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색 봉황무늬 아닌 일반 노란 봉투, 직접 들고 나온 점도 의아…“공식라인 배제, 외부 작성 가능성”
대통령의 모든 업무엔 매뉴얼이 있다. 대국민 담화문 등 연설에 나설 때도 마찬가지다. 현행 대통령실 직제에서 대통령 말과 글을 책임지는 공식라인은 대통령 비서실장 산하 메시지비서관이다. 과거엔 연설비서관으로 불렸다. 그런데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를 지켜본 전직 청와대 관계자들은 유독 눈길을 끈 장면이 있었다고 전했다.
보수 정권 시절 청와대에 재직했던 한 정치권 관계자는 “대통령이 손에 직접 서류봉투를 들고 왔다”면서 “여기서부터가 미스터리의 시작”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나설 때엔 이미 연설문이 마이크 앞에 세팅돼 있는 게 정상적인 프로세스”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이 노란색 서류봉투를 직접 들고 왔고, 그 봉투에서 연설문을 꺼내서 읽었다. 있기 힘든 일이다. 계엄선포라는 중대 사안에 대해 대통령실 공식 라인이 배제돼 있었던 셈이다. 서류봉투에서 연설문을 꺼내는 건 통상 비서관들이 미리 해야 하는 업무고, 서류봉투에 문건을 담아온다고 하더라도, 대통령 전용 ‘봉황무늬 봉투’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담화문 낭독을 시작하는 과정 전체가 파격 그 자체다.”
진보 정권 시절 청와대에 재직했던 한 관계자는 “정부마다 다르긴 하지만, 대통령이 쓰는 전용 서류봉투가 있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라면서 “통상적으로 대통령을 상징하는 봉황무늬가 서류봉투에 새겨져 있어 ‘대통령 전용’임을 인지할 수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선포 담화문을 꺼낸 서류봉투를 보면 누가 봐도 일반 시중에서 판매하는 일반 서류봉투”라면서 “공식라인을 배제한 채 외부에서 계엄선포 담화문이 작성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나타난 정황, 일요신문 취재 등에 따르면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해 주요 대통령 핵심 참모들은 계엄선포를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계엄선포 담화문을 누가, 어디서 작성했는지에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다.
또 다른 전직 청와대 관계자는 “담화문을 작성한 주체가 ‘군’이라는 가설을 세울 수 있는데, 이 부분에도 미스터리가 존재한다”면서 “군은 그 어떤 조직보다 형식과 절차를 중요시하는 조직”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만약 담화문 작성 주체가 군이라면, 서류봉투가 아니라 결재판에 담화문을 끼워 전달했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면서 “일반 서류봉투에 대통령 담화문이 담겨 왔다는 것은 담화문 작성 주체에 대한 미스터리를 증폭시키는 요소일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상황의 급박함을 시사하는 방증일 수 있다”고 했다.
전직 군 관계자는 “아무리 급한 상황이라도 군이 VIP에 대해 어떤 서류 등을 전달할 때 일반 서류봉투에 넣어 주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면서 “연설문 작성 및 전달 과정까지 군이 개입했을 가능성은 미미하다고 본다”고 했다. 그는 “대통령실과 국방부가 같은 건물을 쓰고 있기 때문에 일반 서류봉투에 담화문을 담아 전달했을 가능성은 더욱 떨어진다”고 했다.
이 때문에 윤 대통령이 일반 서류봉투에 담화문을 넣어온 것을 두고 연설문 작성 및 전달 주체가 ‘제3의 외부세력’일 수도 있다는 추정이 나온다. 앞서 언급했듯 대통령 연설 관련 공식라인이나 군에서 담화문을 전달했다기엔 납득하기 힘든 요소가 많은 까닭이다.
정치평론가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여러 보안 상 이유에 따라 대통령 본인이 직접 담화문을 작성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일요신문은 수소문을 거쳐 과거 정부 청와대에서 활용됐던 대통령 전용 서류봉투를 찾아냈다. 흰색 서류봉투 밀봉면 상단엔 대통령을 상징하는 금색 봉황무늬가 선명했다. 취재에 따르면 봉황무늬가 새겨진 ‘대통령 서류봉투’를 사용한 전통은 오랜 시간 이어진 것으로 파악됐다.
윤석열 정부에서 어떤 서류봉투를 사용하는지를 묻기 위해 대통령기록관 측에 문의했지만 답을 받을 수 없었다. 국방부 측은 “담화문 작성엔 군이 개입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공식적으로 알고 있는 부분은 없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측에 계엄선포 대국민 담화문 발표 당시 연설문을 누가 작성했는지를 문의했지만, 연락을 받지 않았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