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홍준표 의원.이재오 의원 | ||
지금까지 3인방의 강공책에 대한 당내 반응은 부정적인 면이 많았다. 최근의 폭로정국과 관련해서도 그 ‘원조’에 해당하는 정형근 의원조차도 “철학이 없다”며 이들의 강경 일변도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특검 정국으로 당이 위기에 빠지자 의원들이 ‘강경 투쟁’의 한목소리를 내면서 이들의 행보에도 힘이 실리고 있는 것. 그렇지만 이들은 정국을 극한 대립으로만 몰고가고 있다는 여론의 역풍에 힘겨워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이들 트리오가 난파 직전의 한나라호를 과연 구할 수 있을까.
▲ 김문수 의원 | ||
지난 11월 초 홍준표 전략기획위원장이 기자들과의 사석에서 내뱉은 말이다. 당이 SK 비자금 파문으로 비상체제에 들어서면서 재선 3인방이 핵심요직에 등용되었는데 그 배경을 두고 홍 의원이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다. 거친 표현이었지만 그 얘기 속에는 난마처럼 얽힌 정국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지에 대한 해답이 담겨 있었다.
홍 의원의 ‘거지론’은 두 가지 점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먼저 이들은 지금까지 큰 비리에 연루된 적이 없어 상대적으로 깨끗하다고 자신하고 있다. 이들은 당의 강경책을 주도해 정권의 미움을 사게 돼 표적사정 바람이 불더라도 걸릴 게 별로 없다고 자신하고 있다. 꼬투리 잡힐 일이 없으니 한 길로만 갈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이들은 지금까지 계파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 행보를 보여왔기 때문에 ‘선배’들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향후 불어닥칠 당 물갈이의 태풍도 이들의 손에서 좌지우지될 가능성이 크다. 이와 함께 이들은 현 온건 지도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홍준표 의원은 홍사덕 총무의 정국 대처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면서 자신들과 계속 충돌할 경우 “의총을 통해 공식적으로 아웃시키거나 그것도 안 되면 홍 총무를 왕따 시킬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홍 의원은 또한 “사실 지금 당직을 맡고 있는 사람들 중 일부는 당을 위해서라기보다 내년 총선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력 관리 차원으로 당직을 맡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당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희생정신이 부족하다. 얽히고 설킨 당내의 연줄을 조정하기 바쁜 이들에게 어떻게 당내 개혁과 대여 투쟁을 주문할 수 있겠나. 그 대안으로서 우리(3인방)를 주목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들 3인방에게는 ‘생각보다 행동’이라는 의식이 강하다. 일부에서는 ‘앞뒤 재지 않고 일단 내지르고 본다’며 이들의 투쟁 일변도에 대해 비난도 하고 있다. 하지만 홍 의원은 이에 대해 “현재 한나라당은 야성(野性)을 잃어버렸다. 지난번 정치개혁 특위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토론만 하다가 결국 결론 없이 끝을 내는 것을 봤다. 이렇게 하다간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다. 지금 한나라당이 필요한 것은 1백 번 생각하는 것보다 한 번 몸으로 부딪쳐 행동하는 것이다. 그것이 힘없는 야당이 권력과 싸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라고 밝혔다. 홍 의원은 “권력자가 칼을 휘두르면 절대 피하면 안 된다. 그때는 그 칼끝을 꽉 물어버려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들 3인방은 ‘야당은 수동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투쟁을 해서 그 부당성을 지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 하나.
3인방 가운데 평소 성격이 괄괄하기로 소문난 A의원이 한 언론사와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이날의 주제는 의원들에게는 민감한 정치자금에 관한 것이었다. 인터뷰 초반부터 좀 ‘재미있는’ 것을 물어보라는 A의원의 기대와는 달리 이 언론사의 기자는 ‘안풍’ 등으로 불법 조성된 야당의 정치자금에 대해 집요하게 캐물었다. 드디어 열이 받을 대로 받은 A의원은 “여기서 그만하자. 왜 같은 말을 되묻느냐. 여당은 그렇게 조목조목 따지지 않고 왜 야당에게만 칼끝을 겨누느냐”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버렸다. 인터뷰는 중간에서 어색하게 끝이 났다. A의원은 그 언론사가 현재의 권력과 코드를 가까이 하는 것에 대해 내심 ‘피해의식’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일화에 비친 것처럼 A의원을 포함한 ‘3인방’은 자신들이 현재의 권력보다 부당하고 불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여기고 있다. 또한 권력이 검찰을 앞세워 야당을 압박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런 문제의식이 ‘3인방’의 비타협적 강경 투쟁에 대한 현실적 배경이 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나라당은 특검을 관철시키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 측근 비리를 국회에서 계속 폭로한 바 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근거도 없이 일단 폭로부터 하고 보는 구태의연한 발상’이라며 야당을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김문수 의원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이번 폭로정국에 대해 한발 비켜서 있지만 앞서 A의원의 주장처럼 야당에 대한 일방적인 도덕적 매도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였다.
“폭로정국이란 말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행정부를 비판 감시하는 것이 야당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그런 의혹 제기를 ‘근거 없는 폭로’라는 도덕적 틀에만 가둬놓고 이를 비판한다면 잘못된 것이다. 현 권력은 홍보력, 검찰 등 모든 면에서 야당보다 우위에 있다. 이런 사실을 간과하고 야당의 폭로에만 비난의 초점을 맞춘다면 야당 죽이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현재 ‘3인방’의 강경책이 한나라당을 주도하고 있지만 이들의 힘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의구심이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먼저 이들의 강경 대처 방식이 즉흥적이며 근시안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그들의 투쟁이 느슨해졌던 야당성을 회복시키는 등 당의 선명성 제고에는 어느 정도 기여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들의 투쟁 방식은 장기적인 큰 흐름에서 볼 때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재 정국을 강공으로만 몰고 갈 경우 결국 노 대통령이 조성하려는 진흙탕 정국에 빠질 것이며 그 결과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거리로 내몰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여론도 이들 ‘3인방’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아무리 야당이지만 언제까지 정면 대결, 강경 투쟁의 구태의연한 모습만을 보일 것이냐’며 비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기 때문.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정기남 부소장은 “최근 한나라당의 강공책으로 27~28% 언저리에서 굳건히 지켜주던 열혈 지지자들의 이탈이 눈에 띈다”며 여론이 한나라당에 등을 돌리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정 부소장은 “한나라당이 재선 3인방을 중심으로 한 강경파들의 득세로 당이 위기를 탈출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결국 그것은 ‘모래 위의 성’이 될 것이다. 자칫하면 강경책으로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런 위험 요소에도 ‘3인방’이 계속 타협보다는 강경 일변도로만 밀고 나갈 수 있을까. 최근 이재오 비대위원장을 만난 한나라당의 한 인사는 “현재의 강공책은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당과 국익을 생각해서라도 다른 타협안에도 귀를 기울여 달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이 위원장은 확답은 하지 않았지만 이 인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자세를 보였다고 한다. 과연 이들 3인방이 대타협의 깃발을 들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