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 ‘묻지마 캐스팅’…비극의 씨앗
[일요신문] 사고로 인한 죽음을 기록한다는 건 비윤리적이면서도 불가항력적인 일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 촬영 현장은 긴장감으로 넘쳐야 한다. 왜냐하면 그곳은 끊임없이 카메라가 돌아가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액션과 스펙터클이라는 화려함 이면엔, 그러기에 항상 죽음을 기록하지 않기 위한 만반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빅 모로와 두 아역배우의 죽음은 할리우드 사상 가장 끔찍한 비극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카메라 앞에서 목숨을 잃었다. 1982년 7월 23일 캘리포니아 벤추라 카운티의 발렌시아에 있는 ‘인디언 듄’(Indian Dunes). 자정이 가까워오는 시간, 여기저기서 폭발음이 들렸고 화염이 공기를 가득 메웠으며 공중엔 헬리콥터가 떠 있었다. 옴니버스 영화인 <환상특급>(1983)의 촬영 현장이었다.
영화 <환상특급> 촬영 중 사망한 배우 빅 모로. 작은 사진은 <환상특급> 포스터.
네 개의 에피소드로 이뤄진 <환상특급>은 1950년대 TV 시리즈로 유명했던 컬트 클래식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 어릴 적 이 시리즈의 광적인 팬이었던 스티븐 스필버그는 영화화를 기획하면서 당시 떠오르는 신예였던 존 랜디스를 공동 프로듀서로 맞이했고, 그에게 프롤로그 에피소드와 또 하나의 에피소드를 맡겼다. 그가 시나리오를 쓴 ‘빌에게 생긴 일’ 에피소드는 판타지 장르와 사회성을 결합한 내용. 인종주의자인 빌 코너라는 남자는 유대인과 흑인과 아시아인에게 적개심을 품고 있는데, 그는 히틀러 시대의 유럽에서 나치에게 쫓기고, 19세기 미국 남부에서 KKK에게 쫓기며,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에게 쫓기는 상황에 처한다.
이 이야기에 대해 제작사인 워너 브러더스의 간부들은 찬반이 갈렸다. 제작 부문 부사장이었던 루시 피셔와 스튜디오 책임자였던 테리 시멜은 반대 의견을 펼쳤는데, 가장 큰 이유는 주인공이 너무 어둡고 부정적이라는 것. 이에 존 랜디스 감독은 주인공이 마지막에 베트남에서 두 명의 전쟁고아를 구한다는 설정을 집어넣었고, 이에 스튜디오에서도 오케이 사인을 냈다. 스필버그는 빌 코너 역에 빅 모로를 추천했다. 한국에도 <전투>나 <뿌리> 같은 TV 시리즈로 잘 알려진 빅 모로는 터프가이나 악당 역으로 유명한 연기자. 이젠 그가 구할 두 아시아계 아역배우만 구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전쟁터를 재현한 영화 현장은 꽤 위험했다. 랜디스 감독은 캐스팅 업체에 의뢰했지만, 에이전시는 두 아역배우가 대사가 없는 엑스트라이기에, 연기자 캐스팅에 관련된 캐스팅 업체를 거쳐 고용될 수 없다고 밝혔다. 위험한 장면이기에 혹시나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판단에서 빠져나가기 위한 변명을 둘러댄 것이었다.
이에 랜디스 감독은 데뷔 시절부터 호흡을 맞춰왔으며 <환상특급>에도 프로듀서로 참여하고 있던 조지 폴시에게 부탁했다. 폴시는 자신의 비서인 도나 슈먼의 남편, 해럴드 슈먼에게 전화했다. 의사인 슈먼은 종종 아시아계 사람들과 일했던 것. 슈먼은 과거 동료였던 피터 첸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고, 첸은 동생인 마크 첸에게 이야기를 했다. 마크에겐 여섯 살짜리 딸 레니 첸이 있었고, 아내와 상의 끝에 영화에 출연시키기로 결정했다. 어린 시절 작은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피터 첸은 또 다른 동료였던 다니엘 레에게 연락했다. 그는 아내와 상의했고, 카메라 앞에 서는 걸 좋아하는 일곱 살 난 아들 마이카 딘 레를 영화에 출연시키게 되었다.
빅 모로와 함께 숨진 아이들.
문제가 생겨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각서를 요구할 수도 있었지만, 랜디스는 워낙 위험한 촬영이라 부모가 그런 각서에 서명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는 두 아이를 급여 명단에 넣지 않기 위해, 즉 불법 고용의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개런티를 현금으로 지불했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세컨드 조감독이었던 앤더슨 하우스는 제작 과정을 총괄하는 프로덕션 매니저인 댄 앨링햄에게 두 아이의 캐스팅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었다. 하지만 앨링햄은 더 이상 그 문제를 이야기하지 말라며 입을 막았다. 당시 상황에 대해 앨링햄 밑에서 어시스턴트로 일했던 신시아 나이는 이렇게 회상한다. “랜디스 감독과 프로듀서 폴시와 앨링햄은 두 아이의 고용에 대해 회의를 했는데, 이때 폴시는 농담처럼 ‘설마 이 일로 우리가 감옥이야 가겠어?’라고 말했다.”
첫 촬영은 1982년 7월 22일에 있었다. 빅 모로가 헛간에 갇힌 아이들을 구해내는 장면이었다. 현장엔 레니의 부모와 마이카의 엄마가 있었다. 밤에 시작된 촬영은 그 다음 날인 7월 23일 새벽 3시 30분에 끝났고, 랜디스 감독은 양측에 각각 500달러를 건네며 집에서 쉰 후에 밤에 다시 나와 달라고 이야기했다. 빅 모로가 포화 속을 헤치고 강을 건너며 아이들을 구출하는, 클라이맥스 신을 찍기 위해서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촬영이 빅 모로와 두 아이의 마지막이 될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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