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간 털려도 ‘쉬쉬’ ‘왜 그런가 했더니…’
지난해 11월 열린 스마트카 분야 산업부 R&D 과제 정보교류회.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사진출처=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홈페이지
이는 실로 심각한 문제다. 예산의 책정과 집행의 기본 원리는 적재적소와 투명성에 있다. 하지만 업계 내부에서는 앞서의 교수가 지적했듯 이미 오래 전부터 학맥을 중심으로 형성된 ‘과학기술권력’의 견고한 카르텔 아래 국가 예산이 새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카르텔 속에서 자신들의 테두리에 있는 일부 세력에게만 예산이 집중되거나 중복되고, 그 집행 과정 속에서 발생하는 금전적 사고에 대해서는 솜방망이 처벌이나 아예 눈을 감아준다는 것이다.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되지만, 결국 견고한 ‘그들만의 리그’ 속에서 혈세가 빠져나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국가R&D예산이 투입되는 국책 연구기관의 인적 구성원들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일요신문>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이진복 새누리당 의원실로부터 R&D예산 집행에 있어서 큰 몫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산업기술연구원 산하 14개 국책 연구기관 책임연구원 1821명의 최종학력 분포도 및 세부 데이터 자료를 입수했다. 2012년 국정감사 당시 통계로 당해연도 하반기를 기준으로 하는 이 자료는 국가R&D예산을 집행하는 전체 연구기관 중 일부라 할 수 있지만, 집행 예산 규모면에서 업계의 대표성을 띤다.
산하 기관들을 살펴보면, 안전성평가연구소는 전체 책임연구원 16명 중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7명이 SKY 출신이었으며,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전체 124명 중 38%에 해당하는 48명이 SKY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식품연구원 역시 SKY 출신 연구자가 전체의 28%를 차지했다.
유독 KAIST 출신 연구자가 두드러진 곳도 많았다. 한국기계연구원의 경우 전체 147명 중 34%에 해당하는 50명이 KAIST 출신이었고, 한국화학연구원과 재료연구소 역시 KAIST 출신 연구자가 각각 전체의 22%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학맥 쏠림 현상은 곧 국내 기술마피아의 강력한 카르텔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R&D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쪽 역시 법조계만큼이나 학교 선후배 관계가 무척 중요하다. 어쩌면, 상대적으로 여론의 관심이 덜한 분야이기에 유대관계가 더 끈끈하게 작용한다고 본다”며 “특정 기관의 연구비를 수주하는데 있어서, 해당 기관장 출신 학교 연구인들이 보다 유리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실례로 서울대 출신이자 한 대학 교수인 A 씨는 서울대 출신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B 연구기관의 비상임이사를 맡고 있었다. 그런데 A 교수는 자신이 비상임이사로 있는 연구기관의 연구비를 무려 네 차례 연속으로 수주한 사실이 최근 감사를 통해 적발됐다. 비상임이사는 해당 기관의 인사·보수·조직은 물론 예산 집행의 의결사안에 참여한다. A 교수는 자기가 집행한 예산을 자기가 쓴 셈이다. 그것도 어떠한 제지도 없이 수차례에 걸쳐서. 분명 의혹이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해 9월 지역순회컨설팅 및 R&D 수행기관 간담회 모습.
앞서의 업계 관계자는 “예산을 집행하고 수주하는 상·하 연구기관들은 모두 학맥으로 이어진 관계다. 언제 어떤 식으로 인사이동을 할지 모르는 가운데 강력한 처벌이 어디 가능이나 하겠느냐”고 반문하며 “아마도 외부에 드러나지 않고 내부에서 눈감아준 비리 건수들은 더욱 많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예컨대 ‘기술 사기’가 사실로 드러났음에도 집행된 혈세 92억 원에 대한 환수조치가 무산된 SMPD(나노 이미지 센서) 사건 역시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 업계 내부의 시각이다. 전자부품연구원에 대해 환수조치를 취한 산기평의 연구진실성 조사에서 연구부정 판단의 증거가 있었음에도 봐주기 차원의 모호한 결과를 내놔 환수조치 무산을 부추겼다는 해석이다. 실제 두 연구기관은 지난 몇 년간 몇몇 책임자를 포함해 수시로 인사이동이 있어왔다.
물론 이러한 외부의 시선에 대해 현업 연구자들은 지나친 확대 해석을 경계하는 입장이었다. 서울대 출신의 한 국책 연구기관 소속 인사는 “물론 학맥 자체가 연구기관 내부에서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다는 것에 대해선 부정하지 않겠다. 하지만 이는 어떤 분야나 마찬가지로 현실적인 현상”이라며 “연구기관 전체로 보면, 아예 특정 학교 특정 학과가 장악하고 있는 원자력 분야보다는 인적 구성이 훨씬 다양하다. 최근에는 내부 차원에서 예산 집행을 포함해 연구 윤리에 대한 교육이 강화되고 있다. 외부에서 우려하고 있는 것만큼 심각한 사안은 아니라고 본다”고 반박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