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국정원 부메랑 맞는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임준선 기자
조 국장에게 신상정보를 넘겼다는 ‘지인’이 누구인지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런데 이 과정에서 조 국장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측근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조선일보>의 첫 보도 때부터 제기됐던 채 전 총장에 대한 뒷조사 의혹에 국정원이 엮이게 된 것이다. 애초부터 <조선일보>의 채 전 총장 관련 의혹 보도가 통상적인 언론의 취재로는 접근 불가능한 내용들이었다는 의혹이 제기돼 왔다. 이 때문에 조 국장의 진술은 그게 국정원인지는 불확실하지만 최소한 채 전 총장 뒷조사에 제3의 인물 또는 기관이 개입돼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인 셈이다. 물론 그 제3의 인물 또는 기관은 개인의 신상정보까지 손쉽게 파악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도 확인됐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또 하나의 중요한 포인트는 조 국장과 별개로 청와대 관계자의 요청으로 채 군의 가족부를 조회한 서초구청 감사담당관 임 아무개 과장이 곽상도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검찰에서 함께 근무했었다는 점이다. 임 과장은 지난 2003년 곽 전 수석이 부장검사로 있던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에 파견돼 일했다고 한다. 또 당시 특수3부에는 곽 전 수석이 강력히 추천해 청와대에 입성한 이중희 현 민정비서관도 속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공직기강 감찰을 맡고 있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채 전 총장 의혹 보도와 관련해 진위 파악에 나서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될 게 없고, 오히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채 전 총장 의혹이 <조선일보>에 처음 보도됐을 때부터 청와대와 국정원, <조선일보> 간의 ‘3각 커넥션’이 작동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조선일보> 보도가 현 정부 핵심세력의 ‘채동욱 찍어내기’의 결과물일 것이라는 의혹 제기였다.
특히 야당 일각에서는 곽 전 수석과 <조선일보> 간부 간의 커넥션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요컨대 그냥 확인 불가능한 의혹으로 덮어질 뻔했던 사안들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다시 한 번 조명을 받게 된 것이다. 아직은 검찰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인 만큼 섣부른 예단은 위험하다. 하지만 청와대와 국정원이 채 전 총장 의혹 사건에 엮이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박근혜 정부에 이미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검찰 수사 역시 당사자 통화내역 조회와 관계기관 압수수색 등 다방면으로 진행되고 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개인정보가 유출됐다고 보이는 부분, 유출된 정보가 보관됐던 곳들은 전반적으로 한 번씩 다 살펴보고 있다”고 전했다. 앞으로 어떤 새로운 사실들이 더 쏟아져 나올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검찰 소식에 정통한 한 인사는 “현직 검찰총장과 서울중앙지검장 등이 줄줄이 옷을 벗고 검찰 조직 전체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 상황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존재감을 입증해야 할 검찰로서는 이번 사건을 얼렁뚱땅 넘길 수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무리하게 채동욱 찍어내기에 나섰던 청와대와 국정원이 결국 부메랑을 맞게 된 것”이라는 야당의 주장이 헛말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