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계좌’로 수사망 요리조리
검찰이 휴대전화를 이용한 ‘맞대기’ 도박과 불법 스포츠토토를 해온 연예인들을 무더기로 기소했다.
검찰이 연예인들을 대상으로 불법 도박 조사에 착수한 건 올해 1월부터다. 초기 수사를 통해 적발된 개그맨 김용만은 13억 원을 걸고 도박을 한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김용만으로 일단락된 줄로만 알았던 수사는 그 뒤에도 계속됐다. 맞대기와 불법 스포츠토토 사이트에 연예인들을 연결해준 브로커들이 검거되면서 수사는 급물살을 탄 것. 검찰은 브로커의 계좌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유명 연예인들의 이름을 발견했고, 해당 연예인의 주변인들부터 불러 조사를 시작했다.
검찰이 연예인의 불법 도박 사건을 내사 중이란 사실이 외부로 다시 알려진 건 지난 8월 15일로 김용만이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4개월이 지난 뒤다. 당시 혐의 대상에 올랐던 연예인 가운데 가수 A의 최측근이 검찰에 소환 조사를 받으면서 관련 내용이 연예계에도 서서히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또한 지난 10월 초에는 또 다른 연예인 B의 측근 C 씨가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브로커들의 계좌에서 C 씨가 수천만 원을 거래한 정황을 포착하고, 실제 도박에 참여한 인물은 C 씨가 아닌 그와 가까운 B라는 사실을 집중 추궁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연예인 측근들에 대한 줄소환이 이뤄지면서 연예계에서도 긴장이 퍼졌다. 그러다가 혐의를 받는 일부 연예인의 실명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검찰은 불법 도박이 연예계에 깊숙이 뿌리내린 것으로 보고 광범위한 수사를 진행해왔다. 그동안 연예인이 연루된 도박 사건은 몇 차례 있었지만 이번처럼 여러 명이 무더기로 적발된 건 처음이다. 검찰은 “이번 수사를 통해 스포츠 관련 불법 도박이 만연돼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도박 중독으로 인해 개인과 사회적인 병폐의 심각성에 주목해 각종 도박 사범에 대한 적극적인 단속을 벌여 엄벌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 이번 수사로 드러난 연예인들의 도박 베팅 액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앞서 10월 중순 불구속 기소된 개그맨 공기탁은 2008년부터 4년 동안 맞대기 도박에 무려 17억 9000만 원을 걸었다. 일반인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공기탁과 함께 불구속 기소된 이수근은 2008년 12월부터 2011년 6월까지 총 3억 7000만 원 상당의 판돈을 걸고 맞대기 도박에 참여했다. 토니안 역시 2009년 5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맞대기와 불법 스포츠토토 사이트에서 총 4억 원을 걸고 상습 도박을 해왔다. 탁재훈이 2008년 2월부터 2011년 4월까지 맞대기 도박에 쓴 돈 역시 2억 9000만 원에 달한다.
연예인들이 빠진 도박의 수법은 은밀하다. 도박장을 만든 업자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연예인에게 스포츠 경기를 지정해 베팅을 권유하는 이른바 ‘일 대 일’ 방식이다. 참여자들은 경기 시작하기 전까지 해당팀의 승 패 무를 정해 돈을 걸었다. 그 뒤 경기의 승패를 맞춘 경우에 따라 수수료 10%를 뺀 배당금이 참가자의 계좌로 송금되거나 도박장을 만든 브로커가 관리하는 차명 계좌로 금액을 송금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외부에 노출될 염려도, 여러 사람이 함께 참여해 얼굴이 알려질 걱정도 없는 탓에 연예인 사이에서 성행했다.
탁재훈과 이수근은 축구 모임에서 만난 브로커의 권유로 도박에 손을 댔다. 일요신문 DB
연예 병사로 복무했던 토니안과 앤디, 붐 역시 군대에서 친분을 쌓다가 브로커의 소개로 휴대전화를 이용한 도박을 시작한 것으로 확인됐다. 만약 연예 병사 제도가 폐지되지 않았더라면 또 한 번 국방부가 심한 몸살을 앓았을 수도 있는 사안이다. 연예 병사 제도가 폐지될 무렵 일부 연예 사병의 휴대폰 사용이 문제가 됐는데 이를 활용해 불법 도박까지 벌여왔다는 사실은 상당히 충격적이다.
이들 중 일부는 도박 사실을 감추기 위해 차명계좌를 활용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붐은 측근 명의로 두 개의 계좌를 따로 만들어 도박에 베팅하며 교묘하게 수사망을 빠져나갔다. 실제로 검찰 조사 결과 브로커가 담당한 도박 참가자의 수보다 계좌의 수가 10배 이상 많은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연예인들이 자주 도박에 빠지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분분하다. 그 가운데 ‘호기심’이 결국 ‘중독’으로 이어진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지닌다. 연예계의 한 관계자는 “동료 연예인이나 지인들과 어울리다가 편안한 분위기의 술자리 등에서 도박에 대한 이야기도 나눌 때가 있다”며 “처음엔 누가 얼마를 벌었다는 식으로 얘기가 시작돼 호기심에 몇 만 원 정도를 걸고 도박을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중독성 강한 도박은 한 번 빠지면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한다는 게 경험자들의 이야기다. 처음엔 몇 만원에서 몇 십만 원으로 ‘가볍게’ 즐기던 ‘놀이’에서 갈수록 판돈이 커지는 ‘도박’으로 이어질 때가 많다. 특히 이번에 적발된 불법 스포츠토토나 맞대기 도박은 휴대전화를 통해 쉽게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독성이 더 강하다. 해외 원정 도박의 경우 일부러 시간을 내야 하고, 주위의 ‘이목’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어 최근엔 연예인들이 꺼리고 있다. 반면 이수근, 탁재훈 등이 즐긴 맞대기 도박은 휴대전화를 통해 스포츠 경기의 승패만 맞히면 되는 데다 제3자의 계좌를 이용할 수 있는 ‘편의성’ 때문에 연예계에 뿌리내렸다.
이번에 적발된 연예인 가운데 유독 개그맨이 많은 점도 연예계의 눈길을 끈다. 관계자들은 기획사의 철저한 관리를 받는 배우나 가수 등에 비해 대중과 친숙하게 만날 기회가 많은 특성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의 특성상 방송 녹화를 위해 대기실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은 것도 한 이유가 됐다. 이때 휴대폰으로 불법 도박을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여러 통로를 통해 브로커와도 접하게 돼 도박의 위험에 쉽게 노출된다는 지적이다.
더욱 눈길을 끄는 부분은 이번 검찰의 수사 발표가 최종이 아니라 1차라는 점이다. 이번에 검찰은 1차로 6명의 연예인을 기소했지만 앞으로도 수사를 계속 이어갈 방침이다. 또 다른 연예인이 적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벌써부터 몇몇 연예인의 이름이 연예계에서 암암리에 거론되고 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