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희 회장 | ||
‘I프로젝트’는 이태원동 외인주택 단지에 세워지는 단독 주택과 미술관 건설을 지칭하는 삼성그룹 내의 암호명. ‘I프로젝트’의 ‘I’는 이태원동의 이니셜 첫자를 따서 붙인 것이다. 지난 96년에 수립된 I프로젝트는 IMF로 인해 한동안 보류됐다. 그러다가 올해 5월 이건희 회장과 홍라희 여사 명의로 이태원동 땅을 추가로 매입하면서 본격적인 공사에 돌입한 상태다.
그러면 I프로젝트의 구체적인 목적은 무엇일까. 또 이건희 회장의 한남동 자택과 지척인 이태원동 건축 현장에는 어떤 함수관계가 숨어 있을까.
‘I 프로젝트’는 삼성측이 지난 96년 이건희 회장의 맏딸인 호텔신라 기획부장 이부진씨(32) 명의로 용산구 이태원동 땅을 매입하면서 처음 가동됐다. 현재 공사가 진행중인 I프로젝트 부지는 외인주택 단지에 있는 단일 주택부지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땅 면적은 약 1천6백47평(5천4백35㎡). 이건희가(家)는 이 땅을 96년과 98년 그리고 올해 5월 등 세 차례에 걸쳐 매입했다.
부동산 등기부에 따르면, 96년 3월 이부진씨 명의로 이태원동 135-50과 101-37 일대 땅 4백56평(1천5백6㎡)을 사들였다. 이 회장의 둘째 딸인 서현씨(29) 명의로 135-56번지 땅을 98년 3월 매입하기도 했다. 그리고 올해 들어서는 지난 5월, 이 회장 명의로 135-37·49·61 땅 5백24평(1천7백29㎡)과 부인 홍라희씨 명의로 135-42·59와 146-1 대지 4백76평(1천5백72㎡)을 사들였다. 이로써 I프로젝트 완성을 위한 부지 매입은 마무리된 셈이다.
이태원동 외인주택 단지의 부동산업소 관계자들에 따르면, 외인주택 단지의 땅은 평당 1천2백만원에서 1천5백만원 정도에 매매되고 있다. 그런데 이건희가(家)에서 사들인 땅은 주변 경관이 좋기 때문에 1천5백만원을 호가한다는 것. 이렇게 따져봤을 때 I프로젝트를 위해 매입한 부지의 가격은 모두 합쳐 2백47억원대를 호가할 것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현재 공사중인 건축비용까지 합산하면 최소한 수백억원이 투입되는 대형 프로젝트인 셈이다.
용산구청의 건축허가대장에 따르면, 이건희 패밀리에서 사들인 땅에는 모두 5개의 건물이 세워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건물의 용도는 단독주택 3개 동과 미술관 및 부속건물이 각각 1개 동이다. 이들 건물 가운데 4개는 모두 이건희 회장이 건축주로 등록돼 있다.
이 회장이 건축주로 돼 있는 미술관의 건평은 6백39평 규모로 지하 2층에 지상 1층짜리다. 이 정도 규모라면 관람객에게 공개하기 위한 미술관이라기보다는 개인 소장 미술품이나 고가 미술품을 관리하기 위한 용도로 쓰일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이 회장이 건축주로 등록된 건물들은 모두 지하 2∼3층에 지상 1∼2층 규모의 단독주택이거나 부속건물이다.
그리고 나머지 한 개 건물은 이부진씨 소유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부진씨 명의로 된 땅(이태원동 135-50과 101-37)의 건축주가 바로 이씨 자신인 것. 이부진씨 소유의 이 건물은 건평 1백36평 규모의 단독주택으로 지하 1층과 지상 2층으로 구성돼 있다. 이부진씨가 이사할 새 집으로 추정된다. 한 소식통에 따르면 “98년 삼성물산 평사원과 결혼한 이부진씨 부부가 입주할 것으로 보인다”는 것.
▲ 한남동에 대저택(오른쪽)을 갖고 있는 이건희 회장집안이 인근 이태원동에 ‘패밀리타운’을 건축중이어서 눈길. | ||
현재 건축중인 건물들이 모두 완공되면 한남동과 이태원동 벨트를 연결한 초대형 ‘삼성 패밀리 타운’이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이건희 회장의 한남동 자택 및 그 주변의 삼성 타운과 이태원동 신축현장이 꽤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이태원 신축현장은 이 회장 자택에서 자동차로 5분 정도 거리에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만 한남동과 이태원동으로 구분돼 있을 뿐 실제 거리는 지척간이라는 얘기다. 이 회장이 부진씨 부부를 품안에 두려 한다는 의미로도 풀이된다.
이에 대해 삼성측은 ‘I프로젝트’를 비밀에 부치고 있다. 사생활의 외부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삼성가(家)의 전형적인 특징을 여기서도 엿볼 수 있다. 심지어 공사가 진행중인 외인주택 단지 내의 경비원들도 이건희 패밀리가 사들인 땅에 무엇을 짓는지 모를 정도다. 이들은 단지 삼성에서 공사한다는 것밖에 모르는 눈치였다.
공사장 입구에서 근무하는 한 외인주택단지 경비원은 “공사장에 있는 (삼성측) 경비원에게 ‘무슨 공사냐’고 물어도 아무 대답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는 삼성측에서 건설현장 직원들에게도 ‘함구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 경비원은 “작년부터 공사가 시작되긴 했지만 한동안 공사가 중단됐다. 그런데 올해 들어 공사가 본격적으로 다시 진행됐다”고 덧붙였다. 올 들어 공사가 재개된 시점은 지난 5월. 이건희 회장 부부가 이 일대 땅을 매입했던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따라서 삼성측에서 I프로젝트에 필요한 땅을 ‘완전히’ 확보하지 못해 공사를 중단했다가, 지난 5월 이 회장 부부 명의로 부지를 매입함으로써 본격적으로 공사에 돌입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태원동 신축 현장은 외부에서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없도록 4m 높이의 콘크리트 장벽을 두른 상태. 따라서 공사 현장 안에서 어떤 공사를 진행하는지 외부에서 알기란 그리 쉽지 않다. 심지어 트럭을 비롯한 각종 건설기자재와 건축 자재들이 드나드는 출입문도 한창 내부에서 공사가 진행중인데도 굳게 닫혀 있었다. 건축자재가 드나들 때만 잠시 문이 열린다는 게 주변의 전언.
공사 현장 안으로 들어가려면 일단 입구에서 초인종을 눌러 1차 신분 확인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기자는 현장소장을 만나기 위해 초인종을 눌렀으나, 경비원이 나와 꼬치꼬치 신분 확인을 했다. 기자라고 밝히자 경비원은 “현장소장 없다”고 짧게 대답한 뒤 이내 출입문을 닫아버렸다. 이처럼 삼성은 I프로젝트의 외부 노출을 막기 위해 ‘철통 보안’을 유지하고 있다.
I프로젝트에 대해 삼성 관계자는 “회장님 집안의 사생활에 대해 일일이 확인해줄 수 없고, I프로젝트가 탈·불법적인 것도 아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은 없다”고만 말했다.
과거 이건희 회장의 한남동 집 주변 땅을 삼성측이 사들여 관리한다 해서 이 일대에 붙은 별명이 ‘한남동 삼성왕국’. 이번에 새로 밝혀진 이태원 이건희가(家) 건물은 앞으로 어떤 별명으로 불리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