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4명 중 1명만 진짜 내 아이라고?”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자 의혹 등이 사회적 관심을 끌면서 유전자 검사 전문업체를 통한 ‘친자 확인’ 의뢰도 크게 늘었다고 한다. 사진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유전자 감식 장면으로 기사 내용과는 무관하다. 전영기 기자
그밖에 배우자의 불륜을 의심하는 글들도 눈에 띄었다. “아내가 바람을 피우는 것 같다. 바꾼 지 3일 된 이불을 빠는 것을 봤다. 이불을 보내면 타인의 DNA 검출이 가능하냐”는 문의부터 “아내가 내 속옷 때문에 불륜을 의심한다. 속옷을 보내서 나의 결백을 증명하고 싶다”는 남편도 있었다. 이에 업체 측 상담원은 답글에서 정액 반응 검사를 통해 아내의 의심에서 벗어나라고 제안했다. 이렇듯 배우자의 ‘속옷’을 보내겠다는 문의가 유난히 많았다.
의처증에 시달리는 딱한 아내도 있었다. 그녀는 “신생아 딸의 친자 확인을 하려 한다. 남편과도 합의했다”며 검사절차와 비용을 물었다. 글 말미에 “키트를 보낼 때 겉봉투에 회사 이름은 적지 말아 달라. 이곳은 시골이라 소문이 빠르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별다른 정당한 이유 없이 남편의 막내 여동생을 남편의 딸로 의심하는 의뢰자도 있었다. 이 여성의 남편은 30대 중반인데, 20세 어린 늦둥이 여동생이 아무래도 남편의 딸로 의심이 간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왜 그런 의문을 품게 됐는지 그 이유에 대해선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아버지가 어머니와의 이혼을 위해 자신의 유전자를 몰래 검사했는데, 친자로 나왔음에도 결과를 조작했다는 사연까지 있었다. 그는 “아버지가 어떤 죄로 처벌받게 되는지”를 물으며 걱정을 내비쳤다. 아기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음에도 친자확인 검사 가능 여부를 묻는 문의도 의외로 많았다. 현재 기술상 산모의 양수를 채취, 분석해 친자 여부를 가릴 수는 있으나 국내 생명윤리법상 태아 유전자 검사는 불법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기다릴 수 없는 사람들은 태아 검사가 허용된 외국의 검사기관에 의뢰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구강 상피세포 채취용 FTA 카드. 사진출처=FBI 홈페이지
업계 관계자의 말을 종합해 보면, 국적 회복을 포함한 법원제출용과 사적 확인용의 비율은 6 대 4 정도다. 아직은 중국교포의 의뢰 건수가 약간 더 높다고 한다. 동시에 재산 상속, 호적 정정을 목적으로 하는 친자 확인 및 부인 소송도 그만큼 증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소송으로 인한 법원제출용의 경우 로펌을 통해 의뢰가 들어오기도 한다. 업체마다 주거래 로펌이 있을 정도다. 중국교포가 물러난 자리를 친자확인 유전자 검사가 빠르게 채워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남성과 여성 중 누가 더 의뢰를 많이 할까. 복수의 관계자들은 이 물음에 공통적으로 “여성 의뢰자가 더 많다”고 답했다. 아이의 친부를 알 수가 없어서 답답한 마음에 친자확인 검사를 의뢰한다는 다소 충격적인 답변이었다. 실제로 업체 게시판을 훑어 봐도 남성보다 여성의 문의가 더 많음을 알 수 있다.
검체로는 모근을 가장 선호한다. 갓난아기나 대머리처럼 머리카락을 구할 수 없는 경우엔 FTA 카드를 이용해 구강상피세포를 채취한다. 그밖에 칫솔 손·발톱 담배꽁초 분첩 루즈 면도기 종이컵 씹던 껌 아이스크림 나무 막대 등 다양한 검체가 업체로 온다.
손·발톱 껌 담배꽁초의 경우 DNA 검출률이 90% 이상으로 매우 높다. 칫솔은 세척 정도와 사용습관, 곰팡이 오염 가능성 등으로 인해 검출률이 50%로 비교적 낮은 편이다. 머리카락이나 구강 상피세포에 비하면 이러한 특수검체들은 비용이 비싸고 결과도 3~4일 정도로 오래 걸리는 단점이 있다.
칫솔은 곰팡이 오염 가능성 등으로 DNA 검출률이 50%에 불과하다. 전영기 기자
그러나 유전자 검사라고 해서 항상 친자 여부를 정확하게 판별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보통 15개 유전자를 대조검사 하는데, 이중 3개 이상이 불일치하면 친자가 아니다. 1~2개가 불일치하면 타 유전자 10∼15개 정도를 추가로 비교하는 추가 검사를 한다. 1000명 중 한두 명꼴로 3차 검사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이때 ‘돌연변이’에 의한 불일치 가능성 여부를 해석하면서 ‘오류’가 생길 수도 있다. 즉 검사기관에 따라 서로 다른 해석을 내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검사 결과를 믿지 못하고 항의하는 의뢰자도 적지 않다. 항의를 하고 잠잠하다가 몇 달 후 다시 항의하며 괴롭히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예민하고 은밀한 검사이다 보니 의뢰자의 이름이나 생년월일 오타에 불같이 화를 내기도 한다.
앞서의 연구원에 의하면, 검사 결과를 부정하면서 계속해서 다른 검체를 가져다주는 의뢰자도 있었다고 한다. 이 여성 의뢰자는 머리카락 손톱 담배꽁초 등을 차례로 보내며 “내 아버지가 아니다”라는 주장만 반복했다고 한다. 결과는 늘 ‘A와 B는 부녀관계 성립’이었다.
4명의 자녀 중 1명만 친자로 밝혀진 경우도 있었다. 당시 의뢰자는 처음에 2명의 자녀를 의뢰했는데 그 중 한 아이만 친자로 밝혀졌다. 충격에 빠진 의뢰자가 직후에 2명을 더 의뢰했는데, 둘 다 친자가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물론 이런 불륜 관련 문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업체 게시판을 살펴보면, 한우 판별, 암 치매 왜소증 유전 여부 검사 등을 문의하기도 한다. 외국에서 낳은 아이를 한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정부에 제출하는 유전자 검사 서류 문의를 하는 아버지도 있다. 조상의 묘가 천재지변으로 유실돼 타 유골과 섞였다며 유골 감식을 의뢰하거나 “유전공학자가 꿈”이라며 “연구원과 메일을 통해 교류하고 싶다”는 야무진 10대 고등학생도 있다.
그는 “검사기관에서 4년간 근무하면서 산부인과에서 아이가 바뀐 것을 바로 잡아준 적이 3번 있었다”고 말했다. 부모가 자신들을 닮지 않은 아이에 대해 의문을 갖다가 검사를 통해 불일치 판정을 받고 산부인과의 실수로 아이가 바뀐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어릴 적 잃어버린 아들을 찾아준 적도 있다. 한 중년 여성이 젊은 남자와 함께 찾아왔는데, 검사 결과 친자 관계가 성립했다. 두 사람은 동네 음식점에서 우연히 만나 대화를 나누다 공통된 경험을 발견하고 유전자 검사를 실시, 20년 만에 서로를 찾을 수 있었다. 같은 동네에 살면서도 서로의 존재를 까맣게 몰랐다가 되찾게 된 기적 같은 일이었다.
그러나 각종 규제와 치열한 내부경쟁으로 인해 ‘제살 깎아먹기’ 식이 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생명윤리법 제정 이후로 각종 규제가 강화됐다”며 “질병관리 서비스 등은 할 수 없고 혈연관계 확인 검사만 허락해준 상태다. 특정 질병인자 보유 여부 판단의 경우 매우 유망한 분야인데도 연구만 하도록 법으로 묶어 놨다. 공청회를 열기도 하지만 특정한 가이드라인이 없다. 기준을 정하는 데만 몇 년이 소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러다 보니 업계는 ‘친자확인’ 검사에만 매달리는 구조로 굳어질 수밖에 없다. 연구에만 머물지 않고 비즈니스가 될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정부의 역할이다. 그래야만 연구가 더욱 발전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상미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