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직기간 동안 골프를 치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용섭 국세청장. 이종현 기자 | ||
새정부의 개혁 드라이브가 시작되면서 골프가 다시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 직후에도 골프 연습장을 찾았고 최근 여야 대표와 청남대에서 골프회동을 갖는 등 골프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최고 통치권자의 눈치를 보아가며 골프를 쳐야했던 고위직 공무원이나 기업체 골프 애호광들로선 박수라도 쳐주고 싶은 대목이었다. 하지만 기업인의 목줄을 바짝 죄고 있는 이용섭 국세청장은 정반대의 선언을 했다.
지난 4월10일 이용섭 국세청장은 아침 간부회의 시간에 “재임기간중 골프를 일체 하지 않겠다”고 공개선언한 것.
이어 그는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지난해 국내기업의 접대비용은 4조7천억원으로 지난 99년의 2조7천억원보다 74.1% 증가했다”면서 이중 룸살롱과 골프장에서 쓰인 접대비는 39%인 1조8천3백30억원이라고 밝혔다.
액수로만 따지면 국내 10대 재벌의 간판 계열사급의 매출을 올리는 실로 엄청난 규모가 ‘유흥비’로 사용되는 셈이다.
그래서일까. 이 청장은 이어 폭탄 발언을 했다. “앞으로 부처간 협의를 거쳐 룸살롱과 골프장 접대비를 비용으로 인정하지 않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한 것.
그러자 기업체에서는 당장 난리가 났다. 기업체가 제일 무서워 하는 곳이 세무서이기 때문이다. 세무서에서 골프를 통해 ‘사회 기강’을 바로 잡겠다고 하니 긴장을 안할 수 없는 것. 게다가 골프 접대비를 세금 계산에서 경비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하니 기업으론 2중의 타격일 수밖에 없는 것.
문제는 최고통치자인 노 대통령의 골프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와 국세청장의 골프 엄금령이 서로 상충한다는 점이다.
▲ 지난 4월17일 청남대에서 여야대표들과 골프회동을 가진 노무현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 ||
국세청이 골프 접대비의 경비 인정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할 경우 기업들이 갖고 있는 법인용 골프장 회원권이 매물로 쏟아져 나올 것이란 얘기가 파다했다.
일부에선 한 회사가 수백 장의 회원권을 매물로 내놨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하지만 ‘대량의 골프 회원권 매물 출하→회원권 값 폭락’은 아직 시나리오일 뿐 사실로 확인되지는 않고 있다.
그렇지만 분위기는 뒤숭숭한 편.
이에 대해 골프포털사이트를 운영하는 박성훈 대표는 “국세청의 입장 발표 이후에도 회원권 시장에서 이렇다할 움직임이 없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IMF 때 반값으로 하락했던 회원권도 최근에는 원래 가격 이상으로 회복되는 등 시장을 흔들 만한 상황 변화는 없다는 것.
에이스회원권거래소의 송용권 팀장은 “국세청의 방침이 사주의 접대비 전용을 규제하려는 것이지 골프 자체를 금지시키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풀이했다. 현재도 기업에서 쓰는 골프 비용은 세법에서 인정하는 접대비 범위를 훨씬 넘고 있다는 것. 때문에 실제로 국세청이 골프 접대비의 비용 인정 범위를 축소한다고 해서 기업체가 입을 타격은 크지 않다는 얘기다.
송 팀장은 국세청의 방침과 관련해 시장에 미친 영향은 “회원권을 사려는 쪽에서 그게 뭐냐며 약간 찜찜해하는 정도”라고 전했다. 정부쪽의 골프에 대한 인식이 분명치 않아 석연치 않아 하는 정도라는 것.
최근 국내 골프장들의 영업 현황도 국세청의 방침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 듯하다.
골프장 부족으로 주중에나 좀 한가했던 국내 골프장들이 최근에는 주중에도 골퍼들로 꽉꽉 채워지고 있다. 동남아 원정골프를 즐겼던 해외파 골프족까지 사스의 영향으로 국내 골프장으로 몰려들고 있다는 것. 국내 골프장들이 이런 만성 공급 부족 상태이기 때문에 국세청의 골프 접대비 불인정 발언으로 기업들이 골프회원권을 대거 매각해도 회원권 가격에는 큰 변동이 없을 것이란 얘기다.
다만 공직 투명성과 관련해 고위직 공무원들이 기업체 사람들과 골프를 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이 국세청장 본인이 자신의 월급으로 골프 치는 것이 어렵다고 말한 이상 물려받은 재산이 많은 공무원을 빼고는 골프를 친다고 공개적으로 말하기가 불가능해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