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훈풍’ 진원지 ‘광풍’ 될라 우려도
부동산 매매시장 훈풍의 진원지 역할을 하고 있는 강남 개포동 주공아파트 단지. 구윤성 기자
강남 재건축시장이 연초 들어 회생의 기미를 보이는 이유는 각종 규제완화에 따른 기대감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제도 폐지다. 재건축시장은 실수요자보다 투자수요가 많이 몰리는데, 이들은 보통 유주택자들이어서 매매 이후 양도 시 집값 상승에 따라 최대 50%까지 내야 하는 양도세 중과가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 중과제도가 아예 폐지되고 일반세율(6~38%)로 바뀌면서 심리적 부담감이 크게 줄었다.
정부가 1년씩 유예하는 방식으로 세 부담을 완화해온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제도를 아예 폐지한 이유는 시장에 이 같은 투자수요를 늘리기 위한 유인책이다. 박상언 유앤알컨설팅 대표는 “투자수요는 시장이 움직이도록 하는 일종의 윤활유와도 같다”며 “기름칠을 해서라도 부동산거래시장이 활기를 띠도록 하겠다는 일종의 시그널”이라고 분석했다.
도시정비사업에 대한 규제완화도 연초 시장을 움직이는 데 한몫했다. 정부는 올 들어 재개발·재건축 용적률을 법정 상한선인 최대 300%까지 허용키로 했다. 또 임대주택 공급비율을 지방자치단체 자율로 정할 수 있도록 했고, 중대형 아파트를 가진 조합원이 중소형 두 채를 분양받을 수 있도록 하는 ‘조합원 1+1 분양’도 가능해졌다. 그만큼 일반분양 물량이 늘어 사업성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도를 유예한 것도 사업 추진이 빨라진 이유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올 연말까지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재건축사업장에 대해서는 조합원의 개발에 따른 초과이익 부담금을 면제해주는 한시적 방안을 쓰고 있다. 이로 인해 올해 강남권 재건축 추진 단지들은 어떻게든 관리처분인가를 받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실제로 강남구 개포동 주공아파트 재건축 단지들과 대치동 쌍용아파트, 강동구 고덕단지들이 올해 안에 관리처분총회를 거쳐 이주까지 진행하기 위해 잰걸음을 하고 있다. 박합수 국민은행 부동산팀장은 “올해 부동산시장은 재건축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며 “많은 재건축 추진 단지들이 올해 규제완화로 사업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강남 재건축발 집값 상승세는 전셋값 급등과 맞물린 서울 비강남권, 수도권 전역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이는 ‘주택투자시장의 바로미터’로 불리는 강남 재건축시장의 특징 때문이다. 보통 고가인 강남 재건축 매물은 가격 등락폭이 크지만, 사업이 빨라지면 수익성이 높아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시장이 회복기에 들면 투자 기대감에 자금이 몰린다. 서울지역 투자자뿐 아니라 수도권, 지방에서도 여유자금이 이곳으로 집중된다. 시장의 고수들이 돈이 되는 시장에 들어왔다 나가야 하는 시점을 아는 것이다.
둔촌동 주공아파트 단지.
하지만 재건축시장 상승세는 또 다른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선 투자를 넘어 투기세력이 가담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사업에 투자성이 커지면 투기성도 덩달아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해부터 강남 재건축 아파트 일반분양 물량에 투기세력이 가담했다는 증언들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말 서초구 신반포 한신1차 아파트를 재건축한 ‘아크로리버파크’가 대표적이다. 이곳에는 현재 분양권 매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여기에 투기세력이 가담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인근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떴다방 등 투기꾼들이 청약통장을 대거 사들여 청약에 가담했고, 이후 분양권 매물을 파는 과정에서 시세상승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결국 이는 거품을 형성해 선량한 실수요자들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시장에 자금이 몰리면서 분양가가 오른 것도 문제다. 몇 년 전에도 고분양가로 나왔던 강남권 일부 재건축 아파트들이 시장 침체로 거품이 빠지면서 투자자들이 손해를 입은 사례가 있었다. 이후 분양이 안 돼 분양가가 낮아졌지만 지난해부터 서서히 다시 오르는 분위기다. 일부 강남권 대형 재건축 아파트는 분양가가 3.3㎡(약 1평)당 4000만 원을 넘어섰다.
사업이 속도를 내면서 주변 아파트 전셋값도 불안해지고 있다. 여기에 올해 관리처분인가를 받으려는 사업 단지들이 한꺼번에 몰릴 경우 조합원 이주가 동시에 이뤄질 수 있다. 부동산시장에서는 올해 강남권에서 약 1만 3000가구가 재건축사업 진행으로 이주·철거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경우 인근에 전세를 구하려는 조합원들로 인해 전셋값 급등이 불가피하다.
박합수 팀장은 “강남 재건축시장이 모처럼 살아나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분양가격이 너무 높게 책정되거나 투기수요가 붙게 되면 정부가 바로 규제를 다시 강화하게 된다”며 속도조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수영 이데일리 기자 grassdew@edaily.co.kr