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사장’ 지도부에 ‘눈치 보는’ 의원들뿐
언론에는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새누리당 지도부를 뺀 내부는 요즘 부글부글 끓고 있다. ‘박비어천가’를 지휘할 게 빤한 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가 10월 재·보궐 선거 경기 화성갑에 전격 공천되면서다. “설령 이긴다고 해도 100석을 잃을 수도 있다. 대의명분을 놓쳤다”는 박민식 의원의 이야기는 새누리당 내부의 공통된 정서로 읽힌다. 그런데 모두가 서로 눈치만 보고 있을 뿐, 누구 하나 나서 반기를 들진 않고 있다. 벙어리 냉가슴만 앓는 꼴이다.
서청원 전 대표의 공천은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을 당 지도부가 수용한 결과라는 말이 팽배하다. 일요신문DB
한 새누리당 초선 의원 보좌관의 귀띔이다. ‘심지회’는 어둠을 밝히겠다는 의미로, 새누리당 초선 의원들의 모임이다. 20명 안팎이 가입해 있다. 이 보좌관은 “서청원 전 대표가 공천되면 새누리당 쇄신책은 앞으로 죽도 밥도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으나 누구 하나 나서 성명서를 쓰진 못한 것으로 안다. 찍히면 죽는 줄 알기 때문”이라며 “잘못인 줄은 알지만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기는 두려운 것 아니겠느냐”고 씁쓸해했다. 이는 보좌진 등 당원들 사이에서도 같은 기류라고 덧붙였다.
“<동아일보>에 ‘서청원 공천이 박심(朴心)’이라는 보도가 나갔는데 설마 했다. 그런데 진짜로 그 사람이 공천을 받았다. 하지만 당 지도부가 전폭적인 지원을 한다고 결정하더라도 누가 화성갑으로 가 이리 뛰고 저리 뛰겠는가. 잘못하다 사진에라도 찍히면 구태 정치인으로 낙인 찍힐 게 뻔한데…. 공천 반대라고 앞장서지는 못하겠지만 암묵적 비토는 있을 것이다.”
당직을 맡고 있는 한 재선 의원은 이렇게 털어놨다. 그는 ‘삼수회’, 매월 셋째 주 수요일에 만나는 재선 의원들 모임의 일원이다. 그러면서 그는 “3선 중에서 누가 ‘서청원은 안 돼’라고 하면 힘이 모일까, 초·재선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고 발을 뺐다.
결국 서 전 대표의 공천은 새누리당 내 초·재선과 3선 이상 중진 다수가 무기력증을 앓고 있다는 데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서 전 대표를 공천하더라도 소극적 지지 내지는 암묵적 동의, 그게 아니더라도 무대응까지는 받아낼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 ‘황우여(대표)-최경환(원내대표)-홍문종(사무총장)’으로 이어지는 ‘친박 체제’가 박심을 받들었다는 말이 팽배해 있다.
앞서 서 전 대표가 공천을 받기 전 김성태, 박민식, 조해진, 이장우 등 쇄신파 의원들이 ‘서청원 공천 결사반대’를 외쳤는데 다수 의원은 “용기 있네”라고 치켜세우면서도 자신의 이름을 가져다 쓰는 것에는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의원 한 명 한 명을 졸(卒)로 보는 당 지도부의 결정에는 이유가 있다”며 이런 분석을 해줬다.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사퇴가 ‘공포정치’를 야기했다고 이야기하면서다.
“진 전 장관이 양심의 문제라고까지 하며 자리에서 물러났을 때 당이 어떻게 했나. 출당 운운하면서 감히 ‘짐의 뜻’에 어깃장을 놓은 것을 손가락질했다. 사퇴하는 과정에서 나온 진영의 처신 품격에 대해선 지탄할지라도 정책 집행 시스템 문제나 청와대의 횡포에 대해 꾸짖은 바는 없다. 그러니 박 대통령 곁에서 곁불만 쬐던 무력한 친박계는 생존을 위해 납작 엎드린 것이다. 서청원을 반대했다가는 출당 운운할 것인데…, 그게 너무 두려운 것 아니겠는가.”
왼쪽부터 최경환 원내대표, 황우여 대표. 박은숙 기자
“개인적인 인연으로는 분명히 도와야 하겠지만 새누리당의 앞날과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선 뛰지 않는 것이 맞다. 서 전 대표도 이재오 의원처럼 나홀로 선거를 통해 지난 잘못을 백배사죄하는 방향으로 선거운동을 검토해야지 ‘나 이런 사람이오’ 하며 새누리당을 병풍으로 써선 안 된다. 정치판에서 닳고 닳은 그도 이런 분위기는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한 제대로 된 친박계 중진 사이에서 그를 내켜하는 사람은 없다.”
차기 국회의장이나 부의장, 당 대표 등을 노리는 중진 세력 외에도 서 전 대표의 복귀를 마뜩찮아 하는 이들이 당내에 상당수 분포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차라리 서 전 대표가 패함으로써 청와대와 정부가 민심의 현실을 맛보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란 말을 흘리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지난 2011년 4월 재·보선 당시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가 경기 분당을에서 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에게 패하면서 벌어진 것과 같은 일련의 세력 재편이 여러모로 새누리당의 미래를 위해 보다 나은 시나리오라는 얘기다. 하지만 그런 결과는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정치권 정보를 수집하는 한 기관 관계자의 전언은 이랬다.
“새누리당 지도부와 공천 관여자가 요즘 기자들에게 ‘손학규가 나오면 서청원은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강재섭 시즌2네, 강재섭 학습효과네’ 하면서 말이다. 화성갑에 젊은 층이 많이 살고 있고, 이들이 대부분 진보적이란 뉘앙스를 풍기며 겁먹고 있는 듯한 제스처를 취한다. 하지만 좀 더 파고들면 화성갑 분위기는 그 반대다. 당시처럼 전셋값 폭등, 집값 폭락 등의 부동산 문제가 크지 않다. 이명박 정부 중반 이후여서 정부 지지율이 하락세였지만 지금은 집권 초기이고 안보 이슈 덕분에 박근혜 정부 지지율도 60%대에 머물러 있다. 검찰의 NLL(서해 북방한계선) 중간수사 발표 시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즉 새누리당이 역정보를 흘림으로써 민주당이 손 고문을 공천토록 하고 선거에서 이김으로써 △차기 대권주자군에서 손학규 내몰기 △민주당 지도부 공천 책임론 부각 △NLL 대화록 파기 정국으로 안보 이슈 지속 △서청원 당권 장악까지 넘보겠다는 계산이 깔렸다는 것이다.
‘할배들의 폭주’가 계속되느냐, 아니면 서청원에서 멈추느냐는 결국 민주당 손에 달렸다. 민주당 측에서도 손 고문의 ‘정치적 역마살’ 즉, 한나라당 탈당 전력이나 ‘광명시→분당을→화성갑’으로 이어지는 지역구 이동 등을 서 전 대표가 물고 늘어지면 필승카드가 아닐 수도 있다는 분위기를 감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우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