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열기 뺨치는 꿈나무들 경연장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한바연 바둑대회’가 지난 15일 200회를 맞았다. 사진은 관계자들의 200회 기념 촬영 모습.
한바연의 창설 멤버는 강준열(분당 중앙바둑학원 원장) 김종성(인천 영재바둑교실 원장) 어준수(광진 동그라미바둑교실 원장) 임항재(양천바둑도장 원장) 정우영(한국기원 수원지원장) 다섯 사람이었다(괄호 안은 당시 직함).
강 원장은 대한바둑협회 전무를 거쳐 지금은 초등연맹, 중-고연맹의 상임고문으로 여전히 어린이 청소년 바둑대회의 현장을 누비고 있고, 김 원장은 올해 작고했다. 어 원장과 임 원장은 그 시절 바둑교실 운영의 귀재 소리를 듣을 정도로 수완이 뛰어났던 사람들인데, 지금은 소식이 뜸하다. 정 원장은 수원 바둑의 터줏대감. 전국의 바둑인들이 “수원에는 정우영이 있다”고 말한다. 수십 년간 자원봉사로 바둑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경찰대 바둑부 출신은 전부 그의 제자다. 그의 지론은 또 “바둑보급에 가장 효과적인 것은 여성에게 바둑을 가르치는 것. 여성이 바둑을 두어야 바둑이 살고, 바둑계가 살며 가정이 산다”는 것. 수원의 여성 바둑인 대부분도 그의 제자다. ‘독수리 5형제’에서 ‘5인의 해병’이 되었던 위의 다섯 사람의 회고를 옮겨 본다. 강준열 고문이 대표로 마이크를 잡았다.
강준열 한바연 고문(왼쪽)과 박창규 경기도 바둑협회 부회장.
당시는 어린이 바둑대회도 별로 없어서 매달 열리는 한바연 대회는 금방 체계가 잡혔고, 바둑교실 어린이들의 실력 향상을 측정하는 바로미터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각 교실에서 잘 두는 아이들 8명씩 출전시키자고 했고, 대회 장소는 교실을 돌아가면서 했는데 1회부터 어린이 선수가 100명이 넘었고, 계속 빠른 속도로 늘어나 5회부터는 한국기원으로 옮겨야 했습니다. 그리고 9회부터는 신대방동 보라매공원에서 대회를 치렀습니다. 그 후에는 또 체육관, 88체육관, 잠실 체조경기장, 점점 평수를 넓혀가야 했어요…^^ 공원 대회, 체육관 대회도 한바연 대회가 시초인 셈이지요. 그렇게 하다 보니 벌써 20년이 지나갔고 200회가 되었습니다. 2005년 4월에 100회 대회라고 감격한 것도 엊그제 같은데….”
대회는 최강부와 기력별 1~10조, 11개 부문으로 치러지며 각조의 상위 8명과 하위 8명은 각각 위-아래 조로 올라가고 내려간다. 연속 3회 우승하면 졸업이다. 고등학생까지(외국인은 25세 이하) 출전할 수 있으며, 한국기원 연구생은 안 되고 지역 연구생은 가능하다.
최화길 한바연 회장(왼쪽)과 전세영 목사.
프로기사 입단대회를 통과하는 것보다 연구생이 되는 것, 1조에 들어가는 것이 어렵고, 연구생이 되는 것보다 ‘한바연’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이 어렵다는 것. 프로기사 공식대국보다 연구생 리그가 더 치열하다는 것, 이것도 현실이다.
‘한국중-고바둑연맹’이 출범할 때부터 회장을 맡아 지금까지 연임하면서 ‘한바연’ 대회를 이끌고 있는 최화길 회장은 언젠가 따로 소개하고 싶은 사람이다. 대기업 임원으로 잘나가다가 바둑으로 전향, 명일동에서 ‘강동 명인바둑도장’을 열더니 소신과 집념과 투자로 ‘청소년 바둑 교육’과 ‘바둑도장의 모델’을 제시했다. “한바연 대회가 200회를 맞게 된 것은 물론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 덕분이겠지요. 그러나 한마디로 하라면, 최 회장과 강 고문, 두 사람입니다. 한바연 대회를 끌어온 기관차였습니다.” 강 고문과는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인 ‘바둑 동네의 아나운서 실장’, 경기도 바둑협회 박창규 부회장의 말이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