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력의 자승이냐 도덕성의 보선이냐
10월 10일 치러질 제34대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가 자승과 보선의 양자 대결로 굳어졌다. 연합뉴스
조계종 총무원장은 불교계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의미가 있다. 더 나아가 우리나라 전통 문화유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 사회적 역할이 날로 커져가는 위상을 고려할 때 조계종 총무원장이 누가 되느냐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도 만만치 않다.
출마를 선언한 사람은 다섯 명이다. 현 총무원장 자승, 대흥사 회주 보선, 내장사 백련선원장 대우, 전 오어사 주지 장주, 전 포교원장 혜총 스님이다.
자승 스님(60)은 삼막사·연주암 주지, 총무원 재무부장·총무부장, 중앙종회 의장을 지내고 2009년 10월부터 총무원장을 맡고 있다. 보선 스님(68)은 봉암사·송광사·마곡사·백담사 등에서 수행하고 대흥사 주지, 총무원 호법부장, 중앙종회 의장을 역임했다. 대우 스님(68)은 선운사 주지와 총무원 교무부장·포교부장, 제9·10대 중앙종회의원을 지냈다. 장주 스님(65)은 9·12·13·14대 중앙종회 의원을, 혜총 스님(69)은 포교원장과 동국대 석림동문회 총동문회장, 해인승가대학 총동문회장을 역임했다.
선거는 사실상 2파전으로 펼쳐지고 있다. 한마디로 자승 스님이냐, ‘반 자승’의 기치를 내건 보선 스님이냐다. 자승 스님은 조계종단 다수파인 종책모임(계파) ‘불교광장’의 지지를 받고 있다. 불교광장은 지난 9월 16일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자승 스님을 만장일치로 후보로 추대했다. 이에 맞서는 보선 스님은 조계종 종책모임인 옛 무차회 소속 무량회와 보림회가 연합한 이른바 ‘3자 연대’에 의해 후보로 추대됐다.
현직 프리미엄을 업은 자승 스님의 최대 약점은 도덕성이다. 그는 지난해 백양사 도박 사건이 터진 뒤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며 사실상 연임에 도전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런데 말을 바꾼 것이다. 자승 스님도 이를 의식한 듯 9월 16일 출마를 선언하면서 “약속을 못 지킨 것에 사죄드린다”라고 밝혔다. 여기에 더해 본인은 부인하고 있지만 도박 의혹 등이 제기된 것도 조계종단 수장으로서의 도덕성에 흠집이 났다. 보선 스님 측은 이를 간파하고 “의혹을 해명한 뒤 후보에 등록하라”, “종교 지도자는 높은 도덕성이 요구된다”라며 공세를 펼치고 있다.
이러한 약점에도 자승 스님은 행정 능력에 대해서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원만하게 조계종을 이끌어왔으며 각종 시스템을 현대화하고 화쟁위원회, 노동위원회 설치와 자성과 쇄신 결사 운동 등을 주도하면서 변화를 이끈 것으로 평가된다. 불교계의 사회 참여와 국제화에도 공이 크다. 추대식에 24개 교구본사 주지 가운데 16명이 참석했을 만큼 세력 기반이 단단한 것도 장점이다. 자승 스님은 △교구중심제 실현과 신도시 포교 △승가 교육과 포교 혁신 △서민과 약자를 위한 종단의 사회적 책임 등 8가지를 종단 운영기조로 내세웠다.
보선 스님의 강점은 도덕성과 수행력이다. 그는 안거(겨울·여름에 3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참선 수행을 하는 것)에 32차례나 참여했다. 총무원장이 되면 총무원에서 살면서 새벽예불에도 참석하겠다고 말했다. “중앙종회 종책모임을 관리하지 않겠다. 재임하지 않겠다”고도 선언했다. 도덕적으로 깨끗한 자신은 자승 스님과 다르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반면 정치력과 행정력은 자승 스님만 못해 과연 난마처럼 얽힌 조계종 현안과 복잡한 세력 관계를 원만하게 정리할 수 있겠는가에 의문을 품는 이들이 있다. 보선 스님은 △수행종풍 확립 △교육의 진흥과 인재양성 △사회변화에 부응하는 전법강화 △불교문화의 대중화 등 7대 운영 기조를 발표했다.
한때 조계종 특별선원 봉암사의 어른인 적명 스님이 ‘15인 추천위원회’를 구성해 총무원장을 선임하자는 안을 내놓아 실현 여부가 주목되기도 했다. 경선으로 가면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니 자승, 보선 스님이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추천위에서 선임한 사람을 받아들여 종단 발전의 주춧돌을 놓자는 제안이었다. 자승, 적명, 수경, 도법, 법등 스님이 의견을 모은 이 안은 그러나 보선 스님 측의 후보 사퇴 거부로 현실화하지 못했다. 조계종 총무원의 한 관계자는 “만약 이 안이 현실화했다면 조계종 선거 역사에서 새 장을 연 것으로 평가되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는 과거와는 다른 양상으로 펼쳐지고 있다. 진흙탕 싸움, 나아가 폭력 사태가 일어났던 것은 옛 일이다. 지지그룹들은 한국 불교의 미래를 어떻게 열어갈 것인가를 둘러싼 정책 토론회를 잇달아 열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후보들에게 제안할 종책과 질의서를 내놓기 위해 집중토론회를 열었다. 정웅기 불교시민사회네트워크 운영위원장은 “총무원장 선거는 누가 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떤 정책을 내놓느냐를 경쟁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승가 전체의 절반을 차지하는 비구니 스님들도 전에 없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회의 흐름에 발맞춰 조계종 중앙종회와 교구종회 등에 비구니 스님이 참여하는 비율을 대폭 늘려야 한다며 7개 항의 요구 조건을 내걸고 이를 받아들이는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중앙승가대 총학생회 등은 “종단 교육 불사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종단 발전을 위한 종책을 제시하는 총무원장 후보를 적극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런 흐름은 조계종단이 현대화하고 시대적인 흐름과 함께 가야 한다는 강력한 요구가 터져 나오는 것이기에 누가 총무원장이 되건 선거 이후 조계종에는 한바탕 변화의 바람이 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흐름은 두 후보가 각축을 벌이는 가운데 자승 스님이 앞서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민진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