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쟁이’ 아가씨들이 연예계로 전파했다
이번 불법 도박 사건으로 이수근 탁재훈 토니안 등 정상급 예능 스타들이 불구속 기소됐다. 그나마 판돈이 적어 앤디 붐 양세형 등은 약식 기소됐지만 이들 역시 방송 활동을 한동안 쉬어야 할 처지가 됐다.
확인 결과 ‘맞대기’와 ‘불법 스포츠토토’가 가장 만연해 있는 곳이 바로 유흥업계였다. 이번 연예인 불법 도박 파동은 유흥업계의 유행이 연예계로 전파돼 벌어진 상황이라고 정리해도 무방할 정도다. 유흥업소의 중심은 역시 접대여성들이다. 물론 웨이터 등 남자 직원들도 있지만 유흥업소에는 접대여성의 수가 가장 많은 데다 비교적 큰돈을 만지는 것도 접대여성들이기 때문이다. 맞대기와 불법 스포츠토토 등의 도박의 중심 역시 접대여성들이라고 한다. ‘스포츠’를 매개로 하는 불법 도박에 왜 여성들이 빠져드는 것일까. 논현동 소재의 한 룸살롱 관계자의 설명이다.
“몰라서 그렇지 여기서 일하는 애들(접대여성) 가운데 축구 마니아가 꽤 있습니다. 남자들이 술자리에서 가장 많이 하는 얘기가 축구와 군대 얘기 아닙니까. 이 바닥에서 잘나가려면 손님들하고 해외 축구 얘기를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월드컵 때 새벽에 경기하면 가장 뜨거운 응원전이 벌어지는 데가 어딘 줄 아십니까? 바로 논현동 등 나가요촌 인근의 술집들입니다. 일 끝나고 퇴근길에 이쪽 애들이 몰려들어 미친 듯이 응원하거든요.”
이미 수년 전부터 유흥업계에선 스포츠 경기를 매개로 한 불법 도박이 성행해왔다. 업소마다 누구누구가 거기(불법 도박)에 빠져 있다고 서로 알 정도다. 이처럼 맞대기나 불법 스포츠 도박에 빠져 지내는 이들을 ‘토쟁이’라고 부른다. 삼성동 소재의 한 룸살롱 마담의 이야기다.
“여기 애들이 돈을 쉽게 벌어 쉽게 쓴다는 얘길 자주하는데 난 그런 얘기가 정말 싫다. 돈 잘 모아서 잘된 애들도 많다. 그래서 아무리 괜찮아 보여도 토쟁이라는 애들을 우리 가게로 데려오질 않는 편이었다. 몇 번 같이 일하다 토쟁이가 된 애들을 봤는데 한 번 빠지면 정말 무섭다. 손님한테 왜 아가씨가 더블 뛰냐는 항의가 들어왔는데 그때 걔는 그 룸에만 들어가 있었다. 알고 보니 틈틈이 나와 대기실에 가서 해외 축구 경기 생중계를 보고 있더라. 축구를 좋아해서이기도 하겠지만 수백만 원을 걸어 놨으니 정신이 온전하겠나?”
어떤 측면에서 예능 스타들이 맞대기와 불법 스포츠토토에 빠져든 것은 유흥업소 관계자들과 유사점이 많다. 둘 다 대기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직군이라는 점이다. 예능 프로그램은 한 시간 분량의 프로그램 녹화를 위해 5~6시간 이상 소요되는 경우가 많다. 방송 녹화 한두 시간 전에 도착해 메이크업 하고 대기실에서 머무르며 녹화가 시작된 뒤에도 쉬는 시간이면 대기실에서 시간을 보낸다. 무료한 대기실에서 휴대폰 문자를 활용한 불법 도박에 빠져든 것이다. 메이크업을 하고 대기실에서 손님들의 초이스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는 유흥업소 접대여성과 유사점이 많다. 처음엔 이런 게 있는데 재미있다며 동료의 소개를 받아 범법 행위라는 인식 없이 시작해 차츰 큰돈을 걸며 깊이 빠져드는 행태 역시 유사하다. 컴퓨터가 아닌 휴대폰을 활용해 맞대기가 이뤄지기 시작한 곳 역시 유흥업계다. 대기실에서 간단히 즐길 수 있도록 하려다 보니 휴대폰을 매개체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기실에서 휴대폰으로 손쉽게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은 예능계에서도 제대로 통했다. 다시 논현동 소재의 한 룸살롱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쪽은 인맥이 매우 복잡하고 꼬여 있는 동네입니다. 그래서 뭔가가 유행하면 어디서 시작된 것인지도 모르게 인맥을 타고 급격히 확산됩니다. 토쟁이들이 그렇게 급증한 것이죠. 그런 인맥의 한쪽에 이번에 걸린 연예인들한테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예전에 토쟁이들한데 이걸 연예인 누구누구도 한다는 얘길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쪽 브로커들이 그렇게 홍보하고 다닌 모양인데 아마 그때 이름이 나왔던 연예인들이 이번에 적발된 이들일 겁니다.”
유흥업계 관계자들은 맞대기와 불법 스포츠토토 등의 불법 스포츠 도박이 유흥업계에 훨씬 만연해 있으며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한다. 검찰이 앞으로도 이에 대한 지속적인 수사를 진행한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그 여파는 유흥업계에도 미칠 것으로 보이며, 유흥업계의 복잡한 인맥을 타고 또 다른 연예인들이 적발될 위험성도 적지 않다.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