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들 놀이터 전락…“보국대가 여성들 연행” 오해도
여성가족부가 운영하는 e-역사관에는 사진과 용어 해설 등 잘못된 정보들이 올려져 있다. ‘일본군위안부용어’ 카테고리에 게재된 사진들은 모두 위안부와 관련이 없으며 정신대와 위안부를 혼동하고 있다. ‘일본군위안부동원’ 카테고리에는 ‘보국대가 위안부 여성들을 동원했다’고 잘못 설명돼 있다.
특히 “보국대, 봉사대, 근로대 등 여러 가지 이름의 공식적인 동원 조직을 통해 공개적으로 동원된 여성들을 일본군 위안소로 연행하기도 했다”는 문장이 가장 문제가 되고 있다. 일베 회원들을 중심으로 “보국대가 여성들을 위안소로 연행했다”는 식으로 잘못 인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 보국·정신대 모두 피해자
보국대란 일제가 1938년 7월 ‘국민정신총동원근로보국운동’에 관한 건을 공표하고 14~40세의 남성과 14~25세의 미혼여성을 대상으로 행정단위에 따라 지역별로 일반근로보국대, 학생근로보국대, 각종 연맹근로보국대 등의 명칭으로 조직한 단체다. 전쟁으로 인해 부족해진 노동력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공공사업의 ‘부역’에 동원하기 위해 일본과 조선의 모든 성인남녀 및 학생을 의무적으로 가입시켰다. 이렇게 동원된 이들은 철로 보수, 도로·제방·교량 건설 등의 토목공사, 관공서·방공호·비행장 건설, 황무지 개간, 신사 청소 등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민족문제연구소 김민철 책임연구원은 “이 조직(근로보국대)이 공식적으로 여성들을 동원한 것이 아니다. 정확한 문장이 아니라서 오해의 소지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위안부가 동원된 방식에 대해선 “민간업자가 위안부를 모집했는데 속아서 기생이 간 경우가 있고, 사창 소속 여성이 동원된 경우가 있다. 근로정신대로 갔으나 위안소로 끌려간 경우는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증언이 하나뿐이다”라고 설명했다. 보국대가 정신대를 동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뉴라이트 계열 대표학자인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도 “본인이 국내에서 가장 먼저 강제동원을 연구한 사람들 중 하나다”라며 “근로보국대라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노동력 착취를 위해 조직한 것이다. (당시 동원된 이들은) 힘없이 끌려간 사람들이다. 쉽게 낙인 찍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해 논란과 오해에 종지부를 찍었다.
여자정신대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두 번째 단락에선 여자정신대가 ‘노동 동원’이라는 측면이 빠져 있어 정신대와 위안부의 구분이 모호하다. 김민철 박사는 “일반인이 보기에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표현이 약간 애매하다”며 “종군위안부와 처녀공출은 따옴표 등으로 서로 구분해줘야 할 것 같다. 80~90년대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정신대=위안부’로 오해하고 있었다. 정신대의 경우, 군수공장 등에 동원된 사람들이고, 위안부와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 “금년중 고칠 것” 답변 뿐
‘위안부 연행’ 카테고리에서도 사진과 설명글이 엉뚱하게 편집된 것이 발견됐다. 이에 대해 김 박사는 “글과 사진의 맥락이 다르다”며 “위안부 연행 방식에 대해 취업사기, 인신매매, 협박, 납치라고 써놓고 사진은 신문에 난 위안부 모집 광고를 편집해 놓았다”라고 지적했다.
설명글은 강제로 동원된 경우에 관한 것인데 사진은 신문광고란에 실린 월수 300원의 종군 ‘위안부 급모집’ 광고라는 것이다. 당시 면서기의 월급이 30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300원의 월급이 매춘 제공의 대가라는 것이 광고에 암시돼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상 이러한 광고를 통해 당시 사람들이 일제가 전쟁터에 매춘을 위해 여성을 동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혼인 등의 방법으로 딸들을 보호했다.
한편 지난 9월 5일 새누리당 이명수 의원은 “역사관의 내용에 문제가 있다는 민원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며 여가부 측에 오류 수정을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같은 달 13일 여가부 측은 “위안부 연행을 설명하는 페이지에서 (문제가 된) ‘정신대 및 보국대’ 용어를 삭제했다”며 “금년 중에 사이버 역사관 홈페이지에 게재된 자료를 전문가에게 검토 의뢰해 추가로 수정할 계획”이라고 답변했다.
하지만 10월 4일 현재 해당 사이트는 가장 많은 오류를 지적받은 ‘일본군 위안부 용어’ 카테고리를 닫아놓은 상태다. <일요신문>은 이외에도 3군데의 오류를 추가로 찾아냈다.
이에 대해 여가부 관계자는 “사이트 수정을 위해 전문위원들을 선정해 감수를 받는 등 TF팀을 구성했다”며 “일베 회원들이 우리 사이트의 내용을 복사해 악의적으로 재인용하고 전재했다고 들었다. 악용과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 같다. 앞으로 출처를 명확히 하고 빠른 시일 내에 수정하겠다”며 우려를 불식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이미 위안부와 근로보국대, 근로정신대 등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오해가 웹상에 광범위하게 퍼졌고, 심지어 국제적으로 선보이겠다고 만든 위안부 피해 홍보 동영상에도 여가부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제공한 잘못된 정보가 편집돼 있는 상태다.
일본 나고야 미쓰비시 비행기부품제작소 강제노역에 끌려간 근로정신대 여성들. 피해 할머니들은 오랫동안 군 위안부로 오해받았다.
현재 포털에선 ‘박원순 부친(생부) 보국대’라고 입력하면 SNS 등을 중심으로 박원순 서울시장 생부 박길보 씨가 친일파라고 주장하는 글들이 여럿 뜬다. 최초의 오해의 소지는 박 시장이 2004년 9월 <주간동아>(454호)와 한 인터뷰에서 “(부친이) 남에게 해가 되는 일을 하지 말라고 입버릇처럼 강조하셨다. 아버지는 해방 직전까지 보국대에 끌려가 7년간 고생하셨는데, 보국대에서 일본인이 갖고 있는 좋은 모습을 배우셨기 때문에 하신 말씀인 듯싶다”고 정리돼 있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역사관의 “보국대가 정신대를 연행했다”는 말과 합쳐져 박 시장 부친의 친일 논란에 불을 지핀 것이다.
그러나 앞서의 권희영 교수가 밝혔듯이 보국대는 노동력 착취를 위해 일제가 조직한 단체이며 현재 보국대 피해자는 연인원 55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보국대는 일제가 근대 이전의 ‘부역’ 제도(국가나 공공 단체가 특정한 공익사업을 위해 무보수로 국민에게 의무적으로 책임을 지우는 노역)를 ‘봉사’라는 미명으로 부활시킨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박 시장의 부친 또한 부역에 동원된 것이다.
김 박사는 “조선의 모든 가구의 호주들은 보국대에 의무적으로 가입하게 돼 있었다”며 “사람들을 동원하기 위한 단위조직으로 가구 10개를 하나의 애국반으로 편성한 후 농촌에선 모내기, 도시에선 도로 청소, 방공호 건설 등에 동원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성인남녀들은 모두 직장보국대, 학생보국대, 부인보국대, 청년보국대, 장년보국대 등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했다. 각 지방의 사정에 따라 청년단, 진흥회, 부인회, 관공서 등 기존 단체를 그대로 이어받아 결성된 예가 많았다. 체신청 직원이라면 체신근로보국대에 자동으로 소속되는 것이다. 심지어 형무소 죄수들을 동원한 형무소보국대, 승려를 동원한 불교보국대까지 존재했다. 초기에 동원된 보국대원들이 친일파라거나 생활고 때문에 자진해서 보국대원이 됐다는 주장들도 전혀 사실이 아니다.
근로보국대는 봉사를 행하는 것으로 작업에 따른 보수를 받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만일 받는 경우에도 공사헌금, 애국저금 등의 비용으로 사용하도록 지침으로 정했다. 또 근로보국대원이 동원을 기피하거나 탈출하는 경우 ‘경제경찰’을 통해 연행하도록 했고 가족이 사망해도 보국대원을 귀가시키지 않는 등 강압적으로 통제했다. 보국대는 도내동원이 주를 이뤘으나 일찍이 1939년경부터 만주 사할린 일본 남양군도 등의 토목공사장 및 농촌으로 동원된 예가 각종 문헌에서 발견된다.
한편 ‘대한민국 홍보 전문가’를 자처하는 서경덕 교수가 메가스터디와 함께 만들고 정대협·나눔의 집·위안부e역사관이 협조 및 제작한 9분 분량 동영상의 2분 27초에선 “일본은 여성 정신대 또는 여성근로정신대라는 명칭으로 노동력도 착취하였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위안부로 연행되었다. 이로 인해 정신대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일본군 위안부를 지칭하는 용어로 굳어지게 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이것은 잘못된 설명이다.
근로정신대가 위안부로 상당수 연행됐기 때문에 정신대가 위안부를 지칭하는 용어로 굳어진 것이 아니라 근로정신대와 위안부가 모두 여성을 동원 대상으로 했다는 점 때문에 오랫동안 ‘정신대=위안부’라고 잘못 알려진 것이다. 근로정신대로 동원됐다가 위안부가 된 사례도 상당수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실제로 그러한 사례는 소수이고 일반적 연행 형태가 아니다.
같은 맥락에서 동영상 4분 33초~4분 37초 사이에 등장하는 사진은 앞서 설명한 나고야 미쓰비시 비행기부품제작소로 동원된 전남지역 여성근로정신대의 모습이다. 정신대가 위안부로 오해되면서 피해 할머니들은 남편에게 학대받다가 이혼당하는 등 가정적으로 불행한 삶을 산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이러한 부주의한 인용으로 인해 큰 상처가 되고 있다.
서경덕 교수는 “저희가 주로 했고, 관련 단체나 전문가에게 자료 요청을 한 것이다. 나눔의 집 정대협 사이버 역사관 등에서 받았다. (동영상 제작을 완료한 후) 학자들에게 검증도 받았다. 빠른 시일 내 고치도록 노력하겠다”고 답변했다.
# 정부 정확한 기준 제시를
역사관과 서 교수 측에 자료를 제공한 정대협 측은 “우리는 잘 모르겠다”며 “2006년에 관련 자료를 여가부에 넘겨준 후 그 후엔 일체 관여하지 않았다. 그동안 매해 수정되고 보강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당시 여가부에 제공한 자료와 현재 보이고 있는 오류를 대조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질문엔 “(자료를) 현재 남겨놓지 않았다”고 말해 의문을 남겼다.
하지만 여가부 역사관과 서 교수가 제작한 ‘한국인이 알아야 할 역사 이야기’ 동영상이 동일한 양상의 오류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2006년경의 역사관과 현재의 역사관이 내용상에서 크게 수정된 점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이국언 사무국장은 “정부나 관련 단체마저도 이런 부분을 잘 모르고 혼동하는 바람에 일반인이 구별해서 알기는 대단히 어렵다”며 “역사용어는 중요한 문제인데, 소홀히 하고 간과하는 것 같다. 앞으로도 쉽게 개선되기 어렵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한 역사학자는 “교과서 집필이나 여가부 사이트 모두 인터넷상의 백과사전, 교과서 지침서 등 참고자료가 한정돼 있다. 결국 정부가 공식적이고 일관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공동체의 사회적 기억으로서 합의된 공식적 기준을 확립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피력했다.
신상미 기자 sh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