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주고 어딜 받을까’ 속으로 계산중
안철수 의원 측의 ‘선 긋기’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선 벌써부터 야권 단일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형국이다.
신당은 오는 6·4 지방선거에서 대중으로부터 그들만의 정치적 실험에 대해 냉엄한 평가를 받게 된다. 헌정 이래 제3정당의 출현은 많았지만, 제대로 제도권에 안착한 정당은 사실상 없었다. 가능성을 보여준 지역정당들마저도 얼마 가지 않아 기존 정당에 흡수되거나 간판을 내리는 일이 반복됐다. 심지어 민주당에서 분당한 열린우리당 역시 총선에서 대승을 거뒀음에도 제도권 안착에는 실패했다. 그런 의미에서 신당의 실험은 대중으로 하여금 새정치에 대한 기대감을 부풀게 하기에 충분하지만, 고난의 길이자 대모험인 셈이다.
정치권에선 이미 신당과 민주당의 샅바싸움이 시작됐다고 보고 있다. 신당도 신당이지만, 민주당 지도부 역시 내부 후보자들과 출마가 예상되는 신당의 후보들 간 경쟁력을 두고 여러모로 계산에 들어간 상황이다.
야권에선 벌써 야권 단일화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는 형국이다. 재선에 도전하는 민주당 소속의 최문순 강원지사는 최근 한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신당이 지향하는 바는 ‘새정치’지만 결과적으로는 야권분열을 일으켜 큰 패배로 귀결될 것”이라며 “현실정치에 들어가면 신당의 파괴력은 지금보다는 현저히 줄어들 것”이라고 후보단일화 필요성에 대해 적극적으로 역설했다.
일단 안철수 진영은 수차례에 걸쳐 민주당 후보와의 단일화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드러냈다. 안철수 의원은 지난해부터 이미 공식 석상에서 “지방선거를 겨냥한 야권연대는 없을 것”이라고 선을 긋고 있으며, 윤여준 새정추 공동의장 역시 1월 21일, “17개 광역단체장 선거에 후보자를 다 낼 생각”이라고 독자론을 분명히 했다.
신당이 이렇게 단일화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섣부른 단일화가 신당 입장에선 ‘독이 든 성배’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 정치컨설턴트 이재관 마레커뮤니케이션 대표는 “현재로서는 안철수 의원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다. 독자론과 연대론의 판단은 결국 안철수에게 달려있다”며 “다만 새정치를 표방하고 있는 신당 입장에서 단일화는 자칫 모양새를 더럽힐 수 있다. 앞서 정치개혁을 표방하고 나온 문국현 전 의원의 창조한국당의 경우 제도권에 들어와 기존 정당과의 교섭단체 구성에 나서는 등 구태정치를 반복하다 무너진 바 있다. 신당도 자칫 이 절차를 밟을 수 있다.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지난 27일 새정치추진위원회 청년위원회 해오름식에 청년위원회 회장이 된 안철수 의원과 윤여준 새정추 위원장이 참석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하지만 선거는 곧 결과다. 만약 신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안철수 의원의 정치 실험은 회복불능의 큰 타격을 받게 된다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 신당 입장에서 단일화 카드는 독배지만 최후의 순간 ‘필요악’일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신당 입장에서도 의미가 중요하지만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적극적 단일화는 아닐지라도 소극적 단일화 협상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분석이다. 김대진 대표는 “여론조사를 동원하는 인위적 형태의 단일화는 아마도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다만 비공식적 협상을 통해 한 쪽 후보가 출마를 포기하는 형태의 소극적 단일화는 충분히 가능하다. 결과는 분명 후보 단일화지만, 형태와 모양새는 대승적 결단으로 포장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재관 대표 역시 “만약 민주당이 비공식 라인을 통해 단일화에 대한 확실한 카드를 보여준다면, 신당 입장에서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마음 급한 민주당이 수도권 사수를 위해 선거 직전 호남 세 곳 중 한 곳을 양보하는 카드를 들이미는 것이다. 그러면 신당도 현실을 고려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라며 “다만 지역 나눠 먹기식의 기계적 단일화라는 오명을 얻을 수 있다. 이는 신당에서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 판단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최근 안철수 의원이 ‘서울시장 양보론’을 피력한 이유가 결국 민주당으로부터 호남 한 곳을 양보받기 위한 포석이란 얘기도 나온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신당 입장에서 안철수 본인 외에 박원순 시장과 대적할 후보를 찾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훗날 민주당과 만에 하나 단일화 협상에 나설 경우, 호남 한 곳을 양보받기 위한 포석이 깔려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신당이 고려해야 할 또 다른 문제는 역시 ‘책임론’이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아무리 신당이 높은 지지율을 이어가고 있다고 해도 분명 기존 정당이 가진 프리미엄이라는 게 있다. 그것이 책임론”이라며 “만약 야권 단일화가 무산돼 여권에 지역을 넘겨준다면, 그 책임은 신당에게 더 무겁게 전가될 것이다. 민주당 입장에선 선거 막판까지 이 ‘책임론’으로 신당을 압박할 수밖에 없고 신당 입장에선 그것을 이겨내는 것이 관건이다. 지난 대선 안철수 의원이 돌을 던진 것도 이 책임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