되기 때문에 딴 생각을 품기가 쉽지 않다. 신세대 커플들의 애인증 신청 이유도 다양하다.
양다리 걸치는 것을 막기 위한 ‘현실파’, 군대 간 남자친구를 위한 ‘순정파’, 1백일을 기념하기 위한 ‘낭만파’ 등 천차만별이다. 남자친구의 바람기를 잠재우기 위해 등록증을 신청했다는 한 여대생(23)은 “커플링은 손가락에서 빼면 티가 나지 않지만 애인증은 영원히 기록이 남기 때문에 딴 생각을 품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랑 확인하려는 건 본능”
물론 애인증이 개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지적도 있긴 하다. 하지만 전성자 대표는 “간단한 이벤트를 통해 연인들간의 유대를 더욱 돈독히 하는 게 애인증 발급의 목적이다”며 “일각에서 제기하는 사생활 침해 주장은 지나친 우려인 것 같다”고 해명했다.
요즘 들어 신세대들에게 인기를 끄는 또 하나의 증은 이른바 ‘커플증’. 공인 커플임을 증명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데 최근에는 일부 백화점이나 패션몰들이 상술의 일환으로 ‘커플증’을 교부하고 있기도 하다. 화장품 등을 커플세트로 판매하면서 ‘증’을 만들어주는 것.
심리전문가들은 이같이 애정관계를 ‘증’으로 입증받고 싶어하는 세태에 대해 이렇게 분석하고 있다. 김진세 고려제일신경정신과 원장은 “남녀간에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심리는 태초 때부터 내려오던 본능”이라며 “증명서는 이 같은 심리가 젊은이 특유의 행동으로 표출된 것이다”고 해석했다. 이석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