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 비행… 후퇴 거부… 사지서 ‘기적의 생환’
# ‘기적의 비행’
원산전투에서 폭격 임무를 수행한 케네스 셰크터. 지난달 향년 83세로 세상을 떠났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 캡처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3월 22일 미국 해군 소속 파일럿 케네스 셰크터 씨(Kenneth Schechter·83)로부터 긴급한 무전이 들려왔다. 캘리포니아대를 다니다 공군 소위로 임관한 셰크터 씨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한국으로 파견됐고 곧장 강원도 원산전투에 투입됐다. 그의 임무는 적의 물자 수송로를 끊어놓는 것. 그날도 셰크터 씨는 철도와 도로 폭격 임무를 띠고 비행을 하던 중이었다.
계획했던 15번의 폭격 중 9번째 폭탄을 떨어뜨리려는 그때 갑작스런 적군의 포격이 시작됐다. 셰크터 씨가 조종하던 ‘스카이 레이더’도 1200피트 상공에서 흔들렸고 전투기 내부에도 파편이 튀는 아찔한 상황이 벌어졌다. 문제는 그 다음. 뜨거운 불빛이 일더니 셰크터 씨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날아온 파편에 얼굴을 맞아 피범벅이 된 것이었다.
금방까지 보이던 맑은 하늘은 온데간데없고 희미한 불빛만 남아 한치 앞도 제대로 분간할 수 없게 됐다. 셰크터 씨와 함께 공격을 받은 다른 동료들은 본부의 지시에 따라 이미 전투기를 버리고 바다 위로 뛰어들고 있었다. 그 역시 비상탈출을 명받았으나 끝까지 어찌된 일인지 조종간을 놓지 않았다. 대신 함께 투입됐던 동료 하워드 테이어 씨를 찾았다. 편대비행을 하던 테이어 씨는 교신을 통해 앞이 보이지 않는 셰크터 씨를 안내했고 두 사람의 아슬아슬한 동행은 무려 45분 동안 이어졌다.
오로지 손 감각에 의지해 전투기를 조정하던 셰크터 씨는 다행히 미군 기지로 복귀하는 데 성공했으나 그의 부상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오른쪽 눈을 정통으로 관통한 파편으로 인해 일시적인 실명상태였으며 결국 며칠 지나지 않아 완전히 시력을 잃게 됐다. 한쪽 눈으로는 더 이상 전투기와 함께할 수 없는 운명임을 깨달은 셰크터 씨는 의병으로 전역할 수밖에 없었다.
예기치 않은 부상으로 군인의 꿈을 접어야 했던 셰크터 씨였지만 그의 마지막 비행은 영화로 제작될 만큼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감독 앤드루 마튼은 셰크터 씨를 포함해 당시 전우들의 실명을 그대로 사용해 할리우드 영화를 기획했다. 그 결과 1954년 영화 <멘 오브 더 파이팅 레이디>가 탄생했고 셰크터 씨는 ‘기적의 비행’이라는 평을 받으며 영웅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셰크터 씨의 여생은 결코 화려하지 않았다. 학업에 매진한 그는 스탠퍼드대에서 학사학위를 취득한 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까지 수료했다. 이후 보험사에서 근무하며 평범한 삶을 살다 1995년 6·25전쟁에서의 용맹한 활약을 인정받아 미 정부에서 수여하는 공군 수훈십자훈장을 받는 영광을 누렸다. 그러나 전쟁터에서의 기적을 보여준 셰크터 씨도 전립선암은 이기지 못해 지난달 11일 가족의 품에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 죽음 불사한 고지 사수
420고지 전투에 참여한 로돌포 에르난데스. 지난달 향년 82세로 눈을 감았다.
생사가 오가는 전쟁터였지만 에르난데스 씨의 용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박격포 포탄과 중화기 총알, 수류탄 파편에 쏟아지는 속에서도 그는 절대 자신의 자리를 떠나는 법이 없었다. 심지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해 결국 철수 명령이 떨어져도 개의치 않았다. 결국 전우들이 모두 떠난 420고지에는 에르난데스 씨만이 홀로 남았고 그는 소총이 작동하지 않을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런 에르난데스 씨의 모습은 바닥에 떨어진 동료들의 사기를 돋워 주기에 충분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용기에 감동한 소대원들이 철수 명령을 뒤로하고 총공격을 감행했고 곧 기적이 일어났다. 절대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던 고지를 다시 탈환하는 데 성공한 것. 모두가 기쁨에 얼싸안은 순간이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에르난데스 씨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누구보다 앞장서 적군 6명을 사살한 에르난데스 씨였으나 수류탄 공격을 피할 순 없었다. 순식간에 그의 바로 곁에서 수류탄이 터졌고 충격으로 의식을 잃은 에르난데스 씨는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죽음을 예상하는 순간 또 한 번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무려 30일 만에 눈을 뜬 것.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돌아간 에르난데스 씨는 1952년 4월 백악관에서 해리 트루먼 대통령으로부터 최고의 무공훈장인 ‘명예훈장’을 수여받았다.
이후 미국 보훈처에서 근무하던 에르난데스 씨는 1980년 은퇴를 하고도 여전히 한국을 잊지 못하다 2010년 6월 방한했다. 한국전쟁 60주년 행사 참석차 방한한 그의 모습은 ‘노병’이었지만 마음만은 그때 그 시절 못지않았을 터. 그렇게 마지막으로 한국 땅을 밟았던 에르난데스 씨는 지난달 21일 조용히 눈을 감았다. 6·25 전쟁 당시 유엔군 측 사망자 및 실종자는 4만 3000여 명, 부상자가 11만 5000여 명이었다. 먼 이국에서 진정한 용기와 희생정신을 보여준 전쟁영웅 2인의 죽음을 추모한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