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대통령 내외와 김혁규 전 경남지사가 지난 11월27일 부산 거제간 연결도로 기공식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김 전 지사의 우리당행 선언을 전후로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당내 영남권 인사들의 목소리와 높아지는 당의장 출마 열기를 놓고 당내 상당수 인사들은 청와대를 ‘컨트롤 타워’로 지목하고 있다. 일부 인사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당내 소장파 대신 영남권 인사들에게 노골적으로 힘을 실어주는 것 아니냐”고 말할 정도다.
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이광재 전 국정상황실장을 밀어낸 ‘천·신·정’(천정배 신기남 정동영 의원) 그룹이 주도하는 당권 레이스로는 내년 총선에서 승산이 없으며 노 대통령도 이를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밝힌다. 경륜이 있는 영남권 주자들에게 힘을 실어줌으로써 당을 장악하고 있는 ‘천·신·정’ 그룹에 대한 견제와 당권 레이스 흥행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이룰 수 있다는 것.
내년 1월11일 개최될 우리당 전당대회에선 대의원들의 1인2표제 직선 투표로 상임중앙위원 5명이 선출되고 최고득표자가 당의장직에 오른다. 또한 당의장 당선자가 2명의 상임중앙위원을 지명해 모두 7명이 집단지도체제를 이루게 된다. 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현재 당권 레이스에서 가장 앞서 있는 정동영 의원이 당의장직을 차지한다 해도, 힘을 받은 영남권 인사들이 지도부에 다수 포진하면 견제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설사 영남권 주자에 밀려 정 의원이 1등을 못하더라도 차세대 대권주자로 부각시키면 당내 스타인 정 의원에 흠집을 내지 않고 전국정당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당내 ‘동남풍 점화’는 청와대로선 전혀 손해 볼 게 없는 ‘경합 구도’라는 것이다.
우리당 인사들은 김혁규 전 지사의 탈당 전후 상황을 두고 청와대와 노 대통령을 ‘동남풍을 등지고 돛을 단 배’에 비유하기도 한다. 청와대와 당내 영남권 당권주자들 간의 교감이 청와대와 ‘천·신·정’그룹과의 관계를 뛰어넘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다.
가장 먼저 당의장 출마 선언을 한 김정길 전 장관측은 김 전 지사 탈당에 대해 “미리 연락을 받아서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의 대표적인 부산권 측근 인사로 꼽히는 조성래 변호사도 미리부터 전해들었음을 밝혔다. 이들 인사들은 “(김 전 지사 영입에) 노 대통령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고 전한다. 이들이 김 전 지사 탈당 소식을 미리부터 전해들은 곳이 어디인지 ‘집어서’ 이야기하지 않아도 미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김두관 전 장관은 아예 김 전 지사 영입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김 전 지사와 꾸준히 접촉하는 한편 김 전 지사 탈당 이전부터 지역 기자들에게 김 전 지사의 탈당 계획을 미리 흘려 ‘충격’을 완화시키기도 했다. 경남 지역에서 활동하는 한 언론인은 “김 전 장관이 김 전 지사 탈당소식을 흘리면서도 정확한 시점을 일러주지 않았고 탈당 이전 김 전 지사가 김 전 장관이 언급한 탈당설을 부인하는 등 미리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 인상을 풍겼다”며 “김 전 지사가 탈당한 뒤에야 두 사람간의 유대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김두관 전 장관은 노 대통령과 ‘코드가 가장 잘 맞는’ 인사로 각인돼 있다. 노 대통령이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그가 김혁규 전 지사 영입 선봉에 선 것 역시 동남풍 점화에 청와대가 적극적이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대구에서 활동중인 이강철 상임중앙위원과 부산창당준비위원장을 맡았던 조성래 변호사 같은 노 대통령 측근들의 최근 움직임도 ‘청와대=동남풍 진원지’ 공식의 신빙성을 높여준다는 지적이다. 이강철 위원은 김 전 지사 탈당 직후부터 김 전 지사와 수시로 접촉하며 그의 당의장 선거 출마를 공론화했다.
우리당 경남도지부 창당대회가 있던 지난 12월20일 이 위원은 당 공식행사에 참석하는 대신 김 전 지사를 찾아가 당의장 출마에 대한 설득 작업을 벌였다. 이날 저녁 김 전 지사는 측근들과 향후 입장에 대한 대책회의를 가졌다고 한다. 노 대통령이 ‘정치적 동지’로 표현한 이 위원이 아직 탈당 후유증을 씻어내지 못하고 있는 김 전 지사의 당의장 선거 운동을 ‘대신해주고’ 있는 셈이다.
우리당 안팎에서 일고 있는 ‘동남풍’과 관련해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영남권 주자들의 향후 행보다. 가장 먼저 당의장 출마 선언을 한 김정길 전 장관은 “통추 시절부터 노 대통령과 같은 정치 노선을 걸어왔고 문재인 민정수석 같은 청와대 참모진과도 유대 관계가 두텁다”며 자신감을 드러낸다.
노 대통령의 부산권 측근인사인 조성래 변호사가 지난 12월17일 김 전 장관의 부산 사무실을 찾은 점은 주목할 만하다. 두 사람은 지난 대선 때부터 노 대통령 뜻을 대변하는 부산 지역 대표주자임을 서로 자처하며 갈등을 빚어왔다. 그러나 김 전 장관 출마 선언 직후 조 변호사의 전격 방문으로 인해 두 사람간 갈등은 어느 정도 봉합된 분위기다. “천·신·정 그룹이 이광재 전 국정상황실장을 찍어낸 것 아닌가”라며 노 대통령과 참모진이 ‘천·신·정’ 그룹 대신 자신에게 전폭적 지지를 보낼 것으로 자신하는 김 전 장관은 내심 조 변호사의 협력도 ‘확신’하고 있다.
김두관 전 장관도 ‘노풍’을 등에 업고 당의장에 등극할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과거 노 대통령이 주도했던 지방자치연구소 출신들로 짜여진 지방자치개혁연대 공동대표를 지낸 김 전 장관은 “지방자치개혁연대가 전남지역을 중심으로 기반을 다져온 만큼 영호남 표를 결집해 정동영 의원을 이길 자신이 있다”고 밝힌다.
구 민주당 영남 대의원들의 지지를 기대하는 김태랑 전 의원도 민주당 분당 과정에서 신당 세력에 앞장선 유일한 영남권 중진임을 강조한다. 전 민주당 경남도지부장을 지낸 덕에 지역 대의원 확보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점이 ‘청와대 후광’을 기대케 한다는 것.
당내 일각에선 ‘청와대가 적극적으로 영남 후보들에 힘을 실어줘도 후보가 난립하는 탓에 결국 정동영 의원 등 ‘천·신·정’ 그룹에 당권을 내주게 될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부산 출신인 조성래 변호사도 “영남권 후보가 너무 많다. 일단은 정동영 의원이 유리하지 않겠나”라고 밝힐 정도다. 그러나 ‘지명도 높은 영남 후보들의 출마 러시는 영남권에서 열린우리당의 입지를 넓히는 초석이 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당내 정서다. 이런 측면에서 지금의 ‘동남풍 효과’는 청와대와 노 대통령의 표정을 더욱 밝게 해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