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고 탈 많아도… 황금알 쑥쑥
왼쪽 위에서 시계 방향으로 김수현 작가의 <세번 결혼하는 여자>, 김은숙 작가의 <상속자들>, 임성한 작가의 <오로라 공주>.
2013년 대중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작가는 단연 임성한이었다. MBC 일일극 <오로라 공주>를 집필하고 있는 임성한 작가는 종잡을 수 없는 막장 코드로 대중의 관심과 지탄을 한 몸에 받았다.
작가 퇴출 운동도 무위로 그쳤고 MBC 역시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는 임 작가의 펜에 브레이크를 걸지 못했다. 임 작가는 최근 <오로라 공주>의 홈페이지에 “쓰는 입장에서, 객관성을 유지하려 노력했고 연출부 의견도 듣고, 심의실 의견도 수용했습니다. 부족한 점을 지적해주신 네티즌 여러분들께 고맙다는 인사드리고 기자 여러분들도 수고 많으셨습니다”라고 사과문을 게재했다. 하지만 드라마 속에 정작 대중과 언론의 입김이 작용한 부분은 찾아볼 수 없다. 마지막까지 임 작가는 자신의 의도대로 드라마를 끌고 갔다. 사과문의 진정성에 물음표가 달리는 이유다.
현재 방송 중인 SBS 주말극 <세 번 결혼하는 여자>를 집필하는 김수현 작가는 방송가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 중 한 명이다.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의 대본 리딩에 참석했던 천정명 한가인 김사랑 등은 줄줄이 하차했고 제작 일정이 지연되자 편성 시기를 2주 늦췄다.
한 외주 제작사 관계자는 “편성은 방송국과 시청자들의 약속이다. 때문에 편성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의 제작 지연으로 전작인 <결혼의 여신>이 4회 연장하는 등 편성에 변화가 생겼다. 김수현 작가이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귀띔했다.
드라마 연장 역시 작가의 허락 없이는 언감생심이다. SBS는 <주군의 태양>과 <상속자들>을 모두 연장하고 싶었으나 홍자매 작가와 김은숙 작가를 설득하지 못했다. 이들은 처음부터 ‘연장 불가’ 방침을 정했으며 SBS 역시 작가들의 이런 고집에 별다른 반기를 들지 못했다.
# 작가는 왜 힘이 셀까?
간단하다. 드라마는 ‘작가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생방송에 가까운 일정 속에 제작되는 드라마 환경 속에 PD가 연출의 묘를 부릴 여지는 많지 않다. 작가가 완성도 높은 대본을 써주면 충실히 영상화하는 것이 더 우선이다.
좋은 작가를 구하면 일단 지상파 편성은 떼어 놓은 당상이다. 업계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드라마 제작사는 40여 개. 하지만 지상파 편성을 받지 못하면 제 아무리 좋은 기획과 콘텐츠를 확보하고 있어도 무용지물이다. 드라마를 걸 곳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타 작가를 영입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지상파 방송사가 먼저 그들의 드라마를 편성하기 위해 뛰어든다. 아예 방송사가 직접 작가와 계약을 맺은 후 믿을 만한 외주 제작사에 제작을 맡기기도 한다.
스타 작가 확보는 스타 캐스팅으로 이어진다. 트렌디물의 대가라 불리는 김은숙 작가가 쓴 <상속자들>에는 요즘 대세라 불리는 배우들이 총집합했다. 수많은 캐릭터를 모두 부각시켜주는 김 작가의 필력을 믿기 때문이다. 장동건 현빈 하지원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김은숙 작가의 작품으로 브라운관 복귀를 결정한 것 또한 이를 방증한다.
홍자매 작가는 최근까지 소지섭 공유 공효진 이민정 등과 작업했고 <내조의 여왕>과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박지은 작가는 신작 <별에서 온 그대>를 집필하며 전지현과 김수현을 동시에 잡는 데 성공했다. 14년 만에 드라마에 복귀한 전지현은 “박지은 작가의 대본을 보면서 ‘왜 그동안 박지은 작가를 만나지 못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에 대한 믿음으로 선택했다”고 밝혔다.
김수현 문영남 임성한 작가 등은 그들의 작품에 출연하는 그들만의 ‘사단’을 거느린다. 배우들은 세 작가의 작품에 출연하며 비싼 개런티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작가를 전적으로 믿고 사실상 백의종군하는 셈이다.
외주 제작사에 허용되는 간접 광고를 통한 수익 역시 작가의 역량에 좌지우지된다. 일반적으로 드라마에서 필수적으로 노출되는 휴대폰 커피숍 자동차 등 간접 광고를 통해 20억~30억 원의 수익을 낼 수 있다. 심의에 걸리지 않도록 절묘하게 드라마 속에서 광고성 상품을 녹이는 것은 작가의 몫이다.
SBS 드라마국 관계자는 “믿음직한 작가 하나만 있으면 캐스팅을 비롯해 제작 전반이 수월하게 진행된다. 방송국 입장에서는 작가만 잘 관리해도 별 잡음 없이 드라마를 마칠 수 있다. 그러니 작가에게 힘을 실어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센 작가, 얼마면 되나?
임 작가를 둘러싼 논란 중 집필료는 ‘뜨거운 감자’였다. 연장 분량까지 포함하면 임 작가가 <오로라 공주>로만 50억 원의 고료를 챙긴다는 보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임 작가의 회당 개런티는 1800만 원선이다. 일일극은 주말극에 비해 방송 시간이 짧기 때문에 회당 집필료 역시 낮다. 하지만 일주일에 5일간 방송되기 때문에 매주 9000만 원을 챙기는 셈이다. 결과적으로는 150부까지 집필을 마치면 약 27억 원의 수익을 거둔다. 당초 알려진 50억 원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이 역시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이다.
김수현 작가는 종합편성채널 JTBC 40부작 드라마 <무자식 상팔자>를 집필하며 회당 1억 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어마어마한 거액을 안겼지만 덕분에 JTBC는 <무자식 상팔자>로 1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종편 최고 인기 프로그램을 보유하게 됐다. 이 외에도 <대장금> <선덕여왕> 등을 쓴 김영현 작가와 김은숙 작가, 홍자매 작가, 박지은 작가 등은 회당 5000만 원 안팎의 집필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스타 작가를 ‘모시려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원고를 쓸 수 있는 거처를 마련해주고 보조 작가까지 붙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 위치한 한 아파트는 유명 작가들의 작업실로 쓰이는 단골 장소다.
또 다른 외주 제작사 대표는 “이 아파트를 얻으려면 전세로는 4억~5억 원, 월세로는 매월 200만 원 이상을 감당해야 한다. 여기에 보조 작가의 월급과 작가 활동비까지 포함하면 집필료 외에 매월 500만 원 이상은 지출해야 한다”며 “그럼에도 스타 작가를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건 그만큼 수익을 내는 요술램프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