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18일 KIA타이거즈 감독에서 물러난 후 KBO 육성위원장과 삼성 라이온즈 포수 인스트럭터로 활동하다 10구단 창단팀 감독에 선임된 조범현 감독. 까맣게 그을린 얼굴로 나이 어린 선수들과 동고동락하고 있는 그는 “처음에 이 선수들을 데리고 어떻게 야구를 해야 하나 싶었는데 지금은 어린 선수들의 패기를 보며 내가 배우는 게 더 많을 정도”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남해 캠프에서 진행된 조범현 감독과의 인터뷰를 정리해 본다.
조범현 감독.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창단팀 감독이 결코 쉬운 자리가 아닌 모양이다. 체중이 많이 빠지신 듯하다.
▲“지금은 뾰족한 답이 없는 상태다.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가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스카우트한테 보고 받은 걸 토대로 선수들의 장단점, 성향, 성격 등을 파악하면서 ‘숨은 진주’를 발굴하고 키워가려고 노력 중이다. 그런데 막막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가끔은 NC 다이노스의 김경문 감독이 생각난다(웃음).”
―혹시 김경문 감독과 만난 적이 있나.
▲“만나진 못했고 잠깐 통화만 했었다. 김 감독에게 ‘앞으로 많이 좀 배우겠다’고 했더니 ‘많이 답답할 것이다’라고 말해주더라. 그때는 그 말에 대한 감이 안 왔는데, 훈련을 시작하고 보니 어떤 의미에서 한 말인지 알 수 있었다.”
―SK와 KIA에서 감독을 역임했지만, 창단팀은 처음이라 더 힘들 수 있을 것 같다.
▲“기존 구단과 비교조차 안 된다. 망치질부터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라서 신경 써야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래도 구단에서 적극 지원을 해주고 있어 기본적인 부분이 자리를 잡게 되면 훨씬 수월하게 선수단 운영을 해나갈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현장에서 물러나고 2년 여의 시간이 흘러갔다. 처음 감독직에서 물러났을 때는 상실감이 꽤 컸을 텐데, 어떠했나.
▲“빨리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미련두지 않으려 했다. 자꾸 연연해하게 되면 내 자신의 중심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물음표’ 대신 ‘느낌표’로 채워나갔다. 솔직히 처음에는 공허한 마음이 컸었다. 허전함을 잊기 위해 나름 노력도 해봤는데, 결국에는 시간이 흘러가야 해결되더라. 그래도 당시에는 조금 아팠지만,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도자로서의 내 인생이 조금 더 성숙해진 게 아닌가 싶다. 지난 2년 동안 새로운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어떤 경험 말인가.
▲“KBO에서 육성위원장을 맡아 전국을 돌며 초중고 아마추어 야구 선수들을 보러 다녔다.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유망주도 있었고, 기본기가 탄탄한 선수들이 많아 한국 야구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해줬다. 어린 선수들을 보면서 ‘내가 그동안 너무 앞만 보고 살았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 꼭 감독이 아니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 날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작년 가을 삼성에서 인스트럭터로 보낸 시간도 값진 경험이었다. 선수들과 밀착해서 직접 훈련에 참여하며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는데, 그때 젊은 선수들의 생각을 조금은 알고 이해할 수 있었다고 본다.”
―2년 동안 감독 자리가 공석인 팀이 생길 때마다 감독 후보 0순위로 거론되곤 했었다.
▲“고맙기도 했고, 난처하기도 했었다. 번번이 설로만 끝났지만…(웃음). KIA에서 나오며 ‘내가 다시 감독을 맡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했었다. 만약 다시 맡게 된다면 제대로 준비해서 도전해보자고 결심했었다. 복귀할 수 있는 상황이 주어진다면 자신있게 맡을 수 있도록 노력했던 부분이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아마추어 선수들과 보낸 시간들 덕분에 KT 선수들을 파악하는 게 수월해졌다.”
조범현 감독.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어휴, 대회가 다가올수록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시안게임은 동메달, 은메달도 아닌 무조건 금메달을 따야만 병역 면제 혜택이 주어지지 않나. 행여 금메달을 못 따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다. 그래서 코치들한테 만약 금메달을 목에 걸지 못하면 난 한국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곤 했었다.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상상을 초월했다. 선수들이 시즌을 마치고 모인 터라 몸 상태가 안 좋았다. 그래도 부산에서 20일가량 훈련했던 게 큰 도움이 됐다고 본다. 선수들은 훈련 많이 한다고 불평이 많았겠지만 말이다.”
―대만과의 결승전에는 류현진이 선발로 나왔다가 윤석민이 마운드를 이어받고선 호투를 펼쳤다.
▲“현진이도 준비를 잘했는데 컨디션이 좋지가 않았다. 4회 던지는 거 보고 (박)경완이 불러서 현진이 볼이 어떠하냐고 물었더니 좋지 않다고 하더라. 그래서 5회말 (윤)석민이를 내보냈다. 석민이가 담이 와서 훈련을 제대로 못했는데 미리 불펜피칭을 해본 후에는 던질 만 하다고 얘기하더라. 몸이 부드러운 애라서 무리하지 말라고 했더니 굳이 자기가 나가겠다고 해서 올렸는데, 5이닝 동안 무실점으로 상대 타선을 완벽하게 봉쇄하고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 당시 대만 선수들이 석민이의 날카로운 슬라이더에 속수무책인 상태였다.”
―아시안게임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선수들이 있다면 누구인가.
▲“추신수가 정말 좋은 선수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실력이야 메이저리그이니까 당연할 수도 있지만, 인간성이 아주 좋더라. 경기에서뿐만 아니라 벤치에서도 후배들을 다독이고 격려하면서 분위기를 리드해 나갔다. 설치지도 않고 차분하게 베테랑다운 모습을 보이는 걸 보고 ‘저 친구, 참 매력 있는 선수구나’하고 생각했다.”
―애제자 윤석민이 메이저리그행을 선언했다. 스승으로서 조언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석민이가 올시즌 마무리로 나서는 걸 보면서 내가 KIA 감독할 때가 생각났다. 당시에도 석민이가 마무리를 맡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는 팀의 마무리 부재가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석민이를 불러선 내가 직접 부탁을 했다. 팀의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면서 몇 게임만 뒤에서 맡아달라고 말했더니 주저 없이 ‘해보겠다’고 말하더라. 석민이는 팀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 강한 선수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안 된다’ ‘힘들다’며 빼지를 않았다. 그런 마인드를 갖고 있기 때문에 체력적인 부분이 보완된다면 충분히 메이저리그에서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의 체력으로는 풀타임을 소화하기에 다소 무리이다. 겨우내 체력 보완에 주력했으면 한다.”
―KT 신임 감독 취임식 때 ‘3년 안에 4강에 들어갈 수 있는 전력을 만들겠다’라고 공언했다. 약속을 지킬 수 있겠나.
▲“그렇게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내후년 1군에 진입할 경우 초반에 팀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게 순위 싸움을 하는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NC다이노스의 사례를 통해 많은 공부를 하고 있다. NC가 올시즌 이룬 성적에 부담을 많이 느낀다. 1군 첫 해부터 이 정도의 성적을 내면 우리는 어쩌란 말인가(웃음). 지금은 아무 것도 완성된 게 없지만, 앞으로 천천히 만들어 나갈 것이다.”
―신생팀 우선지명으로 천안북일고 유희윤과 부산 개성고 심재민을 뽑았다. 그리고 1차지명에서는 경북고 투수 박세웅을 지명했는데, 이 선수들을 직접 본 소감이 궁금하다.
조범현 감독.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지금 훈련하고 있는 선수들 중에서 미국 애리조나 캠프에 참가하는 선수를 추린다고 들었다. 선수들 사이에서 경쟁 의식이 치열할 것 같다.
▲“자연스럽게 생존 경쟁 체제가 형성됐다. 갑작스런 훈련으로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선수들이 많다. 그래도 견뎌내야 한다. 고통 없이는 좋은 선수가 될 수 없다.”
―NC는 FA 이호준 선수 영입 후 올시즌 엄청난 효과를 거뒀다. KT도 이에 영향을 받게 되는 건가.
▲“감독 입장에서는 영향을 많이 받고 싶다(웃음). 당연히 FA 선수들에 대해 관심도 많고 좋은 선수들을 데려오고 싶지만, 일단 내년 한 시즌을 지켜봐야 가닥이 잡히지 않겠나. 공개 트라이아웃을 통해 선수들을 뽑긴 했는데 파워 넘치는 선수들이 눈에 띄지 않았다. 이런 부분을 보완할 만한 카드를 생각 중이다. 필요하다면 2군 경기를 위해 외국인 선수를 뽑을 수도 있다.”
KT는 남해에서 11월 20일까지 훈련을 갖고, 곧장 미국 애리조나로 캠프를 옮긴다. 이후 2월 초 대만으로 이동, NC다이노스, 대만팀들과 연습게임을 가질 예정이다.
조범현 감독의 눈에 비친 KT 선수들은 백지 상태나 마찬가지지만 2월, 실전 훈련을 하게 될 즈음에는 조금씩 그가 생각한 구상들이 선수단에 녹아 들 것으로 보인다. 아직은 수면 아래 잠겨 있는 그의 ‘마법’이 언제쯤 수면 위로 부상하게 될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