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 내치고 ‘문어발’ 솎아낸다
황창규 KT 회장(왼쪽)과 권오준 포스코 회장 내정자. KT는 인적 구조조정과 조직개편을 통해 몸집을 줄이고 포스코는 계열사를 줄여 방만해진 경영을 개선하겠다는 방침이다. 연합뉴스
황 회장 선임과 함께 단행된 KT 임원 인사의 특징은 ‘외부 인사 배제, 내부 출신 중용’이다. 그런데 속내를 뜯어보면 ‘이석채 체제 청산’으로 규정할 수 있다. 황 회장은 이번 인사를 통해 임원 수를 줄이고 일부 부문장의 직급을 강등시켰다. 이 전 회장은 2009년 KT 회장(당시 사장 직급)으로 선임된 후 끊임없는 외부 인사 영입을 통해 임원 수를 늘렸으며 영입한 외부 인사를 초고속 승진시키고 자리를 마련, 일부 부문장의 직급이 높아졌다. 황 회장은 이를 ‘원상태’로 돌려놓은 것이다.
가장 극명한 예는 이석채 전 회장 때 승승장구했던 사람들, 즉 ‘올레KT’라 불리는 사람들을 내치고 ‘원래KT’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다. 이 전 회장 재임 시절 2인자로 통했고 회장직무대행을 하며 차기 회장 물망에도 올랐던 표현명 사장, 이 전 회장이 영입한 인물이자 이 전 회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졌던 김홍진 글로벌&엔터프라이즈 부문장, 김일영 코퍼레이트센터장이 모두 이번 인사에서 배제돼 짐을 싸게 됐다.
또 이 전 회장 재임 시절 내내 ‘낙하산 인사’라는 구설에 올랐던 인물들, 즉 송정희 서비스이노베이션부문장(부사장), 오세현 코퍼레이션센터 신사업전략담당 전무, 김은혜 커뮤니케이션실장(전무) 등도 전부 회사를 떠나게 됐다. 대신 이들에 밀려났던 것으로 알려진 임헌문 커스터머부문장(부사장), 한훈 경영기획부문장(부사장) 등을 다시 KT로 불러들였다. 이 같은 임원 인사는 이 전 회장 시절 문제가 됐던 KT의 지나친 인건비와 비용을 약 200억 원 절감하는 효과도 볼 것으로 예상된다.
인사뿐 아니다. 사업 면에서도 황 회장은 KT의 ‘본업’인 통신부문에 주력할 뜻을 내비쳐 비통신부문을 강화하고자 했던 이 전 회장과 다른 길을 추구했다. 회장 선임 이튿날인 28일 첫 출근한 황 회장은 긴급 임원회의를 소집, 비상경영을 선포하며 현재 KT가 처한 위기를 극복할 것을 다짐했다. 같은 날 KT는 4분기 실적을 발표, 1494억 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해 적자전환 사실을 알렸다. 지난해 전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27.7% 감소한 8739억 원에 그쳤다.
한편 새로운 회장을 맞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는 포스코 역시 구조조정이 예고돼 있다. KT와 달리 포스코는 내부 출신 권오준 내정자가 회장 선임을 앞두고 있지만 구조조정의 큰 틀이 전임 회장이 한 일을 뒤집는다는 면에서는 비슷하다.
이석채 전 회장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됐던 것이 ‘낙하산 인사’로 대변되는 다수의 외부 인사 영입이었다면 정준양 회장의 가장 큰 문제는 문어발식 확장이었다. 대우인터내셔널, 성진지오텍 등 크고 작은 M&A(인수·합병)를 통해 포스코의 몸집을 불렸다. 정 회장 취임 당시인 2009년 36개였던 포스코 계열사는 2012년 한때 70개가 넘기도 했다. 이 가운데는 인수 적절성에서 의심되는 것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정 회장은 이 전 회장처럼 외부 인사 영입에는 큰 탈이 없었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정 회장의 무한확장은 포스코의 재무건전성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국제신용등급도 매년 하락하는 굴욕을 겪었다. 인수한 기업의 실적이 신통치 못했던 것도 타격이었다.
뒤늦게 계열사들을 정리, 지난해 50여 개로 줄였지만 이마저도 권오준 내정자에게는 많아 보이는 듯하다. 권 내정자는 회장 최종 후보로 내정되기 전 CEO(최고경영자)후보추천위원회 면접에서 불필요한 계열사를 줄이고 재무건전성을 강화하는 것이 포스코의 경쟁력 강화 방안이라고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계열사 정리를 맘먹고 있다는 의미다.
포스코 역시 KT와 마찬가지로 지난해 실적이 저조했다. 지난 1월 28일 발표한 포스코의 지난해 실적을 보면 매출액 61조 8646억 원, 영업이익 2조 9961억 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각각 2.7%, 18% 감소했다. 당기순이익은 무려 43.2% 줄어든 1조 3550억 원을 기록했다. 포스코 역시 체질개선이 절실한 때다.
두 신임 회장의 공통점은 ‘본연에 충실하겠다’는 것이다. 황 회장은 KT의 핵심인 통신사업의 경쟁력이 훼손된 것을 우려하며 가시적 성과가 부재한 비통신 분야보다 통신 분야에 집중할 뜻을 내비쳤다. 권 내정자 역시 계열사를 정리하고 포스코의 핵심인 철강 분야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복안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통신 분야 사업에서 수익을 찾았던 이석채 전 회장이나 비철강 분야 사업을 확장하려던 정준양 회장과 반대되는 입장이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