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산사에서도 월드컵 열풍은 뜨겁다. 조계종 최대 수행사찰인 해인사는 지난 5월26일부터 결제식을 갖고 여름 3개월간 수행에 정진하는 ‘하안거’에 들어갔다. 이 기간에는 외출을 삼가고 한 곳에 머물며 집중적인 수행에 몰두한다. 하지만 온 국민이 하나된 뜨거운 성원에 스님들도 예외일 순 없었다. 마침내 해인사는 지난 6월4일 한국팀의 첫 경기인 폴란드전 TV중계를 하안거에 들어간 선방 스님들도 시청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그런데 문제는 뜻하지 않은 곳에서 일어났다. 원로 스님들이 “하안거에 들어간 선방 스님들이 공부를 외면한 채 단체로 축구경기를 보는 것은 수행정신에 어긋난다”며 ‘죽비’(두 개의 대쪽을 합해 만든 불교 도구)를 들고 나선 것. 이에 따라 월드컵 단체 시청의 꿈은 날아가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스님들의 축구 열기를 완전히 막을 수 없었다. 해인사 현진 스님은 “원칙적으로 단체시청은 안되는 것으로 내부결정을 보았다. 하지만 비공식적으로는 TV를 시청할 수는 있다. 스님들의 염원을 막을 순 없었기 때문이다. 스님들은 TV가 있는 방에서 삼삼오오 모여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물론 큰소리로 응원은 할 수 없지만 요즘은 월드컵 열기에 푹 빠져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스님들은 하안거 동안에는 TV를 볼 시간이 없다고 한다. 하루 12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수행을 하기 때문에 다른 일은 거의 할 수가 없다는 것. 선실에 앉아서 말 그대로 ‘면벽수도’를 하기 때문이다.
현진 스님은 “한국경기가 있는 날이면 하루 정진시간도 12시간에서 6시간으로 줄어든다. 선방 스님 60여 명이 하안거에 몰두중인데 약 60% 정도는 한국경기를 본다. 그리고 해인사 전체 스님 2백50여 명 중에서 2백여 명이 TV 앞에서 ‘합장’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인사 스님들이 이렇게 축구 마니아가 된 데엔 나름의 까닭이 있다. 30여년 전 해인사 근처 가야산에 불이 크게 난 일이 있었다. 그런데 불을 끄던 스님들이 체력이 약해 결국 악전고투를 벌였다. 이것을 본 주지 스님이 해인사 스님들에게 체력을 키우려면 축구를 해야한다고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당시 성철 스님 등 큰스님들은 ‘절에서 무슨 축구냐’고 언짢아 했지만 팔만대장경이 산불에 휩싸이는 사태를 우려해 말리지는 않았다는 것.
그뒤부터 해인사는 해마다 팀을 나눠서 친선 축구경기를 벌이고 있다고 한다. 현진 스님은 “아마 전국 사찰 중에서 해인사 축구팀이 가장 강한 팀일 것”이라고 은근히 자랑하기도 했다.
또다른 이유도 있다. 해인사는 남성적인 기개와 웅장함이 넘치는 산세에 위치해 있다고 한다. 이런 곳에서 정진을 하고 있는 스님들도 자연히 대표적인 남성스포츠인 축구에 빠져들게 된다고 한다.
현진 스님은 한국팀의 계속되는 승전보에 대해 “전 국민의 염력이 뜨겁게 하나로 모인 당연한 결과”라고 분석하면서도 “너무 스포츠에 열광한다면 그 뒤의 허탈함과 공허감을 이기기 힘들 것이다. 자신들을 스스로 추스르면서 지혜로운 관람문화를 만드는 것도 부처님의 뜻”이라고 충고했다.
하지만 현진 스님은 “이번 월드컵은 국민통합의 계기가 되는 긍정적인 측면이 훨씬 강하다”며 “한국팀이 끝까지 선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님과의 통화 내내 멀리 해인사의 풍경소리까지 “대~한민국” 박자에 맞춰 딸랑거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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