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성 없는 ‘MB표’ 힘 빠진 지 오래…
2010년 12월 동반성장위원회 출범 당시 모습. 정운찬 초대 위원장(가운데)이 사퇴한 이후 동반성장위 활동이 지지부진하다는 지적이다. 이종현 기자
동반성장위의 활동이 두드러졌던 때는 2011년이었다. 정운찬 전 총리가 위원장을 맡은 동반성장위는 대기업의 일감몰아주기 문제, 중소기업적합업종 선정, 초과이익공유제 등을 제안하며 활발히 활동했다. 특히 중소기업계의 환영을 받았던 것이 중소기업적합업종 선정이었다. 동반성장위는 2011년부터 제조업 85개, 서비스업 15개를 중소기업적합업종 지정대상 품목으로 선정했다.
동반성장위가 대기업에 강경책을 제안하는 것보다 원만한 합의로 정책 방향을 전환한 것은 2012년 4월 유장희 위원장이 임명된 이후부터다. 정 전 위원장이 정부와 정책 방향, 지원 문제와의 갈등으로 돌연 사퇴한 후 이화여대 명예교수인 유 위원장이 자리에 올랐다. 이화여대 부총장,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중소기업중앙회 자문위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 등을 역임한 유 위원장은 중소기업과 대기업을 두루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분야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중소기업계에서는 유 위원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유 위원장은 MB캠프 자문위원과 청계재단 이사를 맡으며 MB 정부와 인연이 깊고 대기업의 사외이사를 역임하며 친대기업 성향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강제성이 없다는 한계를 지닌 동반성장위에서 무게감이 있는 정 전 위원장이 그나마 정치권에 강경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면 교수 출신인 유 위원장은 정치권에 그만한 힘을 발휘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유장희 위원장
이후 동반성장위는 크게 동반성장지수 산정, 동반성장 포상, 동반성장 포럼 운영 등의 활동을 중점적으로 진행해왔다. 사실상 대기업을 제한하는 업무로는 중소기업적합업종 선정만 남은 셈이다. 중소기업적합업종 선정은 2011년 제조업 분야 선정 후 2013년 2월 서비스업종이 추가되기까지 1년여 동안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이에 중소기업계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고조됐고 중소기업계에서는 동반성장위의 역할론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나오기 시작했다.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선정해달라고 신청했지만 2년 가까이 화답을 받지 못한 한국문구공업유통협동조합 관계자는 “(중소기업적합업종 선정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 신청한 지 오래지만 해당 업종이 적합한지, 그렇지 않은지 결과도 나오지 않고 있다”며 “우리뿐 아니라 중소기업적합업종 신청을 한 곳이 많이 있는데 지금 몇 년째 끌고 있다. (동반성장위가) 대기업과 회의만 거듭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올해부터 서비스업 품목에 포함된 다른 조합 관계자는 “매번 동반성장위 회의 때마다 갔는데 선정 절차가 너무 더디고 강제성이 없다는 것이 중소업계의 공통된 불만 사항이다. 솔직히 정운찬 전 위원장 사퇴 이후 동반성장위의 힘이 약해져 가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 같은 중소기업계의 불만에 동반성장위 측은 난감하다는 반응이다. 동반성장위 관계자는 “조합 여기저기서 마구잡이식으로 신청했기 때문에 반려되는 경우도 많았다. 지지부진한 것이 아니라 적합한 업종을 선정한 것뿐”이라며 “(2012년 중소기업적합업종이 공백기에 있었던 것은) 인력과 예산 부족 등의 문제가 있었다. 또한 2011년에 많은 품목을 지정해 사후관리가 더 중요하다고 보고 사후관리에 치중했다”고 설명했다.
정부와 연계된 동반성장위의 독특한 조직구성이 친정부적 성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동반성장위는 민간단체로 구분돼 있지만 사무국이 중소기업청 산하에 있는 대·중소기업협력재단에 있다. 대·중소기업협력재단은 동반성장운동의 기금관리 목적으로 설립된 법적기구다. 2010년 MB 정부가 동반성장추진 대책을 발표한 후 대기업들로부터 본격적인 기금 출연을 받았다. 동반성장위 사무국은 위원회 운영, 동반성장지수 산정, 정책관련 업무 등 다양한 일을 수행한다. 동반성장위 자체는 독립된 민간단체를 표방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 실무적인 일을 하는 사무국은 정부 부처 아래 있는 셈이다.
그동안 동반성장위의 활동을 살펴온 김제남 정의당 의원 측은 “사무국을 같이 써서 실무자들이 산업부 관련자들인데, 정부와 관련이 없겠느냐. 친정부적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동반성장위 측은 “동반성장위 자체는 대·중소기업협력재단에 속한 작은 단체가 아니다. 사무국만 재단에 두는 것일 뿐이다. 조직이 설명하기 복잡한 구조로 돼 있다”고 밝혔다.
동반성장위가 박근혜 정부의 산업정책 방향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중소기업 대통령’을 표방하고 있는 박 대통령은 중소기업 육성 정책을 내세우고 있지만 아직까지 실효성 있는 정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과 같은 맥락이다. 정부가 다양한 포럼과 행사 등에서 ‘동반성장’의 발언을 하지만 막상 가시적인 성과가 없다는 것이다. 한 야권 중진 의원은 “경제민주화에 대한 입법이나 정책 부분이 상당히 후퇴하고 있다”며 “(동반성장위 활동도) 정부의 의지 후퇴와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제남 의원 측은 그나마 가진 권한마저도 동반성장위 스스로가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동반성장위는 대기업이 불이행시 경고를 2번 줄 수 있고 이후에 다시 위반을 하면 중소기업청장에게 사업조정을 신청할 수 있다. 김 의원 측은 “동반성장위는 문제가 생기면 시정조치 하겠다고 하고 한 번도 대기업을 사업조정심의회에 올린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동반성장위 관계자는 “사업조정을 할 게 없어서 못한 거다. 사업조정신청은 중소기업적합업종을 대기업이 지키지 않았을 경우에 하는데 현재는 특별한 문제가 없다”며 “3년간의 조정 기간이 있는데 아직 합의해가는 과정 중에 있는 것을 가지고 문제가 된다고 판단하면 곤란하다”고 해명했다.
재계에서는 강제성 없는 동반성장위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동반성장위의 중소기업적합업종 선정은 ‘권고’ 개념이기 때문에 정치권에서 밀어주지 않는 이상 존재감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LG그룹 계열 아워홈은 올해 9월 두부적합업종 품목 제한 불이행 사례가 언론에 보도되자 동반성장위에 보낸 공문에서 “할인점 내 판매를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며 다시 판매할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가장 많이 지적되고 있는 강제성에 대해 동반성장위 측은 “우리는 원만한 합의를 유도하는 기관이다. 민주당에서 중소기업적합업종을 법제화하자는 말이 나오고 있는데 법이 능사는 아니라고 본다”며 “법제화하는 것은 말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법으로 만들면 오히려 대기업이 법을 피해가는 방향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 또한 정부가 개입하면 FTA(자유무역협정)나 WTO(세계무역기구) 등 통상마찰도 빚어질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한 대기업 관계자는 “MB 정권이 동반성장위를 밀어줄 때는 신경 썼을지 몰라도 이제는 아무도 동반성장위가 하는 일에 관심이 없다. 박근혜 정부에서 내놓은 대기업 정책 신경 쓰기도 바쁜데 정권이 끝난 동반성장위에 누가 관심을 갖겠느냐”고 반문하며 “요즘 동반성장위의 활동보다는 박근혜 정부의 기업투자정책에 다들 신경이 곤두서 있다”고 귀띔했다.
김다영 기자 lata13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