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건설 인수전에도…간 큰 사기꾼
제6공화국 시절 노태우 전 대통령의 동서지간으로 ‘6공 실세 중 실세’로 통했던 금진호 전 상공부 장관의 수행원 출신인 김 아무개 씨(60). 김 씨는 과거 금 전 장관 자택에서 수행기사 역할을 하며 금 전 장관 가문과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김 씨가 금 전 장관의 수행기사를 그만두고 이러한 자신의 배경을 범죄에 이용했다는 것이다.
김 씨는 지난 2011년부터 최근까지 자신이 만든 가짜 통장을 이용해 수억 원대 사기행각을 벌여온 것으로 확인했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김 씨의 가짜 통장은 전문가들도 가려내기 어려울 정도로 교묘하고 정밀하게 위조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김 씨는 해당 통장의 잔액·잔고증명서, 금융거래내역서까지 위조해 피해자들의 눈을 감쪽같이 속였다. 가짜 통장과 위조문서들에는 실존하는 은행 지점들의 도장과 프린트마킹이 그대로 박혀있어 도무지 가짜라고는 의심조차 할 수 없었다. 이러한 가짜 통장과 위조문서들은 위조업자들과 신기술들을 총동원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짜 통장에 찍혀있는 금액은 무려 560억 원에 달했다. 김 씨는 이 돈의 출처를 두고 피해자들에게 “내가 모셨던 금진호 전 장관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관리했다”며 “내가 밑에서 차명 전주 역할을 했고, 배당금으로 560억 원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사기행각 이전에 사람들을 홀리기 위한 탄탄한 스토리라인이 있었던 터. 김 씨는 자신을 금진호 전 장관의 특별보좌관이나 수석비서관 등으로 소개했고, 피해자들은 그의 화려한 언변 탓에 의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김 씨는 이렇게 위조된 560억 원짜리 가짜 통장을 어떤 식으로 이용했던 것일까. 기자와 만난 한 피해자의 설명에 따르면 대략 수법은 이러하다. 김 씨는 ‘지하자금양성화프로젝트’라는 명목 하에 사람들을 끌어 모은다. 오랜 기간 지하에 묵혀있던 자금을 자신의 배경을 이용해 퍼 담을 수 있다는 설명을 곁들여서.
예를 들어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든 창고가 전국에 18개가 있는데 여기에는 30여 가지 품목이 존재한다. 거기에는 구권, 달러, 금괴, 채권 등이 있다’는 식이다. 여기에 덧붙여 ‘비합법적인 방법이기 때문에 거액을 쓸어 담으려면 거액이 담긴 통장이 필요하고, 내가 갖고 있는 560억 원짜리 통장을 이용하면 된다. 그러니 나와 이행약정합의각서를 맺고 약정금을 내라’는 식으로 돈을 끌어 모은 것.
김 씨가 사기행각에 사용한 가짜 통장과 잔액·잔고증명서, 피해자들과 체결한 이행약정 합의각서(왼쪽부터).
사기꾼 김 씨의 배포 또한 남달랐다. 그는 지난 7월 M&A 시장에서 핫이슈로 떠올랐던 동양건설산업 인수전에도 이 가짜 통장을 갖고 뛰어 들었다. 당시 인수전에 참여했던 노웨이트컨소시엄은 인수 직전 중도금 200억 원을 납입하지 못해 계약이 해지되는 일이 있었다. 당시 이 인수 취소와 김 씨의 사기행각에 연관성이 있었을 것이라는 소문도 무성했다.
취재 결과 김 씨가 자신의 통장을 들고 노웨이트컨소시엄 이 아무개 회장에게 접근한 일은 사실이었다. 이 회장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나도 아는 변호사를 통해 김 씨를 소개 받았다. 해당 변호사가 자금확인 도장까지 찍어줬기 때문에 처음엔 의심조차 안했다. 무엇보다 금진호 전 장관의 수행원 출신이라는 것을 강조해 믿을 수밖에 없었다”며 “나도 당시 인수대금이 필요하던 시점이었다. 김 씨는 내게 자신이 인수대금을 마련하겠다고 했고 계약까지 맺었다. 하지만 계속 내게 자금 마련을 위한 선수금이 필요하다며 수억 원을 요구하더라. 그러다 또 다른 사기행각을 벌이다 구속된 것으로 알고 있다. 하마터면 나도 큰일 날 뻔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회장은 “동양건설산업 인수 무산과 김 씨의 사기행각은 연관성이 없다. 인수 작업 직전에 그의 정체가 탄로 났기 때문에 그 시점이 다르다. 김 씨는 직접 인수전에 뛰어들려고 했다기보다는 아마도 내 돈을 착복하려고 했던 것 같다”며 그간의 소문은 부인했다.
이 회장의 말처럼 김 씨는 M&A에 참여해 사기를 시도하던 시점에 또 다른 사기행각을 벌이다 지난 8월 경찰에 붙잡혔다. 김 씨의 사기행각으로 1억 원을 빼앗긴 피해자 최 아무개 씨가 해당 은행에 직접 계좌를 확인한 후 거짓임이 드러나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현재 김 씨는 성동구치소에 수감된 상태며 검찰로부터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받고 재판이 진행 중이다. 앞서 1억 3000만 원의 피해를 본 김 아무개 씨 역시 김 씨를 이미 고소한 상황이며 이 건 역시 최근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김 씨는 앞서 언급한 두 건 이외에도 이미 동종 범죄로 두 차례 적발된 경력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 금액은 수억 원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